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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 펌
게시물ID : bestofbest_449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샤레
추천 : 253
조회수 : 30593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01/10 22:38:25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10 17:51:47
<style> #body_frame { line-height:normal; } </style> 일단 게시판에 목록과 맞지 않은점 양해드립니다 여기자료실이 많은분들이 보시는거같아 이렇게 글을올립니다 ㅜㅜ 억울하게 죽은 제 사촌동생입니다 ㅜㅜ 도와주세요 ㅜㅜ 저의 고모님이 쓰신글입니다 ㅜㅜ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 (살인사건조작) “성추행” 그리고 “폭행치사“ 라는 단어만 듣는것으로도 방망이질 치는 가슴 간신히 진정시키며, 분노하고 눈물흘렸던 기억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그 끔찍한 사건이 제게도 현실로 다가 왔으니…… 제딸을 (19세, 대학 1학년) 한줌의 재로 차가운 곳에 묻은 것도 억울한데 어쩌면 이 살인사건이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행위로 은폐, 조작될 수 있습니까. 당시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합니다. - 당시 상황 - 2009년 8월 6일 죽은 제 딸 (신은선)은 친구 최미애가 어렵게 자격증을 취득한데 대한 축하의 의미로 또한 친구 김현주 와 함께 셋이서 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최미애의 남자친구인 이상원 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내용은 “이상원 의 친구인 김병우 가 휴가(육군 병장)를 나왔으니 같이 만나자”였고 저의 딸과 김현주 는 그 자리에서 김병우와 백모석 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사건은 그들과의 만남이 끝난 후 (2009년 8월 7일 04:00경)에 일어났습니다. 제 딸(망 신은선)과 김현주 는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지라 귀가하려고 집근처 상계제일교회까지 걸어왔는데 제일교회의 주차장에 앉아 서로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옥신각신 하던 중 신은선이 “그럼 내가 먼저 간다”라고 하며 집 쪽으로 걸어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백모석이 신은선의 뒤를 쫓아 뛰어가자 이를 이상히 생각한 김현주는 신은선이 집으로 잘가나 보려고 골목 쪽을 보는데 이제는 김병우가 나타나 김현주의 손목을 잡아끌며 “너는 내가 배웅해줄게”라고 하여 그대로 집으로 갔다고 하니 그들은 이미 성폭행 대상으로 신은선을 지목하였고 숨어서 기회를 노리던 중 대상자가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백모석이 뛰어가 잡아끌고 사건 현장으로 끌고와 결국은 때려 죽였으며, 끔찍하게도 제 딸은 근처 모 빌라 주차장에서 무수히 얻어 터진채 쓰러졌고 119(2009년 8월 7일 05:00)에 실려 상계동 소재 백병원 응급실에서 수술한번 못 받은 채로 2009년 8월 12일에 그대로 떠났습니다. 도대체 제 딸은 초면인 그들한테 왜 그토록 얻어 맞고 죽었을까요. 저는 제가 듣고 보고 느낀대로 제딸을 죽인 가해자 김병우와 백모석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서 백민우 형사에 대하여 구분해 간략히 사건내용을 밝히겠습니다. - 김병우 에 대하여 - 현역인 그는 군검찰에 의하여 구속수감된채 (110일) 수사 및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 “얘기가 잘 되면 여관에라도 가려 했다.” (김병우) - “오빠들은 술만 먹으면 그짓을 하려 하느냐” (망 신은선) 라고 한 그의 자백과 제 딸의 반문만 보더라도 성폭행을 하려 했고 그 대상을 제 딸로 삼았습니다. - 군사재판에서 그는 재판관님의 질문에 폭행사실을 순순히 시인했고 - 군사 재판중에서 재판관님이 물었습니다. 문 : 뒤로 넘어진 신은선은 어찌하고 있었나요? 답 : 신은선은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백모석과 얘기를 하고 있길래 저 는 담배를 피우려고 옆 건물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얼마 후 백모석 이 뛰어와 “얘가 숨을 쉬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라고 진술을 하 였습니다. 기타 여러 질문이 오갔고 군검찰은 살인죄를 적용 징역 4년형을 구형 하였으나 군 법정의 선고는 무죄 (“벌금 700만원에 처한다”) 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항소를 해주신 군검찰관님의 도움이 있어 민간인이 된 김병우 를 상대로 2심을 받을 수 있었고 2심에서는 살인죄를 적용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 - 백모석에 대하여 - - 이 사건에서 백모석은 초기 만남에서부터 119에 승차 때까지 단 1초도 살인현장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었으며 - 집으로 간다고 하며 집으로 가는 제 딸의 뒤를 쫒아 살인현장으로 데려온 장본인이며 - 제 딸은 무수히 얻어 맞고 힘이 빠진채로 앉아서 그와 같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애가 숨을 쉬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밖에 있는 김병우 에게 뛰어 갔을까요, 김병우의 폭행 뒤에 또 다른 폭력 (목을 잡아 밀치는 등)이 있었음이 분명 합니다(★). - 그는 제 딸이 술에 만취했다고 주장하나 김병우가 군사재판에서의 증언 (술에 많이 취하지 않았다)과 김현주, 최미애의 증언에 의하여도 술에 만취했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이였음이 입증됩니다. - 백민우 형사 에 대하여 - 2009년 11월 30일 저는 가해자 백모석을 고소키 위해 고소장을 들고 백민우 형사를 찾아갔습니다. - 그는 저와 제동생을 향하여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농담과 제 사생활에 대한 질문 (그가 한 조롱과 농담은 현재 국가권익위원회에 진정하였음)은 정말 저를 분노케 하였습니다. - 2009년 11월 30일 고소장 접수. - 2010년 2월 14일에 북부지검에서 종결. - 2010년 3월 8일 고소인은 위의 북부지검의 종결처분 사실을 알게 됨. 종결 사실을 알게 된 경위는 고소장을 접수한지도 수개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가끔 수사 진척 상황을 물으면 늘상 수사 중이라고 말하여 3월 8일에는 직접 경찰서로 찾아 가 그날로 종결사실을 알게 됐으니 참으로 황당하더군요. 만약 제가 그 날 찾아 가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구요. - 사건 현장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CCTV확보는 가장 기본이며 급 선무가 아닐까요. (CCTV를 보여달라는 저의 요구에 경찰서의 답은 녹화 후 7일이 지나면 삭제된다고 했습니다.) 어째서 CCTV를 확보하지 않았을까요. 군사 재판에서도 CCTV로 추정되는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는데요. - 애들이 싸우고 다투었다면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이라도 확보해야 하지 않 나요. - 제 딸의 칼라판 사진을 보면 신체 곳곳에 구타당한 흔적이 무수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신OO의 몸 어느 곳에도 흠이 없다라고 경찰관이 사 건을 은폐하는 헛소리를 할까요. - 2심때 증인으로 출석하신 증인 남대용 의 증언에만 의하더라도 ★ - 여자애가 뒤로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경찰에게 분명히 말했다 함 ) 남자애들의 구타소리는 들었지만 정확히 누가 때렸는지는 모른다. 누군지 “ 애가 숨을 쉬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여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112에 신고를 하였다고 증언함. 위 증언에만 의하더라도 백민우 형사 는 제가 백모석을 고소하기 앞서 사건 초기부터 그를 수사 선상에 놓고 단 한차례라도 수사를 해야하지 않나요. - 같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군 검찰은 모든 증인을 불러 조사를 마치는데 그 는 증인은 커녕 고소인조차 단 한번도 부르지 않고 사건을 종결짓고 종결 사실까지도 은폐하려고 했을까요. - 어떻게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그랬나요? 단 한차례라도 증인 및 고소인과 대질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 다. - 오로지 가해자만을 만나서 그의 주장만 듣고 결국은 그와 입을 맞춘 꼴이 됐으니 그의 천재적인 수사방법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군사재판이나 고등법원의 재판 두 곳중 어느 한곳에서라도 백모석을 출석시켜 증인들과 대질 심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수사경찰관이 범인들을 비보하고 CCTV자료를 은닉하고, 목격자 남대용의 진술내용을 조작하고, 제대로 목격내용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고, 입원사진을 보면 온몸에 심각한 구타흔적이 있는데 구타 당한 흔적이 없다는 내용의 수사를 해서 백모석은 무혐의, 김병우는 군사법원에서 무죄, 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단 돈 500만원을 공탁하고서... 너무나 억울합니다.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 부끄럽지만 저는 결혼 초부터 오늘 현재까지도 지하 셋방에서 벗爭ち� 못하였지만 착한 두 딸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중 큰 딸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너무도 큰 슬픔에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버거운 현실을 어찌하나요. 큰 가르침 꼭 알려주세요. 추천좀 부탁드립니다 많은사람들이 볼수있게끔 도와주세요 ㅜㅜ 위의 이름은 다 가명입니다 기사화가되어 재수사가 이루어질수있게 도와주세요 ㅜㅜ 현재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거구요 추천과 많은 분들이 볼수있게끔 퍼트려주세요 ㅜㅜ 부탁드립니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3&articleId=105968&hisBbsId=S103&pageIndex=1&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네이트 판에다가도 올렸습니다 부탁드립니다 ㅜㅜ http://pann.nate.com/talk/310373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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