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당시의 북한 상황
대규모 아사자 발생과 더불어 인육, 나무껍질을 먹는 이들이 증가.
탈북자들 속출, 당의 무자비한 탄압에 불신이 커짐.
아사자는 신경도 안쓰고, 죽은 김일성을 기리는 수억 달러의 생일행사 강행.
당시 韓 정부 + 美 정부
'北의 붕괴가 임박하였다.'
체제 균열이 극심한 북한. 이제 남은 것은 北을 붕괴시키는 것 뿐.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절호의 찬스.
다급해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라도 체제를 유지하려고 발악하지만
'제네바 기본 합의서' 에 의해 핵개발을 포기한 것은 물론 자금과 기술력, 장비조차 없음.
(제네바 기본 합의서 : 북한 핵개발 사태로 조성된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대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한다는 내용.)
그러나 그 때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건.
1997년 12월 19일 제 15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당선'
1998년 8월 17일 New York times.
'정보기관으로부터 북한에서 대규모 지하 단지를 발견. 핵무기 제작 의혹 정보를 수집하였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
'특별사찰을 하겠다.'
北
'IAEA에서 특별사찰을 나오면 남한에서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것이 2008년까지 연기되므로 거부한다.'
2001년 6월, 7월.
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에 걸쳐
154명의 북한 기술자들을 경수로 운전과 컴퓨터 정비, 노심 관리 등에 대하여 교육 시킴.
당시 대북 소식통
'김일성 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왔던 핵·물리 관련 인력이 교육을 받고 갔다.'
2001년 12월.
마찬가지 김대중 정부에서 19명의 북한 측 핵 전문가를 울진원전, 원자력교육원, 두산중공업 등에 견학시킴.
2002년 美.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북한의 핵무기 제작.
그리고 연이어 터진 사건.
2002년 12월 19일 제 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당선'
2003년 北.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제네바 기본 합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했던 것 기억나나?
북한이 핵 개발에 돌입하면서 합의를 위반했기에 지어줄 필요가 없음.
따라서 2006년 1월. 경수로 공사 중단으로 한국전력 철수.
그런데.
철수 당시 북한이 455억원 어치에 이르는 우리 측 장비·자재의 반출을 막음.
盧. '북한이 잘 보존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킬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은 바로 무단반출해서 사용함.
그런데 7개월 뒤인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는 '대북 수해복구' 명목으로 굴착기 50대와 페이로더 60대, 8t 덤프트럭 100대를 추가로 더 보냄.
2006년 10월.
北.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지하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시행.
그리고 2008년.
제 17대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취임.
09년 5월 24일: 북한 2차 핵실험.
러시아 국방부,
'북한의 2차 핵실험의 폭발력이 최고 20킬로톤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
(참고: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된 핵폭탄의 위력은 15킬로톤과 22킬로톤.)
2010년 9월 북한에 수해물자 인도.
北.
'수해 구호물자를 제공할 바에는 비상식량이나 생활용품·의약품보다 쌀과 수해복구 물자·장비를 보내 달라'.
북한은 물자·장비의 구체적인 내역을 '시멘트와 자동차·굴착기 등' 이 수해복구에 필요한 것이라고 예시.
이명박 정부. '쌀은 군수물자이자 전략물자. 그럴 순 없다.'
북한이 요청한 쌀, 시멘트 등은 수해 복구보다는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평양 10만세대 주택건설'에 이용당할 것이라고함.
北. “보잘것없는 물자로 모독”
이명박 정부의 수해 복구 지원을 수 차례 지속적 거부.
또한 국가원수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사격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 찢어죽이겠다고 연일 선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