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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저를 촉촉하게 적셔주세요. 나의 주인님
게시물ID : humorstory_356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
조회수 : 173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1/26 08:19:25

가을 하늘이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의 잎은 잡티 하나 없는 초록색이었고 뿌리는 매끈하게 뻣어 있었으며 몸통은 누가 봐도 땔감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탐스럽게 뻣어 있었다.

 

하지만 가을 하늘은 나무에게 차마 고백을 하지 못했다. 나무가 옆나무를 좋아해서 그의 씨앗을 받아 열매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을 하늘은 이런 사실이 괴로웠다. 자신은 쳐다봐 주지도 않고 다른 나무를 사랑하는 그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홀로 괴로워하던 감정은 이내 증오로 바뀌었다. 그 감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그녀를 저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널 파멸시켜주마. 나 없이는 못 살도록 철저하게 조교시켜주지'

 

이 생각 하나만으로 가을 하늘은 나무에게 뜨거운 가을 햇살을 쏘아내렸다.

순간, 나무는 너무나도 뜨거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하아.. 그만.. 너무 뜨거워요! 햇살을.. 좀 빼주세요."

 

나무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자 하늘은 음흉하게 흐흐 웃었다.

 

"싫어. 흐흐흐...."

 

기분나쁘게 웃는 가을 하늘을 보며 나무는 애절한 표정으로 이렇게 호소했다.

 

"너무 괴로워요! 하아.. 너무.. 뜨거워서 제 몸이 달아오른단 말이에요.. 이런 건 싫어요!"

 

"흐흐흐 너도 실은 좋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 슬슬 밤이 되겠군. 내일도 너에게 이 기쁨을 맛보게 해줄거야. 그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라구."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뜨거운 햇살도 점차 줄어들었다. 흠뻑 달아올랐던 나무는 자신이 식는 것을 느끼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수치스러운 감정과 무기력한 자신때문에 슬퍼서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자 나무는 어떤 신비한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마법과 같은 허탈감이었다. 어쩌면 허무함일지도 모른다. 그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은 나무가 낮에 가을 햇살에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느끼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태양. 그것이 자신을 죄여오던 뜨거움. 마치 우뚝 솟아 있는 산처럼 힘찼던 태양열.. 그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잎 주변에 가을서리가 맺혀서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나봐.."

 

쾌락에 빠져 이런 상상까지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불쾌해서 화가 났다.

아침이 되자 가을 하늘의 조교는 더욱 더 심해졌다.

 

"표정이 왜 그래? "

 

나무는 무척 힘들어보였지만 끝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법. 강렬한 태양열이 잎에 닿을 때마다 시작되는 광합성때문에 나무는 무척 뜨겁게 달아올랐다.

 

"흐흐흐.. 광합성을 하는거야?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내 더러운 태양열에 광합성을 하다니.. 하하하 넌 정말 통제불능의 암컷이구나! 하하하"

 

그 말에 나무는 어떻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광합성 내내 머리 속이 백지처럼 하얘져서 도무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무는 가을 햇살의 태양열로 광합성을 하는 것이 그다지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더 느끼고 싶었다.

 

밤이 되자 오늘의 조교도 끝이 났다. 나무는 수없이 수행한 광합성 때문에 온몸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태양열이 얼마나 강했는지 잎이 다 얼얼했다. 그리고 어떤 희열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자극이었다. 온 몸 전체의, 식물세포를 둘러싼 세포벽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느낌. 마치 녹아내릴 것만 같은 그 태양열의 힘이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녀는 새벽이 되자 가을 서리때문에 촉촉히 젖은 나뭇잎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암컷 식물이었다는 것을...

 

이 날도 역시 가을 하늘의 조교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햇살은 커녕 자잘한 햇빛조차 비추지 않는 흐린 날씨였다.

 

"오늘은 조교를 안받아서 기분이 좋아? 흐흐흐 두고 봐. 조만간 너 스스로 애원하게 될 날이 올테니까."

 

가을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 말을 들은 나무는 겉으로는 기쁜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밤이 되자 나무는 어제 느꼈던 희열을 상상했다. 뜨거운 태양열. 요동치는 세포벽들. 그리고 머릿 속이 온통 하얘질 정도로 강렬한 쾌감..

이런 상상을 하며 나무는 가을 서리를 맞았다.

 

"하아.. 하아.. 태양열... 태양열로 나를 좀 더.. 괴롭혀 줘.. 하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잎에 맺힌 가을 서리가 뭉쳐 똑 하고 떨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여운을 잊지 못한 나무는 태양이 뜰 때까지 이렇게 신음했다.

다음 날도 가을 하늘의 조교는 실행되지 않았다. 아예 나무에게조차 나타나지도 않고 흐린 날씨를 유지했다. 나무는 애간장이 타고 있었다. 그 때의 그 기분을 더 느끼고 싶었다. 아쉬워하며 불안감에 쌓인 표정을 가을 하늘은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암컷이구나."

 

가을하늘은 이렇게 생각하며 슬쩍 흐린 날을 맑은 날로 바꾸었다. 그러자 나무는 기다려 왔다는 듯 환한 미소로 태양을 응시했다. 저 뜨거운 가을 햇살이 나에게 광합성을 시켜준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을 하늘이 나타나 말했다.

 

"원해?"

 

나무는 순간 튀어나올 뻔 한 마음속의 대답을 지금까지 지켜왔던 나무로의 긍지로써 간신히 참아내었다. 하지만 원했다. 그 강열하고 눈부셨던 태양열을....

나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가을 하늘은 금방 흐린날씨로 바꿔버리고 퉁명스레 말했다.

 

"시간을 놓쳤어. 아웃."

 

"잠깐만요!"

 

이랗게 말했던 순간에도 나무는 아차 싶었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을 하늘은 나무 근처에만 구름을 치워 태양열을 받게 해줬다. 그러자 나무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태양열에 반응을 시작했다. 그녀의 잎사귀는 그 작은 태양열에도 광합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원하니?"

 

가을 하늘의 물음에 나무는 힘겹게, 그리고 수줍게 대답했다.

 

"네..."

 

"큰 소리로 말해봐. 원하는 거야? 나의 더럽고 냄새나는 태양열이 너의 몸을 마음껏 유린하는 것을 말이야."

 

나무는 결심한 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좋아! 네가 원하는대로 실컷 조교시켜주마! 이틀 동안 참아왔던 태양열을 너에게 듬뿍 쐬어주지."

 

순간적으로 날씨가 맑게 개이고 이틀을 참아 온 엄청난 태양열이 나무에게 작열했다. 무척 농후하고 진한 태양열이었다.

 

 

 

"꺄아아아..."

 

"좋은거냐? 엉? 좋은거야? 암컷아!"

 

"네.. 좋아요! 너무나도 좋아요!"

 

나무는 짐승처럼 신음하며 태양열을 느꼈다. 그 어느때보다도 강렬한 광합성이 온 몸을 휘져었다.

 

"더 느끼고 싶니? 그렇다면 날 주인님으로 모셔라. 일년 사계절 내내 이 기쁨을 느끼게 해줄 거야."

 

"네, 주인님."

 

"너는 무엇이지?"

 

"나무 입니다."

 

"흐흐.. 틀렸어. 난 너의 주인이잖아. 그럼.. 뭐지?"

 

"전 노예입니다. 당신, 가을 하늘의 영원한 노예입니다!"

 

"그래 더럽고 추잡한 노예 나무년아 나와 함께 풍요의 노래를 부르자꾸나!!"

 

"네! 좋아요!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우리 같이 풍요의 노래를 불러보아요!!"

 

나무 잎사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흐흐흐흐... 하하하핫"

 

가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웃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게, 풍요롭게 웃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그 동안 고생했던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

가을 하늘은 이렇게 나무의 모든 것을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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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14097

깨알같은 소설 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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