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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우리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러브스토리입니다.
게시물ID : military_451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찌입니다
추천 : 10
조회수 : 600회
댓글수 : 36개
등록시간 : 2014/06/25 09:44:28
전에 제가 세월호 게시판에 올렸던 글중.. 댓글에 저희 할아버님과 할머님 이야기를 썻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 정확한 지명과 년도는 모르겠습니다.
 
할머님께서도 전쟁통에 정신이 없으셔서 정확히는 모른다고 하셧어요..;
 
아래는 첫줄에 썻던 내용의 원본 글 링크입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61771&s_no=161771&kind=member&page=2&member_kind=bestofbest&mn=170690
 
 
 
저희 가족은 해마다 명절, 현충일, 그리고 할아버님의 기일이면 이천 호국원을 방문합니다.
 
저희 할아버님은 6.25 참전용사 이시고
 
5년전..갑상선 암과 싸우시다..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몇년이 지난후에..
 
온가족이 큰집 작은집 다 모여 할아버님을 뵈러 갔었습니다
 
그때 고모가 할머니께
 
"엄마는 아빠가 어디가 그래 좋아가지고 돌아가시고 지금 까지도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속도 많이 썩이고 술도 마니드시고 고집도 엄청 쌘데 왜그렇게 좋아하는거야?" 이렇게 물으셨어요.
 
이 질문에 저희 할머님은 할아버님을 처음 만났을 떄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때는 6.25전쟁때 입니다.
 
저희 할머니께서는 10대셧어요..
 
이북에서 태어나 남쪽으로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내려오는 중에..
 
남자 형제들은 전부..인민군에 끌려가 군인이 되었고..
 
부모님과 저희 할머님만 피난을 내려오게 되셨다고 합니다..
 
피난중에 어느 마을에서 인민군에게 검문을 받으셨나봐요.
 
검문의 내용은 왜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 것 이냐 라는 거죠..
 
반공이 아니냐? 하며 가족을 모두 끓고 갔다고 합니다.
 
가족이 끓려 간 곳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곳은..
 
반공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을... 일렬로 새워놓고 총살을 하는..
 
뒤에는 구덩이에 수많은 시체가 싸여있엇고.. 줄을 지어서 순서를 기다리고..있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할머님은..고아가 되셨습니다..
 
할머니의 눈 앞에서...아버지와..어머니는 총살을 당하셨다고 하셧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머니가.. 그곳에 섰을때 였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속해잇던 부대가 그곳을 급습하였고 전투가 치뤄졌습니다..
 
인민군, 한국군 민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현장에서 숨을 거두웠다고 합니다..
 
그와중에 할머니는 구덩이 속.. 아버지와 어머니를 끓어 안고 몸을 숨길 생각도 없이 울고 계셧는데..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할머니를 들춰업고 마구 뒤셨데요
 
민간인 구출이 작전의 핵심이었고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저희 할머니를 구하셨죠..
 
할머니는 발버둥쳣지만 할아버지는 놔주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민군을 소탕하고..
 
마을을 정리하면서.. 한국군과 피난민들이 같이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구해주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피난을 가지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억지로 대리고 내려오셨다고해요..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딱 10살 차이가 나십니다..
 
10대소녀와 20대 청년 이셨지요..
 
고아가 된 소녀를.. 할아버지는 먹을 것도 없고 힘이 들어도 계속 챙겨주셨다고 해요..
 
그렇게 부산까지 할아버지 부대를 따라 내려오셨고..
 
할아버지는 부산에서 고아로 살아갈 할머님이 걱정이 되셨었나봐요..
 
백방으로 이곳 저곳 거처를 구해주려 하였지만..
 
낙동강에서 전투가 계속 지속되어..할아버지와 할머님은..이별을 하게 되었지요..
 
딱하나..할아버지의 부대명.. 서로의 이름만을 남기고..
 
결국 이별을하게 되셨지요..
 
할머니는 부산에서 많이 힘드셨다고 합니다..
 
밥을 준다면 뭐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희 할머니를 이쁘게 봐주신 어른께서..
 
저희 할머니의 양부모가 되었주셨지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대명과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셧다고 합니다.
 
그때 살려줘서 감사하고..부산까지 대려다 주어서 감사하고..
 
이젠 양부모님이께서 봐주셔서..밥도 먹고 살수있게 되었다며..
 
할아버지는 무사한지 건강은 한지.....이런 내용의 편지를 수없이 써서.. 부산의 군부대에 주었다고 하는데..
 
제가 보았을땐 사령부나 위문편지를 전달해주는 곳에 전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쓴지도 반년 정도..
 
반년이 다 되어서 할아버지께 편지가 한통 왓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 전쟁이 끝난다면 꼭 할머니를 보러 오겠다고 말이죠..
 
그후.. 수없이 편지를 썼지만..
 
할아버지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감사의 마음은..어느덧 연정으로 변하셨지요..
 
그리고...전쟁이..끝나고..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할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할머니께선.. 전쟁통에..돌아가셨구나..하셨다고합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그리며.. 지내셨느데..
 
할아버지를 잊어갈때 쯤..
 
할아버지가 앞에 나타나셨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앞에 떡하니 나타나시고
 
할머님이 보내왔던 편지.. 수많은 편지중 전해 받은 편지는 일부지만..
 
편지를 손에들고....나타나셧다고 해요..ㅎㅎ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주셨을때도..
 
할머니를 다시 만난 부산에서도..
 
할아버지는 백마탄 왕자같이 갑자기 나타나셨데요..ㅎㅎ
 
할아버지는 편지속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아셨나봐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피난중에 할머니를 챙겨주시면서 연정이 생겨나신거 같에요 ㅎㅎ;
 
그래서 걱정을 하며 할머니를 그렇게 챙기셨던 가봐요 ㅎㅎ;
 
할아버지는 한 터프하시는 분이셨어요.
 
할머니 앞에 나타나신 그날..
 
양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를 대려가겠다고 하셨다네요.
 
왜이렇게 늦게 왔는냐고 야속하다고 할때..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가족을 기다리느라 오래 걸리셨다고 했다 하셧어요..
 
할머니는 이리하여 너희들이 있는거야~ 하시며
 
"나의 생명의 은인이자 나의 남편이며,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의 아비이고, 내 사랑하는 손주들의 할아버지이고
 
 그날 내가 죽었다면.. 너희도 없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니.."  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말은 제가 정확히 기억합니다.ㅎ..
 
자세히 이야기를 하면 영화같은 일이지요..
 
제가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로 써보아지만..
 
실제로 세월을 보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는.. 정말 영화는 쨉도 안될 실화실태죠..ㅎ
 
 
 
 
제가 참 두서없이 글을 썻지만;
 
저희 할머님의 할아버지를 향하신 마음은 일편단심 아름답고 숭고하십니다..
 
할머님도..이제는 연세가 연세신지라.. 기력도 없으시고.. 얼마전에는 계단에서 다릴 접지르신게..뼈에 금이가서 깁스를 하셔서..
 
매일 걱정이 됩니다..
 
6.25....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저에겐 그렇게 큰의미가 없었었느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할머님의 러브스토리를 들은 지금은.. 의미가 남다르네요..ㅎ
 
 
저희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많은 참전용사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할아버지,할머니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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