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촬영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솜브라는 아직 들어갈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계속 앉아서 흐느껴 울고 있다. 이 광경을 지나가던 애플잭이 발견한다.
“곧 촬영 들어가는데 니 여서 뭐하노?”
“흐흑… 죄송합니다. 갈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표정은 전혀 펴지질 않고,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애플잭은 솜브라에게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던져본다.
“니 뭔 일 있나. 와 그라노.”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니 내 짬밥이 몇 년인지 아나. 표정만 봐도 딱 나오는데, 아니긴 뭐가 아인데.”
애플잭은 솜브라를 억지로 일으켜 자기랑 눈을 마주치게 한다. 자기가 덩치가 훨씬 더 크지만, 솜브라는 대선배님 앞에서 어쩐지 계속 작아지는 듯한 느낌을 체감한다. 그냥 눈 감고 털어놔버릴까… 짐짓 고민한다.
“괘안타. 내한테 다 말해도 된다. 빨리 말해봐라. 뭔 일 있나.”
“저… 그게… 대본을 봤는데요…”
“응, 근데.”
“제, 제… 제 대사가… 하나도… 하나도 없어요…”
애플잭은 표정을 다소 찡그린다. 예상했던 바다.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이번 화에서 솜브라의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다. 게다가 이 녀석은 한두 회 나오고 마는 단역이다. 이번에 대사를 하지 못하면 앞으로 기회는 영영 없어진다. 애플잭도 대본을 보자마자 신인이라도 그렇지 대사가 아예 없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태프와 마찰 일으켜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일단 가만히 있던 거였는데, 드디어 여기서 우려했던 일이 터질 조짐을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편들고 같이 따지러 가고 싶지만,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기다린 새 시즌을 말아먹을 순 없는 터다.
애플잭은 일단 솜브라에게 촬영에 들어가자고 타이르기로 해본다.
“하이고, 야야. 신인이, 그것도 단역이 대사 적게 받을 수도 있제, 뭘 그런 걸 갖고 울고 그라노.”
“그… 그치만, 이번에 못하면 앞으로…”
“니 연기 1, 2년 하고 말 거가. 앞으로 기회는 무지 많데이. 기다리다 보면 다 할 수 있을기라. 조금만 참아보래이.”
“그… 그래도, 아예 대사가 없는 건…”
“그렇다고 새 시즌 빵꾸 낼 순 없잖나. 자, 가자. 열심히 하면 이것 말고도 다 잘 될기라.”
“그… 근데, 처, 처음 TV 나온다고 부모님이 보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애플잭은 말문이 막힌다. 애플잭도 비슷한 고충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기억도 안 날만큼 먼 옛날, 애플잭이 처음 연기했던 작품에서 애플잭은 동네 바보 누나 역할이었다. 대사마저 한 줄, 그것도 ‘춘심이 흙 먹는다 헤헤’ 였다. 딸의 첫 방송이라고 기대감에 부풀어 방송을 보신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우셨다고 한다. 언제인지는 이제 기억도 안 나지만, 그 사건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솜브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앉아서 울음을 터뜨린다. 애플잭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가엾기 때문이다. 천하의 군기반장
애플잭도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누군가 둘 곁을 지나간다.
“곧 촬영인데, 얼른 가야 하지 않나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다. 미모, 연기력, 성격까지 완벽하기로 소문난 연기계의 여왕. 보통 같으면 꿈에만 그리던 여신님의 등장에 황홀해했을 솜브라지만, 지금은 기분이 영 아니다.
“마침 잘 왔데이, 트와일라잇. 좀만 도와도.”
애플잭은 일단 자기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걸 알고 친구 트와일라잇을 부른다.
“왜 그래? 어머, 왜 그렇게 서럽게 울고 계세요?”
“이번 화 대본 봤제. 야 대사가 한 줄도 없다 카이.”
애플잭이 트와일라잇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트와일라잇은 고민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생긋 웃는다. 애플잭은 의아해한다.
“와, 와 그라노, 야야. 이기 쉬운 문제가 아인데…”
애플잭의 말을 못 들은 척, 트와일라잇은 솜브라 바로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몸을 낮춰 울고 있는 솜브라와 눈을 맞춘다.
“처음 하는 연기인데, 대사가 하나도 없어서 놀라셨나 보군요. 그렇죠?”
“네, 네…”
솜브라는 짐짓 놀란다. 바로 앞에 톱스타가 자기랑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사가 없다는 슬픔이 너무 크다.
“부모님도 보시면 크게 실망하실 것 같아서 걱정이구요.”
“네, 맞아요.”
…
“솜브라 군. 맞죠?”
“네? 네.”
“솜브라 군은 미래에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어, 어떤 연기자요? 음… 카리스마 있는? 아니, 멋있는? 아냐… 아니, 그냥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기자… 후후, 정말 단순한 소리지만, 진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요. 거기까지 가는 길은 정말 길고 험난하기 짝이 없죠. 그렇다면 그 위치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 자, 잘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걷는 것밖에 없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하고, 혼신의 힘을 다 하다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는 수밖에 없어요. 바꿔 말하면, 열심히 노력하면 정말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말을 하다 말고, 트와일라잇은 솜브라의 앞발굽을 꼭 맞잡는다. 솜브라는 트와일라잇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다.
“솜브라 군, 지금 솜브라 군의 역할은 정말 작아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이 작은 걸 앞으로의 여행에 딛는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기자가 되기 위한 머나먼 여행을 시작하려면, 우선 첫 걸음을 내딛어야죠. 그 걸음이 성공적이면, 그 다음 걸음도, 또 그 다음 걸음도 걸을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솜브라 군의 여행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첫 걸음이 너무 작아 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남들이 보기엔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건 있답니다. 크기는 제각각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모두들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거에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소중한 첫 걸음. 솜브라 군도 이런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진 않잖아요? 이 걸음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어쩌면 그 다음 걸음은 성큼성큼 크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부모님이 보셔도, 누가 봐도 자랑스러울 정도로요.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힘이 될 거에요. 그러니까 솜브라 군, 너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작지만 소중한 첫 발걸음을 시작하러 가지 않을래요?”
솜브라는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이번엔 슬퍼서가 아니라 감동해서다. 대선배님이 자기에게 따뜻한 말을 해준 것도 고맙고, 선배님 말씀대로 미래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은 잡은 앞발굽을 놓고 촬영장으로 가려 한다.
“대사가 하나도 없는 건 나중에 저희가 한 번 따져볼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그리고, 대사가 적다고 실망한 그 열의만 있으면 솜브라 군도 충분히 위대한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저흰 먼저 나갈 테니, 기분이 충분히 풀리면 천천히 오셔도 좋아요. 파이팅! 가자, 애플잭.”
“어, 아… 알았다.”
표정이 많이 편안해진 솜브라를 뒤로 하고 둘은 촬영장으로 간다. 애플잭이 약간 놀란 목소리로 트와일라잇에게 말을 건다.
“와, 야야. 닌 우째 그래 말이 술술술 나오노? 내는 한 마디도 못 하겠던데.”
“뭐, 나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으니까. 첫 촬영 생각난다. 나도 그 때 대사가 없었거든.”
“진짜가? 니가 그런 때도 있었나?”
“응. 학원 드라마에서 역할이 지나가는 고등학생 A였는데, 넘어지는 역할이 다였으니까. 킥킥. 나도 그 때 많이 실망했고, 부모님도 썩 좋아하시진 않았거든. 그 때 내 모습이 생각나서… 여러 말이 막 튀어나오게 되더라.”
“뭐… 내도 그런 적 있었는데. 왜 나는 한 마디도 못 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니는 대단하다. 헤헤.”
“얘는… 참, 나도 너 첫 방송 기억난다.”
“뭐… 뭐라꼬! 니 그걸 봤나!”
“응, 연기 경력은 너가 더 기니까, 그거 보면서도 공부했지. 보면서 ‘쟤 연기 진짜 잘 한다’랑 ‘진짜 바보인가봐’라는 생각이 들던데? 킥킥.”
“가, 가스나야! 주디 닫아라, 마!”
“두 분! 얼른 준비해주세요!”
“어머, 우리 차례다, 애플잭. 가자!”
“에휴, 모르겠다. 그래, 가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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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브로니 인사드립니다!
발로 쓴 팬픽 봐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ㅜ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