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기 전에 그동안 각종언론에서 내뱉은 '북풍' 효과로 북한 전체를 악마집단으로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지금은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운 개새끼 맞습니다 하지만 북한 전체가 개새끼는 아니지요...)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본래 남한에서만 불리던 이 노래는 1989년 임수경이 북조선을 방문해 부른 이후 널리 퍼져,
남북에서 모두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남한에서 '이 정성 다해서 통일 / 통일을 이루자'는 2절 부분을
북조선에서는' 이 목숨 다바쳐 통일 / 통일을 이루자'라고 불러, 남북의 가사가 약간 다르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때 양 정상인 김대중과 김정일이 6·15 남북 공동선언에 서명한 후 수행원들과
손을 잡고 함께 부르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2000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평양어린이예술단 공연에서도
예술단은 마지막 순서를 통해 이 노래를 불렀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연유로,
2009년 8월 23일에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 중 조가(弔歌) 중 하나로 연주되기도 했다.
[출처] 우리의 소원 / 우리의 소원은 통일|작성자 경희애문화
6.15남북공동선언은남북 공동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그 파급효과 또한 이전의 어떤 합의보다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중 하나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6.15 공동선언 이전에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7.4 남북공동성명 등과 같은 통일을 위한
남북간의 합의가 있었지만 서로의 체제에 대한 불인정이란 전제가 깔려있었고,
양쪽간의 적대시정책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은 서로가 통일의 동반자이며, 하나의 공식적인 체제임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힘으로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이는 비록 상징적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통해서 베일에 쌓여있던 북한 최고지도부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우리가 가졌던 북한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을 씻어주는 계기도 되었죠.
당시 어른들의 대화에서 "북한사람들은 뿔달린 짐승이고, 김정일은 돼지모양을 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우리랑 하나도 다르지 않더라" 라는 우스개 소리는
반공의식속에서 빨간 색안경을 끼고 있던 우리의 모습에 대한 자조의 목소리이며,
놀라울 정도의 변화된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경제협력과 교류의 활성화입니다.
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수많은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합의하였습니다.
금강산 관광의 확대, 경의선 철도 연결, 개성공단 개발, 육로를 통한 북한 관광 등은
이미 상당부분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해도 공동선언 이전에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변화들입니다.
세번째는 민간교류의 대폭적인 확대입니다.
그동안 정부주도의 남북 교류로 인해 민간인이 북한에 가는 것은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동선언 발표 이후 민간급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정부차원의 많은 지원 덕분에
북에 가고자 한다면 그리 큰 어려움이 없이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측에서의 수많은 논란이 있던 8.15 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방북, 남북 노동자 통일대회,
남북 농민 통일대회, 각종 청년학생들의 교류 등 민간단체 주도의 수많은 방북이 이루어졌고,
또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의 확대와 지속적인 실시는 가족을 잃었던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는 정기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연락소 또는 면회소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네번째로 서로간의 대결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각적 대화채널의 합의입니다.
정기적인 장관급 회담을 실시키로 함에 따라 남북이 장소를 번갈아가면서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고
각종 합의 및 진행상황 점검과 갈등해소 노력은 서로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양쪽 정부차원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한 대표적인 예로 국방장관급 회담은 서로를 겨누는 총칼을 쥔 군대의 수뇌들이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또한 판문점의 연락소 설치를 통해서 상호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 등은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너무도 많지만 양쪽 모두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통일 이후의 국가 체제에 대하여 일정부분 합의를 한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하나의 체제, 하나의 정부, 하나의 국가>를 주장했던 남측과 <두개의 체제 인정, 두개의 연방정부,
하나의 통일(중앙)정부, 하나의 국가> 를 주장한 북측이 <두개의 체제 인정>(낮은 단계의 연방제)이라는
국가체제에 합의를 하고 이런 방향에서 더욱 논의해 나가기로 한 것은
정치적인 통일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우리가 관심갖지 않고 지나친 사이에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이미 통일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런 주장에 상당히 동의하며, 가장 바람직한 통일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한순간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미처 철저한 준비 없이 통일이 되었던 독일의 경우
독일 경제의 몰락과 사회적 불안등을 야기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많이 초래하였던데서 알수 있듯이
통일이 완료됐음을 선언하기까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서로간의 사회,문화,정치,경제 등 다방면에서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하나로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은
완전한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과정들입니다.
6.15 공동선언과 전대협 임수경의 최초 민간인 월북을 통해 이루어진 남북 문화교류의 시발점은
남한에 대한 신선한 문화충격과 무한한 적대감을 허물어주는 가장 큰 가교역활을 했다는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이정희의 남측발언은 6.15공동선언에 입각한 남과북을 동일한 위상의 통일 주체로 인식하여 북측,남측 으로 토론회때 말을 한것이다. 절대 남한을 깍아 내린것도 북한을 치켜 세워준것도 아니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한민국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며 박정희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인혁당사건, 남영동1985, 5.18광주민주화운동, 민주당,통진당 종북세력 으로 매도할수 있었던 것은 단한가지다
바로
" 국가보안법의 7조 반공 "
'박정희반대=종북' 으로 이용해 먹은것이다.
이렇듯 박정희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주체사상을 답습하여 대한민국에 똑같이 자신을 반신반인 세뇌교육을 통해 통치하였다.
그리고 그의 자식 박근혜는 세뇌당한 어르신과 우리 부모를 이용해 대선에 승리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 다를바 없는 파시즘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