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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이후 개신교들 배신의 역사
게시물ID : sisa_4480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긴앙돼형아
추천 : 2
조회수 : 46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0/26 18:35:30
일제시대 교회, 민족배신 솔선수범”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24&article_id=0000008298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affair/200509/18/dailyseop/v10201507.html (동일기사)
(위 기사 보면 알 수 있듯이 개신교는 일제시대에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또한 바로 아래 기사에서 보듯 해방 후에는 자신들의 그런 친일행적을 숨기기 위해 역사왜곡에 여념이 없었죠. 그리고 또 한가지, 대다수 개신교인들과 달리,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부의 기독인들중에서, 애국심이 아닌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람들은, 단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사실 만으로 애국자들에 묻어가면 안돼죠. 그들은 애국심이 아닌 종교적 신념 때문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 뿐이니.)

-해방 후 한국교회의 역사왜곡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24&article_id=0000008304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affair/200509/19/dailyseop/v10203151.html (동일기사)

-[161호 대부흥운동 100주년 ③] 나라 망하는데, 교회 부흥이라…
http://www.newsnjoy.co.kr/news/hnews.php?year=2005&StartSerial=161
(이 기사는 위 제목으로 뉴스앤조이 홈피에 가서 기사를 검색해야 볼 수 잇습니다. 회원 아니면 못보게 바뀌었네요. 내용은 대략, 일제시대, 나라가 어렵던 시절 나라걱정보다는 교회성장을 우선시 했던 교회의 행태에 대한 것입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들.. 3.1운동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었으며, 결국엔 모두 변절했습니다. 아래의 두 글을 참고하세요.

-[신복룡교수의 한국사 새로 보기]3·1운동
http://www.sfkorean.com/servlet/JMBoard?tablename=brd_religion&mode=view&boardpage=1&searchword=&searchscope=&category=&no=5997

-(또 다른 관련 글) - 여기에 보면 3.1운동 당시 기독인들의 소극적이었던 행태들과 변절에 대해 한 기독교 계열 대학의 교수가 변명한 글(감신대 교수의 글)이 있습니다. 구차한 변명일 뿐이지만...
http://www.sfkorean.com/servlet/JMBoard?tablename=brd_religion&mode=view&boardpage=7&searchword=&searchscope=&category=&no=4122

-"정춘수 동상 철거 이유 밝히겠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18507
(위의 자료에서 언급되었지만, 민족대표 33인 중 개신교인들은 3.1운동에 소극적이었으며 모두 변절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 민족대표 33인 출신 중 감리교 목사인 정춘수 목사에 관련된 기사입니다.)


-부처, 예수, 단군이 만나다
http://www.iwomantimes.com/news/article_view.html?idx=19203&back=back
(이 글에 주기철 목사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이 있어서 여기 올렸습니다. [내용중 일부 발췌-->]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뒤 옥사하여 개신교 선교 150년 이래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주기철 목사를 보자. 박정희는 1963년 그에게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을 주고 국립묘지에 안장하게 했지만 실상 주기철 목사는 일찌감치 신천기철(新川基徹)이라고 창씨개명을 한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항일의 몸짓을 보여준 바 없다.
초량교회의 목사 정덕생은 오랜 기간 백산 안희제 선생 등에게 독립운동 자금과 장소를 제공했지만 1926년 후임자로 부임한 주기철 목사는 독립자금 지원을 즉각 중단해버리고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그가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시대 개신교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래)

광화문 한복판에 오뚝 서 있는 친일기독교의 상징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affair/200509/02/dailyseop/v10064928.html

-역사는 안다!...기독교 목사들의 매국친일 행위!
http://www.thepopnews.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04

-미국의 똥개가 된 개신교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635&table=forum1&issue1=&issue2=&field_gubun=&level_gubun=&mode=&field=&s_que=&start=&month_intval=
("개신교의 미국 맹종, 힘을 숭배하는 식민주의 근성”,“정치권력화는 미국 근본주의 교계 모방")

-김길창: 신사참배 앞장 선 친일 거물 목사
http://bluecabin/split99/3376.txt


알렌은 첫 발전소 계획을 세우고 그 이권이득 ,미국 기업체들로부터 전화 및 수도시설을 끌어들여 이득. ...평북도 운산금광의 채굴권 팔아 넘겨 당시 1500만 달러의 국부유출.
알렌은 ‘을미사변’전 일본공사 이노우에가 민비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이노우에의 제의에 따라 리조왕실의 안전을 일본침략군에게 맡기도록 설복함으로써 일제를 도와줌.

언더우드는 석유와 석탄 등을 미국에서 수입하여 이득.

마펫은 압록강 주변의 산림 채벌권을 얻어 거대한 목재 재벌.

선교사 리젠드르는 1백만 달라의 자본을 투하하여 고진동과 대유동, 수안과 강릉 등 굴지의 광산들에서 ‘채굴권’을 틀어 쥐고 금, 은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약탈해 갔으며 수많은 공장들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조선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

미국 선교사 해리스는.. 소생은 자기의 직무상 한국재류의 모든 선교사와 일본에 호의를 가지고… 실은 통감정치의 가장 열심있는 지지자임을 고백합니다 라는 글을 냈고

미국 선교사 호기스는 1908년 10월 조선통감부를 찾아가 정치의 불간섭을 선서하고 광주의 구세군이 독립을 위한 투쟁에 개입한다는 것을 구실로 그 관영을 해산하여 일제의 통치체제 수립을 도와줌.

미국 선교사 존스는 일제의 야만적인 통치제도에 순종할 것을 설교.

헐버트는 일제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

평양주재 미국 선교사 불레비는 ‘조선 교회는 일제의 침략세력을 미워하는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원수도 사랑하는 무맥한 순종을 설교


괜히 가카를 빠는게 아니죠

처음부터 시작이 잘못된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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