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더이상 만화,소설,드라마,특히 노래에 예전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더이상 그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현실과 많이 다르다는걸 알았기때문에.
다른 문화적 코드를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사람은 스스로 '문화적코드'자체를 없애고 감정소모를 줄이게 되는게 아닐까.
노래를 예로들면 헌신적인 사랑을 주다가 배반당한 사람은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것.혹은 여러번 배반당한 사람은 '여자/남자란 다 똑같나봐'라는 가사에 마음이 찡해지는것.
그래서 다른 문화적코드를 가진 노래에는 가사 자체가 잘 다가오지 않는것.
그렇다면 뮤지션들은 어떨까.이혼이나 진심을 다한 사랑이 깨졌거나 하는 경우에 충격을 많이 받아서 감수성이 메말라버린경우-그 충격을 다른 감수성으로 승화한 예를 제외하고-그래도 평생을 그 감수성에 의지해서 살아온 그 사람은,그 공허감을,재테크나 기타 사업으로 채울 수 없는 그 공허감을,이미 눈떠버린 현실과의 괴리.방황의 결과가 자살로 나타나기도 하고,슬럼프로 나타나기도 하는걸까.
그렇다면 뮤지션은 살기위해 예민해져야하고,평생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연령대 의 감수성에 맞춰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걸까.영원하지 않는 감수성을 위해,신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할때만 존재하는것,어느순간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알아버려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묶여 살아야 하는게 뮤지션인가?
대중은,감수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그 작품들을 즐기면 그만,현실주의적 나이가 되면 즐기지 않으면 그만,그러다가 어느날 비오고 술마시고 울적한 날에, 다시 그 작품들 찾아서 아 그땐 그랬지 하면서 즐기면 그만.그런데 그런 감수성에 인생을 걸고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사람은,처음부터 감수성의 제조?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호르몬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모든일에 무뎌질 수 있는사람?
이런의미에서,불교라는건 참 재밌다.평상심을 요구하면서도,모든걸 다 버리고 삼라만상 일체를 말하면서도,감정을 다 버리라면서도,그 스스로 문화적 코드를 만들어간다.감정을 만들어내는 문화를.명상할 때 왜 음악이 필요하며 차를 통해서 선을 구한다는걸까.평상심을 갖기위해 속세를 떠난것은,진정 평상심을 갖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상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그 상황을 회피하는게 아닐까.감정소모가 싫어서 평상심을 추구하면서도 또다른 문화적코드에 젖어버린다.
결국,깨달음을 얻는게 목적이 아닌,깨달음을 얻고자하는 길에 서있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것.
가장 믿음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지만,아이러니컬하게도 내게는 불교의 명상의 음악이나 목탁소리가 찬송가나 성당에서의 거창한 미사의식만큼이나 문화적코드로 다가온다....그 길을 위한.
불교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밝힘니다.저는 무교이고,기분 내키는대로 성당도 가고 교회도 가고 절도 갑니다.언젠가 너무 힘든일이 있어서 가까운 교회를 갔는데 그날 목사님 말씀이 사람은 마음에 뭔가 공허함이 있어서 술도하고 마약도하고 연애도 한답니다.그분은 그 공허함을 신으로 채우라고 하셨지만 그건 왠지..목적이 있는 신앙 아닌가 하고서 방명록에 끝내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죠ㅋㅋ
그냥 주절거려봤습니다.그 공허함 이라는거,만약 그것때문에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그게 진짜 사랑일까,하고 생각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