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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죽었다.
게시물ID : gomin_5696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전융성
추천 : 13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1/30 06:37:26


정말 친했던 사람이 죽는다는게

20대를 갓 시작한 나의 주변에서 일어난다는게


황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멍하다.


 

감정이 너무 북받처 올라와서 말투가 좀 이상합니다. 양해부탁드려요.


-


난 수능을 본 학생이다.

내 친구도 마찬가지.


난 남자. 걔는 여자.

중3때 알게 된 후 연인이 아닌 그저 친구 사이로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2,3학년을 전부 같은 반에서 지낸 터라 주변에선 사귀냐는 둥의 이야기까지 떠돌아다닐 정도로 맨날 붙어 다녔다.


난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작과 함께 시내 근처의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그녀는 부모님의 강경한 학벌주의로 인해 하루 24시간중 깨어있는 시간은 무조건 공부하도록 만들어졌고 그렇게 행동했다.

항상 힘들다, 죽고싶다고 나에게 털어놓은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던 말은 그저 '힘내라'와 함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문구만을 읊으며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버티고 있었다. 


솔직히 난 그녀가 정말 미칠듯이 좋았다. 행동 하나하나. 성격 모두.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모자란 부분은 내가 채워주고 내가 모자란 부분을 그녀가 채워주는 그런 사이었기에 

우리 둘의 사이는 정말 너무나도 각별했고 특별했다. 더 이상의 인연은 나에게는 없었다.

고백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녀를 방해할 수 없었다.

나만을 생각하는 사랑을 하기 싫었다. 배려하는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을 원했다.


그러기에 고백은 수능을 친 그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고3이 되었다.


서로가 정말 미칠듯이 바쁜 시기었기에 더욱 더 타들어가는 마음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의 관계는 정말 너무나도 가까웠다. 연인이 아니었을 뿐.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탓에 4시간 정도 밖에 잘 수 없었던 나와 달리 여유있게 7,8시간을 자면서 항상 공부하는 그녀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녀가 덮고 있던 담요를 내게 주었다. 베고 자라고.


8월.


날씨는 더워지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무덥던 방학은 우리 둘이 일탈하기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었다.

옆에 바로 대학교가 있기 때문에 그 인근에 오락시설이 많았기 때문.


그 때만큼 힘든 날도 없었기에 우리 둘은 항상 오락실 노래방에서 딱 500원치만 넣고 불렀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누가 고3이라고 생각하겠는가.



9월.


모자란 잠을 자고 있던 도중에 옆자리가 허전하다 싶었더니만 그녀가 화장실을 가고 없었다.

책상 위에는 다이어이가 펼쳐져 있었고, 예쁜 글씨가 그 위에 수를 놓았는 듯 펼쳐져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살짝 봤는데 알고 보니 공부 계획표였다.

뭔가 뒤에 더 있나 싶어서 메모란으로 가봤더니 그녀의 그림이 있다.


내 모습이다.


'이게 왜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그녀가 돌아와 나의 그런모습을 보고 내 뒷통수를 몇 대 갈겼다.

아팠지만 너무 좋았다. 그냥 내 생각을 이렇게 해준다는 거니까.


10월.


고3 막바지 중 막바지.

농담도 못한다 이제는.


힘내라. 힘내라.


그 이야기 밖에 못하던 그런 날들의 연속들이 지나고 드디어




11월.

그녀는 당연히 성적이 좋아야 하고

나도 실기 이외에 성적이 좀 괜찮게 나와야 했었다. 소년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제까지나 이모에게 신세 질 수는 없었으니까.



11월 7일.

수능 하루 전.


그녀를 불러 내어 긴장을 풀게 해주고 싶었지만 뭔가 방해될 것 같은 마음에 그냥 놔두고 집에서 복습하고 잤다.

못하면 뭐 재수하지 이런 생각으로 편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니 잠은 잘 오더라.



그렇게 수능날이 되었다.


수능 시험장 앞에는 조용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그녀는 다른 시험장이었기에 아침에 만나 서로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하고 자기가 들어가야 할 시험장에 들어갔다.


자리는 맨 뒷자리. 뒷 감독 바로 앞에 있어서 좀 신경이 쓰였지만 뭐 괜찮았다.

1교시 언어. 쉬웠다. 

2교시 수리. 뭐 그냥.

3교시 영어. 뭔가 좀 어려웠다.

4교시 사탐. 그저 그랬다.


실기의 비중이 높긴 해도 어느정도 성적이 나와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수능은 사실 나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했기에, 필사적으로 악착같이 풀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성적표를 가채점 해보았다.

9월 때 보다 훨씬 잘 나왔다. 이 정도면 수능 성적으로 한양대 중간은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정시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수능이 엄청나게 중요했다. 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9월, 10월. 원점수 총 합 396, 398을 받은 그녀는 수능날 못해도 390 이상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 않아 집으로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렸는데 그녀가 울면서

'들어오지마' 라고 했다. 이건 아니다. 이 때 만큼은 들어가서 반드시 어떻게 해줘야 될 것 같아서 문 앞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2시간이 지나도 열어주지 않았다.

얼마나 못 했길래.


'다음 기회가 있잖아' 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일 수 없었다.

그 동안의 고생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수능 친 이후 학교에 나왔을 때 그녀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정도만 그럴 줄 알았는데,

1주일이 지나도 계속 안 오는것이 뭔가 좀 불안했다.


고백이란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어떻게든 위로해 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2주일이 지나 상담 때문에 드디어 왔는데,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고 말도 없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미안, 당분간만 말 하지 말자' 는 대답과 함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했다.


당분간만이니까.



원서를 내었고, 방학이 되었다.

그녀 스스로가 정리하고 보듬어 예전처럼 돌아갈 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는데




29일 8시에 걸려온 전화


그녀의 어머니였다.







자살.





뭐라고 생각을 해야될지도 모르겠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왜 말도 없이 가버린 걸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지쳐 잠들다 새벽에 다시 깨어 지금 이 글을 쓴다.

곧 화장식을 할 것이다.


그 흔해 빠진 '좋아한다. 사랑한다' 이런 말도 못하고 가버렸다.

잠깐의 헤어짐이 아닌 영원한 헤어짐이기에

너무나 힘들다.


죽을 만큼 힘들다.



그녀가 있어서 버텨왔던 순간을 이젠 그녀가 없는 이 곳에서 버텨나가야한다.

그게 두렵다.


버팀목이 없어졌다.


나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버팀목이 꺾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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