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사진은 물론 동물과의 수간 장면까지….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게시물이 도를 넘고 있다.
일베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지난 2010년 독립해 유머 사이트다. 일베 사이트 공지사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한달 동안 10억 페이지뷰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일베는 지난 대선 시기 보수진영 쪽으로 분류돼 야당 후보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왔다. 대중들이 직접 일베 사이트를 접속하지 않은 이상 누리꾼들과 인터넷 유머글이나 정치사회적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이트로 인식되기 쉬운 것도 대선 기간 이 같은 내용으로 언론에 노출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베 사이트가 보수적인 정치색을 담은 게시물 위주의 사이트일 것이라는 일반 대중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 단 하루만 일베 사이트의 게시물을 살펴봐도 해당 사이트의 정체성에 물음표를 떠오르게 한다. 공격적 성향의 누리꾼들이 여성 비하성 게시물은 기본이고 자신의 누드 사진과 청소년으로 보이는 실물 사진 등을 꾸준히 올리면서 선정적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베는 청소년도 성인인증 없이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정치성향상 극우로 평가받는 것과 별개로 일베가 자정능력을 잃고 성을 매개로 한 놀이터 혹은 성담론을 왜곡해 자신의 욕구와 분노를 배설하는 곳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일간베스트 게시물 얼마나 심하길래…
일베 게시판에는 '운영자는 뭐하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가면 일베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섞인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베를 이용하는 누리꾼조차도 일베의 게시물이 도를 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반증이다.
실제 일베 게시물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넘어 혐오로 느낄 정도의 게시물로 가득차 있다. 운영자는 이 같은 내용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게시물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혐오 게시물은 '일벤져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일베 사이트는 게시물을 올려 찬성표인 '일베로'를 많이 받으면 경험치가 쌓여 레벨이 오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베를 이용하는 누리꾼들은 빠른 레벨업을 위해 일명 '일벤져스'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일벤져스 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올라온 게시물 대부분이 자신의 성기까지 노출하는 사진을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레벨업을 위해 자학에 가까운 행위인 '일벤져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베 사이트에서 '일벤져스'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신체 주요 부위를 모자이크 처리를 해놓았지만 옷을 벗은 채 칼을 들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띈다. 한 게시물에는 알몸 상태에서 장난감 소총을 들고 있거나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진도 있다.
한 게시물은 "하위 1% 일벤젼스 인증한다"며 화장지로 주요 신체 부위를 가린 알몸 사진과 자신이 재학 중인 한 대학교의 학생증까지 공개했다.
심지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자신의 주요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와 수간을 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게시물까지 게재됐다. 사실상 일반 포르노물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게시물이다.
일베 사이트 중 '짤방'이라고 명시된 코너에서는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넘쳐난다. 일베 이용자들은 한국여성을 '김치녀'로 지칭하면서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증오에 가까운 욕설이 담긴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한국 여성 전체를 희생양 삼아 야만성을 드러내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시민혁명을 하자고 트위터에 제안한 한 여성에 대해 '김치녀'라며 신상을 추적해 OO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라는 사실을 밝힌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중고등학생으로 나이로 보이는 얼굴이 노출된 여성들의 사진도 올라오는 등 인권 침해성 게시물도 발견된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특히 "장애아동 어린이집 봉사가서 멀쩡하게 생긴 애들 밥 떠먹여주다보면 옷 같은데 흘린다. 그걸 닦아주면서 가슴을 만진다"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아동을 성추행했다는 내용까지 게시됐다. 지난해 7월과 5월에도 각각 "며칠 후에 6살 조선족 여자아이를 XX할 계획이다. 질문 받는다"라는 글과 "고양이는 죽여야 제 맛"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와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일베 사이트에서는 성적 폭력성이 담긴 게시물뿐만 아니라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하는 등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내용도 수두룩하다. 특히 일본군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한 할머니를 '원정녀'라고 칭한 게시물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일베 사이트,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 움직임 일어
일베 사이트의 유해성이 도를 넘다보니 청소년들의 사이트 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난해 11월 18일 포털 네이버 지식인에는 "제 남동생이 일베의 기미가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누나로서 지금 걱정돼서 미칠 것 같습니다"라고 토로하는 내용도 발견된다. 포털 다음에서는 일베 사이트를 유해사이트로 지정해달라는 청원 서명 운동도 지난해 11월 시작해 1만8천여 명이 서명했다. 워낙 선정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다 보니 언론사에서 일베 사이트만 담당해 기사화하는 전담 기자가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일베 게시물은 반여성, 자기 비하, 특정 지역 폄훼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서바이벌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투용어들이 난무하는 것도 일베 게시물만의 특징이다. 게시물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힐 경우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이는데 백인 우월주의 사상과 같이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면 가차없이 공격하는 현상도 엿보인다.
일베 게시판에는 게시물의 선정성을 지적한 기사를 링크해놓고 해당 기자의 '신상을 털자'며 집단 테러를 독려하는 게시물도 올라와 있다. 실제 한 기자는 "일베의 유해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더니 일베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 수백 명이 집단으로 카카오톡 단체 채팅 그룹에 초대해놓고 테러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해정보심의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일베 게시물의 유해성을 신고한 내용 중 18건이 심의위 의결을 거쳐 '시정요구'로 처리됐다. 주로 성매매를 조장하거나 음란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자는 "심의위에서는 우선 개별적인 정보(게시물)를 보고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며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한다면 청소년 접근에 있어 수용 수준이 부적합하고 전체적으로 불법 정보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관계자는 일베 사이트 전체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선정하는 문제에 대해 "그런 내용들을 검토 중이고 고려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일베 사이트에는 유해정보 뿐 아니라 불법정보성 게시물도 문제가 크다. 유해정보와 별도로 지난 한해동안 일베 사이트에서 불법정보로 신고돼 시정요구 조치를 받은 게시물은 총 165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자격증 등을 위조해준다는 문서 위조 게시글이 56건, 대포 통장, 대포폰 등을 개설해준다는 불법 명의 거래 게시글이 34건, 자살을 조장하는 게시글이 26건, 마약류 판매 유통 게시글이 19건, 지역·인종·여성 등을 차별 비하한 게시글이 8건이다.
일베 측은 '일베저장소 유해사이트설'이란 제목의 공지사항을 통해 "일베저장소는 하루에 4만개 이상의 글과 수십만 개의 댓글이 게시된다. 그 중 당연히 일부 적절하지 않은 컨텐츠가 포함될 수 있으나, 그에 대한 운영진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하여 삭제 및 제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저들이 동조했다는 주장 또한 게시자를 비난하는 대다수 유저들의 수많은 글을 모두 배제한 악의적인 편집에 의해 과장되어 여론몰이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며 유해사이트 지정 움직임에 반발했다.
유해사이트라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일베 운영진은 지난해 12월 성인 카테고리 게시판을 추가로 개설하기도 했다.
일베현상, 치유가 필요하다
일베 사이트의 유행성 게시글의 해악만을 보고 규제를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심리적 충격을 느낄만 콘텐츠가 가득하지만 일베현상을 사회적 억압이 강할 때 자신의 욕망을 배출할 수 있는 '해우소'를 찾는 현상으로 본다면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자존감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베현상도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의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이 '키가 180센티가 되지 않으면 루저'라고 발언을 했다가 남성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처럼 일베 이용자들이 여성에 대한 공격성이 유독 강한 것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공격성으로 투사해 여성을 일방적으로 '물질의 노예', '속물' 규정해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최영일 문화평론가는 "일베의 유해성을 놓고 적대시해서 때려잡는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며 "성매매를 단속한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일종의 사회심리적인 집단현상이 있는데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을 덮어버리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베현상은 익명에 기댄 개인들의 원초적인 욕구와 강력히 결합돼 있고 차별적이고 비하적인 언어로 표현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현상인데 이를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최 평론가는 "익명에 기댄 네거티브는 전염성이 강하다"면서 "지금은 10~20대 층이 일베를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중장년층이 일베를 해방공간으로 인식하고 선정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 첨병으로 기능한다면 사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해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집단이 등장해 일베현상을 담론의 장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 2013-01-24 18:27:42 노출 : 2013.01.25 1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