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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를 정리하다보니
선천성 퇴행성 관절염으로 유리무릎을 가진 그와
목발사용법을 몰라 눈에띄게 절룩이던 어느 한 철학교수의 일화가 문뜩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더운 여름날이었을까.
그와 교수는 목발을 더듬거리며 철학책을 읽던 모습이 비슷했던 것 같다.
“동양의 사상에서 공자는...”
쓱쓱쓱... 그의 노트 속 공백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철학시간마다 그는 항상 뒤통수만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태형아 너는 정신언제 차리려고 그러냐. 알려준거는 다 써야지... 자 형이한거 받아라”
그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면서 후배와 친구들을 독려하고 이끌어주었다.
그는 철학 그 자체였었다.
그날... 성적이 발표된 그날 그 전까지 말이다.
“교수님!”
그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수화기를 찢고 나온다.
“왜 저에게 C를 주셨나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김군은...”
교수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수화기로 흘러나오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꺼에요”
뚜우 뚜우... 그와 닮았던 무릎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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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왁자지껄한 자취방. 성적발표에 다들 들떠있는 모습이다.
“야 니는 공부 진짜 안한다 뭐 맞았냐?”
“아~ 죽쒔네”
한탄하는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다.
“나 철학 C+이여”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나도 나도”
“야 태형아 너 뭐냐?”
“형 저도 C+이요”
두 개의 무릎을 가진 남자들은 모두 C+이었다.
누가 그의 시간을 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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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한번 쓰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