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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힘
게시물ID : freeboard_655419짧은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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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1
조회수 : 1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27 18:07:26

어제 겪은 이 일을 평생 잊고 싶지 않기에, 이렇게 옮겨 적어 본다.

 

어제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난주 토요일에 친구들과 놀아서인지, 금세 버스카드의 돈을 다 써 버려서 등교할 때 잔액이 부족해 나의 전재산이었던 1,000원을 내고 말았다. 굉장히 아끼고 아껴 둔 돈이었는데... 너무 허무했었다.

 

 1교시에도 기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영화는 교실에서 봐도 되는데 꼭 그렇게 무용실까지 가야 했나? 애들과 함께 살짝 무용 선생을 씹었다.

아, 그 전에도 안좋은 일이 있었긴 했다. 음.. 안좋은 일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내가 기분이 언짢았다. 주혜는 지금 내게 민지를 이용하고.... 라고 해야 할까? 그냥 위로 받을만큼 다 받고 버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주혜... 000이랑 깨지고 제정신이 아니다. 너무 막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주혜는 그렇게 1교시 시작 전에 날 깨우고 무용실에 가자는 말과 함께 인형이와 먼저 나가 버렸다. 자고 있는 민지를 그냥 두고...

 

 '이건 뭐, 나한테 맡겨두고 간 거야? 참 나...'

 

새벽 4시에 잠이 들어 피곤한 민지를 깨우고 무용실로 갔다. 왠지 오늘 민지가 굉장히 예뻐 보이고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계속 얘기하고 놀았다. 물론 그 중간에도 주혜랑 인형이가 신경쓰였지만...

 

2교시 수학 시간에는 효정이와 계속 놀았다. 최효정... 진짜 괜찮은 아이인 것 같다. 밝고, 재미있고... 내년에 친구를 새로 사귄다면 이런 애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3교시. 인덕당으로 집합하라고 했다. 또 기분이 급 안좋아졌었다. 방학식이 뭐 대수라고 인덕당까지 집합하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렇게 속으로 씨부리며 인덕당으로 향했다. 오늘 교복 안 입고 왔는데...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웬걸... 내 육감은 너무 정확해서 탈이라니까. 망할 교감이 교복 검사를 하셨다. 2학년인가... 한 명이 쫌 쪽을 당하긴 했으나...뭐, 별 탈 없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아니, 별 탈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민지에게 상해를 입혔다. 아.... 많이 다쳤으면 어쩌지. 이미 한 번 다쳤던덴데... 교복 안 입은 애들이(나 포함) 단상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던 도중, 마이크 선이 내 발에 걸려서 떨어졌다. 하필 민지의 손에 그게 맞았나 보다. 손이 굉장히 부어 있었다. 인덕당에서 계속 아프다고 하더니 먼저 나가버렸다. 그래, 예전부터 그 애는 자기만 생각하는 게 맘에 안 들었어. 또 기분이 상했다. 교실에 도착하니 교복 다 챙겨입고 먼저 인덕당을 나간 애들이 청소를 다 해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마운 애들인데... 어제는 너무 기분이 안좋아서 그걸 몰랐었다.

 

민지는 여전히 투덜댔다. 저번에 한번 다치고 나서는 비오는 날이면 너무 쑤신다고, 조심하고 있었는데 또 다쳤다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물론 한 번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입안에서 맴돌고, 병원에 가라는 말이 대신 나왔다. 왜 그런지 나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감정적인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걸까? 우는 모습도 보이기 싫어하는 걸 보면...

 

병원에 가라고 말 한 뒤, 난 여러가지 잡생각에 시달렸다.

 

 '만약에 병원 같이 가자고 하면 어쩌지... 치료비는 내가 부담해야 하는 건가...'

 

친구가 다쳐도 나는 굉장히 이기적인 아이였다. 아니, 돈이 나를 이기적이게 만든건가... 치료비. 치료비... 이것이 나를 제일 힘들게 만들었다. 부모님한테 미안해서 돈 얘기는 잘 못 꺼내는데... 그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괴롭고 힘들었나보다.

 MONEY. 돈은 날 옛날부터 날 많이 힘들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죽게 만들었다. 내 정신을 모두 파괴해 버린 녀석이 바로 돈이다. 이 녀석이 지금까지 쭉 날 웃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인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짧은 종례가 끝나고, 민지가 나보고 남으랜다. 알겠다고 했다. 인형이와 주혜는 우리반 애들과 스케이트장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나의 오늘 계획은 이랬다. 같이 스케이트장에 가자는 주혜에게 학원을 간다고 말해서 거절해 놓고, 엄마에게는 스케이트장에 간다고 하고 돈을 받은 뒤, 그 돈을 저장해놓고 기물림때 보태 쓰자...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나로써는 최선의 계획이었는데, 버스카드에 잔액이 없는 바람에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부터 생각해 놓던 거였는데...

 

 일단은 민지가 할 말이 있다고 했으니까 인형이를 예지와 함께 먼저 보내놓고 어떤 말을 꺼낼지 기다렸다.

 

 "글쓴이야 너 바로 학원 가야돼?"

 "응..."

 

 사실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혜가 아직 교실에 있었다. 바로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스케이트장에 못 간다고 변명을 둘러 댄 나로써는 민지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난 민지에게 눈치를 줬다. 그런 게 아니라고... 나 시간 있다고...

 

 

"아니, 나는 너 시간 있으면 밥먹으러 같이 가자고 할려고 했지..."

"아아... 나 돈도 없는..."

"xx야, 너 오늘....."

 ".........."

 

그럼 그렇지. 그딴 걸 알리가.

그래. 내 눈빛도 못 알아듣고. 말이나 씹어대고. 그래도 오늘 좀 얘기도 했는데... 참 나. 짱인데, 너. 그렇게 태도 확 변해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계속 나를 자해하고 있었다. 너는 그럼 이렇게 행동 안 하냐고...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며칠전까지 민지랑 말도 잘 안 섞던 애가 오늘은 그렇게 잘 통한다는 듯이 얘기해도 되냐고...

자학하면서도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 끔찍했다. 왜 나는 계속 이렇게 양보만 하면서 살아야되는건가... 나도 가끔 이기적이고 싶은데... 남의 이기적인 행동에 화도 내보고 싶은데... 나도 언젠가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화도 못 내고 마음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만 있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그렇게 민지는 가버렸다. 도대체 나보고 왜 남으라고 한건지...? 너의 그런 행동이 싫어. 무언가 심각하게 말할 것 같으면서도 싱거운 소리나 해대는 네가 너무 싫어. 너 때문에 인형이를 그냥 보내 버렸잖아. 어쩌면 버스비도 빌릴 수 있었을 텐데.... 근데, 너 갈 때 우리 서로 잘가라는 인사는 했었냐?

 

나는 끝까지 남았다. 우리 반 애들이 모두 갈 때 까지도 나는 혼자 남아 있었다. 가식적인 웃음을 뿌리며 남아있었다. 오늘 다 놀러가는구나... 버스비를 빌릴 때 만원짜리밖에 없다는 애들의 말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일명 썩은 미소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피식 날렸다. 한 10명에게 천 원 짜리가 있냐고 물어 본 것 같다.

 

엄마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장난하냐고? 장난인 것 같냐? 돈이 없다고.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그럼 오지 말랜다. 버스비 다 떨어질 때까지 무슨 정신으로 살았냐고.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다스리고 그래. 안 들어가. 안들어간다고. 걸어오랜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배가 사르르 아파졌다. 아픈데 어딜 걸어가. 오늘따라 가방도 무거운데.... 배가 진정될 때 까지 교실에 있었다.

 

담임한테 돈을 빌릴까 생각도 해 봤지만, 저번에 빌린 돈도 미처 갚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갚아야되는데.... 복도에서 A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A라면 빌려 줄 지도 몰라. 얼른 복도로 나갔다. 하지만 교무실로 들어가버린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돈을 빌리기는 뭐하니까....

 

마지막으로 효정이가 남아 있을까 1반으로 갔다. 역시. 아까 얼핏 모습이 보였는데 남아 있었구나. 그 착한 아이는 친구들에게 돈이 있냐며 물어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고마운 일인데, 그 때에는 내 표정 관리에만 급급하여 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짓는 일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고마운 지 몰랐었다.

정말로 고마운 친군데... 항상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친구야.

내년에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결국 집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배는 여전히 아팠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그것 역시 무서웠다. 며칠 전에 일을 봤는데 피가 많이 묻어 나왔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싶었다. 그 때의 나에겐 그것마저 스트레스여서 미칠 지경이었다. 학교에서 나오는데 서러운 마음에 계속 눈물이 나왔다. 학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건 너무 민망해서 옷으로 눈을 계속 비볐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나... 학교에서 이러는 건 너무 쪽팔리잖아...'

 

학교 후문으로 나오는데, 또 울컥했다. 그래도 계속 참았다. 아, 주혜 아직 집에 있을까? 돈 좀 빌려야겠다. 곰모자도 가지고 나오구... 목소리를 꾹 누른 채 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혜야? 너 지금 어디니. 집이야? 누구랑 있어? 너 천원 있어...? 나 지금 너네 집으로 갈 테니까 돈 좀 빌려줄래...? 응,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끊고 주혜네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또 서럽더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냥 뚝뚝 흘려버렸다. 이렇게 빨간 눈과 울음에 잠긴 목소리를 들려주기 싫었다. 주혜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친구한테 돈 빌렸다고, 나중에 간다고... 주혜의 대답은 그냥 '응'이었다. 하하... 역시 내가 울었다는 건 모르는구나. 이상한 낌새를 약간이라도 눈치 채주었으면 했는데. 역시... 모르네...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너무 빨리 걸은 것 같았다. 계속 비집고 나오는 눈물 때문에 경황이 없었나보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내 옆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면 고개를 숙였다. 눈물 고인 시린 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 오늘 너무 추한데. 머리도 눌려서 묶어버렸는데. 살도 쪄서 치마도 자꾸 위로 올라가는데. 가방끈도 자꾸 내려오고... 열받는다. 사람들이 이런 내 모습을 안 봤으면 좋겠어.'

 

그래... 그래서 내가 요즘 버스를 타고 다녔구나. 걷다보면 추해지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버스 좌석에 앉으면 내 모습이 잘 안보이니까. 좌석 속에 내 모습을 숨기고 싶었어... 진짜...................

 

죽고싶다.

 

 

 

 

 

 

눈물이 멎어 갈 때 쯤이었다. 귤 할아버지를 만난 건.

부은 눈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내게 귤을 내밀었다.

황당했다.

 

 "......예?"

 

할아버지였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웃으며 내게 귤을 건넸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귤을 한 번 봤다.

다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그 할아버지는 귤을 내 손에 꼭 쥐어주고는 사라지셨다.

 

 '하... 내가 이제는 생판 모르는 할아버지한테 위로를 받네?!'

 

그 순간이었다. 겨우 참았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미칠듯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귤을 꼭 쥐고 울었다. 옆에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분명히 느꼈다.

할아버지의 손에 온기는 없었지만, 귤을 받는 순간 가슴부터 뭉클한 것을.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 계속 울고 말았다. 들어간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다행히도 사람이 없어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고도 계속 울 수 있었다.

 확실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서럽게 울었다.

 

이게 뭐야... 왜 할아버지가...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내 마음 이해해주지 못했는데... 할아버지... 귤할아버지... 너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나 이제 살아요. 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워서, 나 안 죽을래요.

 

오래 살면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걸까. 난 분명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텐데... 내 모습이 너무 무거워 보였을까. 나도 귤할아버지처럼 멋지고 싶다. 오래 살면 가족에게도 남들에게도 폐가 된다고 생각했던 나를 바꿔놓은 귤할아버지. 집에 가면 또 자해했을지도 모르는 날 살려놓으신 귤할아버지.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는 걸 깨우쳐주신 귤할아버지. 내 심장에 희망을 심어놓고 가신 귤할아버지. 눈물을 쏟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풀어주신 귤할아버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고마운 귤할아버지.

 

 다음에 우리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제가 귤을 드릴게요.

 

 

 

 

아까 모처럼 싸이에 들어갔는데 고1때의 제가 비공개글로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그 할아버지께서 주신 귤은 차마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결국 곰팡이가 슬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 날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거든요.

그 귤 할아버지는 다음에도 여러 번 찾아가 봤지만 다시는 뵐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로. 제가 당신 덕분에 살아있어요.

고등학생때 겪었던 심한 우울증도 이겨내고, 이렇게 웃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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