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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내 아기
게시물ID : readers_44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개불닮은여자
추천 : 2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1:12:39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겨울이니까 눈을 맞을 수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1년이 지나가는데도 항상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집 안방에서 눈이 내린다니!

 

하지만 그녀는 가능했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일어나도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화장실에 들어가도 그녀는 언제나 표정 없는 미소와 원망스런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내 아내로 시선을 돌렸다. 이불로 얼굴을 끝까지 가린 채 그 상태로 웅크렸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배를 쓸며 나에게 다가왔다. 눈을 한번 깜박일 때마다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내가 눈을 감으면 그녀가 배를 쓸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내 귓구멍에서 울렸다. 그러면 나는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땀기가 진득한 손을 후들거리며 아내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뱃속의 아이의 심장소리를 느꼈다.

 

아니, 느껴야만 했다.

 

“미안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다.

 

“정말로 미안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계속 흘렀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목 주위는 축축해지고 코는 시큰해졌다. 그녀의 원망을 이해한다. 내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지자 나는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다.

 

 

 

**

 

 

 

“나 임신했어”

“뭐?”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떨고 있다는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고는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차갑게 식은 납덩어리같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워”

“뭐?”

 

괜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며 지우자고 하는 것보단 장난스럽게 말하는 게 더 편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며 매일매일 위로해주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나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한번 [하]하고, 숨을 내뱉은 다음 다시 말하였다.

 

“지우라고. 우리나이에 애 생기면 뭐. 결혼이라도 할 거야? 지워.”

“..진심이야?”

“너야말로 진심이야?”

 

나와 그녀 사이에 칼 같은 날카로움이 서린 고요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 이네 고개를 돌려 크리스마스트리 위의별을 보며 다시 한번 말하였다.

 

“지워. 너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

 

사실은 날 위해 하는 말이지만. 나와 그녀의 머리위에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일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도망치듯 그녀와의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걸어왔고 심지어는 나의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하였다.

 

그날도 어느 때와 같이 그녀에게 애를 지워버리라 문자를 보낸 뒤 신경질 적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핸드폰으로 연락은 했어도 그녀를 만나기는 꺼렸던 나는 자취방 앞에 서있는 그녀를 보곤 가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배는 그 사이 더 부풀어져 있는 것 같았고, 그녀의 몸은 그 사이 더 말라져 있는 것 같았다.

 

“시발. 이제 우리 집까지 오냐?”

“...”

“존나. 내가 돈 준 데잖아, 병원도 알려주겠다잖아. 근데 왜 이 지랄이냐고. 너 나중에 내 발목잡을려고 그래?”

“..정말 끝까지..넌..”

“좀 가라..제발”

 

 

 

**

 

 

 

그 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알려준 그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학교동기의 말뿐 이었다. 전 여자친구의 죽음은 충격적이었고 그 이유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잦은 야근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지낸 내 삶속에서 그녀는 잊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작년이었다.

 

아내의 임신소식과 함께 그녀는 모습을 보였고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더더욱 선명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미안해. 그땐 내가 너무 어렸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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