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 이 게시판에 들어와서 글들을 보는데, 성적관련 고민이라던지, 어떤 특정 과목 걱정이라던지, 공부 능률 고민 같은 것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그 때마다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직접 보면 더 말 잘 해 줄텐데 하고 씁쓸하게도 하고 해서 한 번 용기내서 글 올려 봅니다.
제 얘기 조금 해 볼게요 먼저.
저는 공부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 나이 서른 몇 살인데, 아직도 앉아서 책을 읽고 논문을 읽고 논문도 쓰고... 이것 저것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죠. 글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제 자랑을 조금 해 볼게요. (앗싸~) 중고등 학교 때 저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재수 없게도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제 스스로 "아싸 난 머리가 좋구나" 라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 가끔은 그 때가 그립네욥..)
그 후 대학에 갔습니다. 잘난 체를 조금 했으니, 이제 다시 조금 겸손해지도록 하지요. 대학을 오고 나니 큰물을 만난 느낌이랄까요. 주변에는 참 공부 잘 하는 녀석들이 많더군요. 어라? 하고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효과가 나왔을... 까요? 아니요.
성적이 - 학점이 - 하락하고 바닥을 헤메기 시작했죠. 아 안 되는구나. 군대로 직행했습니다.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주변에 과학고 나온 녀석들을 상대하기는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자신감도 없어지고, 공부를 한다고 계속 앉아있어도 왠지 공허한? 그런 느낌? 나중에 과학고 나온 친구녀석들에게 물어보니, 그 녀석들은 그 느낌을 고등학교 때 이미 느꼈었다 하네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다시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군대가기 전에도 공부해서 안 되었었는데, 이제 뭐가 될까... 머리가 굳었을텐데. 근데, 잘 되더군요. 뭐가 다른거지? 글쎄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학점이 잘 나오기 시작했어요. 뭔가 잘 돌아가는 느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유학을 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위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다시 뒤쳐졌다가... 다시 조금 올라오는 그런 느낌...
업 다운 업 다운 업 을 겪고 나니, 아, 공부에서 뭐가 중요한지 조금 보입니다.
공부를 조금 했었는데도, 성적이 학점이 잘 나오고. 공부를 많이 하는데도 답답하게 아무 것도 안 되고.. 그 차이는, 얼마나 "뇌에 부하를 주며 공부하느냐"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 운이 좋아 공부를 잘 하던 시절에는,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이 있었기에 머리 속에 여러가지를 굴려볼 수 있었어요.
수학에 국한해서 말씀해보지요. 근의 공식. 아주 지겹죠. 중 삼 때 이차방정식 배우기 전, 인수분해를 열심히 배우잖아요? 그리고 이차방정식을 딱 마주쳤을 때 제가 했던 게, 혼자 근의 공식 비슷한 걸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제가 만들었단 것 같죠? 그건 말도 안 되지만, 나름 푸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정말 며칠을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 나요.
그 마치 특수부대 지옥일주일 훈련 같던 뇌훈련이 얼마나 수학 전반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전 증명 문제 같은 것에 대해 일종의 도전의식을 느껴서, 될때까지 난 답 안 본다. 내가 푼다. 시바 ! 이런 정신으로 한 문제에 며칠 투자! 이런 식으로 풀었었는데, 지나고 나면 그 때 그 훈련들이, 아니 그 훈련들만이 수학이란 것을 장난감처럼 다루게 해주었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아 무슨 소리냐 나 지금 고 이다. 내년이면 고삼이다. 어쩔래. 한 문제에 두 시간? 님아 정신 차리라 하시겠네요. 제 말씀의 취지는 꼭 한 문제에 며칠 투자하라 라는 건 아닙니다. 문제를 푸실 때 자신의 뇌에 걸리는 부하를 높이라는 취지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 자체에 보상심리를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마치 1kg 짜리 아령 백 개 하고 아 운동 했다! 하시는 건 아닌지 뒤돌아보시라는 겁니다. 한 문제를 풀어도 좋고 한 문장을 독해해도 좋습니다. 하고 나셨을 때 뇌에서 연기가 나는지 안 나는지 꼭 확인해 보세요. 아니라면 아마도 시간을 낭비한 것일 겁니다.
처음에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 자체에서 연기가 납니다. 하지만 한 열 문제 풀고 나면, 공식을 적용하는 건 다만 손이 하는 일이요, 머리는 다시 정지 상태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 자체에 연연하시는 분들은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하지요.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늘지? 알 늘죠. 부하가 안 걸리면 뇌는 편안한 것을 찾아갑니다. 절대 어려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루트를 열지 않아요.
영어. 죽도록 읽는데 왜 안늘지? 왜 영작이 안 되지? 안 됩니다. 더 어려운 문장을 독해해보고, 더 엉뚱한 문장을 영작해 보세요. 그리고 꼭! 맞는지 확인해 보시고 아니라면 어디가 아니었는지, 활발하게 뇌에 부하를 주세요.
열 시간 낮은 부하로 공부를 하시면
- 뿌듯함을 얻습니다. - 능률을 잃습니다. - 성적을 잃습니다.
한 시간 높은 부하로 공부를 하시면
- 쉴 시간을 얻습니다. - 체력을 얻습니다. - 더 높은 부하를 걸 수 있습니다. - 성적은 오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 부하를 높이는 공부법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았습니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처음 가서 나름 방황하고 딴짓하느라, 절대 이것 저것 생각해보고 부하를 걸어가며 공부하지 않았던 겁니다. 군대를 갔다 와서는, 완전히 친구가 없는 왕따로... 할 것은 공부. 애라 이것 밖에 답이 없나보다.. 하고는 보다 보니 호기심도 생기고, 어차피 학점은 낮은 거 학점자체보다는 배운 것 자체에 관심이 가고.. 하면서 뇌에 부하를 걸며 공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유학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머리에 연기나게 공부하느냐만이 곧 연구 성과로 이어지더군요.
no pain no gain 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고통을 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공부는 결국 두뇌작용입니다. 두뇌가 활발할 정도로 충분한 수면을 주지 않으면 공부는 되지 않아요.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지 마세요. 두뇌가 깨어있을 때 충분히 부하를 주시고 자극을 주세요. 절대! 게으르진 마세요. 쉬실 때는 두뇌를 위해 쉬세요 (수험생들일 경우에는). 두뇌가 다시 활달한 느낌이 들면 절대 딴청 피지 마시고, 다시 단련하세요.
웨이트 트레이닝 해 보신 분들은 제 글에 공감하실지 몰라요. 운동할 때 쉬는 것. 운동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 쉬는 것이 운동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수험생 여러분! 열심히 하세요! 할 때, 뭘 하라는 겁니까? 전 두 가지 다입니다. 열심시 쉬세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뇌에서 연기나도록. 절대 엉덩이나 손목에 쥐나도록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앉아있는 연습하는 게 아니예요. 두뇌활동 연습하시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