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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사람이 열리는 나무 - 6부 -
게시물ID : panic_453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22
조회수 : 177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4/08 12:23:54




‘입석간판이 나올 시간쯤은 지난 거 아닌가?’

뒤를 돌아보자, 남푸른 밤하늘과 시커먼 산의 경계,
어렴풋 달빛에 반짝이는 아스팔트,
좌우로 끝도 없이 이어진 논밭만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흔한 바람 한 점 조차 불지 않자, 마치 세상은 멈춰있는 듯 보였다.

어찌, 풀숲이 이렇게 펼쳐졌는데, 벌레새끼 한 마리 없는가.
봄기운 냄새 맞은 개구락지며, 뱀들은 밤잠을 청하고 있나?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지.’

앞으로도 뒤로도 똑같기만 한 풍경은 내가 마을 초입에서 좌측을 돌아서
나왔었는지, 우측을 돌아서 나왔었는지 조차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대로 앞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 입석간판의 반대방향이라 손 치더라도,
어딘가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떤 마을이건 번화가건
연결이 되 있을 법도 하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90년대만 같았어도, 미래 예상도 그리기 대회에서
하늘 나는 자동차를 그리기 바쁘던 2013년도다.

어딘가로는 이어졌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차분함을 되찾고 싶었다.

어딘가로 이어진 것이 더 깊은 산 속이나, 강변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차분해 질 수도 있을 듯 했다.

왜,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자동차는 정말로
몇 시간 동안 단 한 대가 지나가질 않는 것일까.

매달려오지 않는 지연이 때문에 한참을 구부정하게 걸었다.
허리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아픈 것이, 혹여 이미 끊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뭐?”
“선배, 저 내려줘요.”
“너 정신이 들어?”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부터 주변의 들풀이며 산자락이 부산스레 나풀거렸다.
풀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대비하여 큰 바람이 날아들까,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먼 곳에서 분 바람 이었는지 차가운 밤바람에 얻어맞지는 않았다.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이의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나, 멈춰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직 지연이의 몸은 식을 대로 식어 있었고, 방향까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체될지 모르는 마당이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례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치명적, 지연이, 잃어버린 길, 시간. 잡스런 단어들이
머리를 맴 돌면서도 나는 흙바닥에 지연이 엉덩이를 살살 내려놓았다.

핑계를 찾은 듯, 마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지라도
“네가 내려달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대꾸할 핑계를 손에 쥔 듯.

지연이를 땅으로 내려놓았다.

“너 언제부터 정신이 들었어?”

차가운 몸의 지연이와 매듭을 지어 놓은 이불을 풀었다.
마침 또 바람이 한 번 일어 난 듯 사방의 풀잎들이 나부껴 춤을 추었다.
지연이와 몸을 때자, 밤기운이 등으로 달라붙었다.

분명 쌀쌀할 것이라 예상하던 봄밤의 기온이었으나,
지연이의 몸이 떨어져 나가자, 난로불을 쬐는 듯 금방 따땃하게 등짝이 달궈져 갔다.

“지연아.”
“….”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뭐?”

뒤를 돌아보자, 퍼런 이불이 형체를 잃은 채 널부러져 있었다.
이불을 감싸고 있어야 할 지연이를 찾아 고개를 바쁘게 돌렸지만,
지연이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질 않았다.

“선배, 저 내려줘요.”

마치 귓가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듯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한 차례 풀잎이 요동을 치더니, 밤 그림자에 숨어있던
들 고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온통 검을 털의 들 고양이는 어둠에 몸을 섞으며 유유히 내게로 다가왔다.
고양이의 눈빛이 아스팔트길을 초록빛으로 도배할 만치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선배, 저 내려줘요. 커억! 컥! 선배, 저 내려줘요. 컥!”

고양이는 목을 길게 빼며, 목이 막혀버린 듯 토악질을 시작했다.
고양이가 목을 뺄 때마다 헛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헛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지연이는 “선배, 저 내려줘요.” 하고 나를 불렀다.

그 소리가 너무 명확해, 귀에 입을 대고 말하는 듯 마치
지연이의 입 바람까지 귓불에 와서 닿는 것처럼 생생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고양이는 고통스럽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땅으로 하늘로 젖히고 박기를 반복했다.
이내 고양이 입에서는 차가운 은빛 깔의 네모반듯한 쇳덩이 같은 것이 반짝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언제 저것을 삼켰을까. 아니 어떻게 삼켰을까.

고양이는 자기 머리통보다도 곱절은 긴 녹음기를 힘겹게 땅으로 내려놓고 있었다.

“아, 진짜. 선배 잠깐만,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
“헛소리 할 생각하지마. 형도 인내심에 커트라인 있어.”

녹음기에선 낮 동안 향나무 앞에서 있었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고양이는 목젖을 괴롭히던 녹음기를 게워내 속이 시원해졌는지,
새침하게 돌아서선 풀숲 사이로 냉큼 뛰어들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녹음기에선 지연이의 목소리가 계속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자리에서 벌썩 일어난 순간, 검은 색 거대한 운영이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림자에 놀라 몸을 움츠러들었지만, 금방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선배, 저 내려줘요.”

눈앞에 지연이가 보였다.

지연는 초승달에 매달린 듯 밤하늘 허공에 걸린 채 팔을 주욱 늘어트리고 있었다.

늘어진 팔이 마치 날개라도 되는 냥, 지연이의 몸이
상하로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힘없는 날개 짓을 했다.

또 한 번, “선배, 저 내려줘요.” 소리가 귓가에 울렸을 때는
시야에 지연이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았다.

도로를 따라 지연이가 부양하는 방향을 쫓아 박차를 가하는 동안
할머니의 불길한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저 향나무에서는 열매가 맺어져요. 총각. 사람 열매.”


- 6부 끝 7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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