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사 당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2)에게 가장 불리한 진술을 했던 국정원 심리전단 여직원 황모씨가 법정에서 모든 진술을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작성한 황씨의 검찰진술조서가 외부로 유출된 의혹이 제기됐다.
황씨는 역삼동 오피스텔 대치소동을 벌였던 심리전단 3팀 5파트 인터넷 댓글담당 김모 직원(29·여)과 같은 팀 소속 직원이다.
황씨는 검찰에서 원 전 원장의 <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 에 따라 이종명 전 3차장(56)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55)이 순차적으로 지시를 구체화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시달됐었다는 일종의 지시 커넥션을 검찰에 구체적으로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임신을 이유로 증인출석을 거부해온 황 직원은 이날 법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모두 번복하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남긴 것에 불과하다며 '꼬리자르기'를 했다.
재판장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장마저 "착각할 수 있는 내용 아니다" 지적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에 대한 11차 공판에서 황 직원은 "인터넷 댓글작업시 동일장소 반복사용 금지, 국정원 청사 인근 출입 자제, 폐쇄회로(CC)TV에서 먼 위치에서 작업, 본인명의의 신용카드 사용 자제 등의 업무메뉴얼을 받았다고 진술하지 않았냐"는 검찰의 질문에 "여타 행정 e메일과 착각했던 것 같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조사 당시 업무메뉴얼을 서면으로 받아 숙지했었다고 한 기존 진술을 완전히 엎은 것이다.
황 직원은 "(검찰조사) 당시 헷갈린 것 같다"며 "검찰진술 조서를 살펴보니 오류가 있었던 것을 그때야 알았다"고 부인했다.
이범균 부장판사가 "e메일로 업무메뉴얼을 첨부받아 서면으로 봤다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서면을 본 게 아니란 말이냐"고 재차 질문했지만 황 직원은 "행정메일과 착각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황 직원의 답변에 이 부장판사는 "받은 경위가 예를 들어 직접 받았지 e메일로 받은 것은 아니라고 착각할 수는 있지만 e메일로 받아서 읽어봤다고 한 것으로 봐서는 읽어보지 않고 처음 본 문서를 착각해서 e메일로 받아 읽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황씨 증인출석 전 국정원과 입맞추기 했나"
이 과정에서 황 직원이 증인으로 나오기 전 지금은 해산된 국정원 심리전단 관계자와 전화통화로 자신의 검찰진술조서를 확인한 것이 드러났다. 결국 증인으로 나오기 전에 국정원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검찰이 황 직원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성한 글들을 나열하며 추궁하자 황 직원은 "조서내용을 봤더니 사실과 달랐다"고 말한 것이다.
검찰은 "조서 내용을 받더니 '이렇더라' 라고 진술하면서 앞뒤가 안 맞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검찰조사 이후 본인 조사 내용을 봤거나 조서내용이 이렇다고 들은 적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황 직원은 "휴직중이라 (검찰조사 이후) 듣지는 못했고, 출석을 앞두고 긴장해서 물어보기는 했다"고 답했다. 이어 "조서내용을 들어서라고 했는데 누구에게 들었다는 건가"라는 검찰의 질문에는 "심리전단…"이라며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황 직원이 검찰조사 당시 했던 진술을 확인하고, 사전에 황 직원에게 진술방식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검찰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열람·복사 및 소지할 수 있는 사람은 검찰과 재판부를 제외할 경우 원 전 원장의 변호인밖에 없다.
■82쿡·맘스홀릭도 국정원 활동 대상
한편 국정원의 인터넷 선동활동 범위는 기존 '오늘의 유머' '뽐뿌' 등 뿐만 아니라 네이버 '맘스홀릭 카페' 및 '82쿡' 등 주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대형 커뮤니티까지 퍼져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황 직원은 지난해 8월 이전까지는 '맘스홀릭' '82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홍보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당시 SBS < 힐링캠프 > 에 나와 발언한 부분 등을 토대로 지지발언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황 직원은 지난해 1월 '어제 S본부 힐링캠프 보셨나요. 박근혜 한나라당 부대위원장 단독출연 볼만하더라고요. 예능출연이 처음이라 긴장하는 것 같더니 할 말 다 하고…개인적 가정사를 들으니…20대 청춘을 일국의 퍼스트 레이디 역살을 하고…얼음공주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차가운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차가운 세월 못 견뎌 내겠더라고요. 순수한 애국심으로 대권을 노리는 거라면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룰 자격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내요. 그런데 참 인기 없는 것 같아요.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남성으로부터 지지받기는 어려울 것이고요…올해 국민들 선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등의 내용이 담긴 장문의 글을 '82쿡' 사이트에 게시했다.
황 직원은 그러나 "이슈·논지와 전혀 무관하게 제 생각을 쓴 것"이라며 윗선과의 관련성을 모두 부정했다.
황 직원은 이밖에도 지난해 대선을 앞둔 7월 네이버 맘스홀릭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 등을 언급하며 화형대에 끌려가야 한다는 등의 자극적인 글을 게시하는 등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황 직원은 모든 게시글을 "윗선의 지시와 무관했다. 개인적인 견해"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서…"라는 다소 모순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황 직원은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일어난 직후 자신의 모든 게시글을 삭제하고 현재 모든 커뮤니티에서 탈퇴했다. 황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