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가 인터넷포털들이 명예훼손성 댓글로 판단하면 댓글을 삭제처리하거나 블라인드(댓글이 안보이게 하는 기능)처리하는 일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도 정보통신망법 44조의 3(임의의 임시조치)에 따라 포털 판단으로 댓글을 블라인드할 수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았다. 네이버(035420)나 다음(035720) 등 포털이 정치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큰 탓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5월 방통위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 명예훼손성 댓글을 삭제처리하도록 요청했지만, 네티즌의 반발만 샀었다.
그러나 새정부들어 방통위는 이 같은 조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털이 임의의 임시조치를 할 경우 향후 법적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 면책조항을 추진하고 있다.
찬반이 갈린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댓글에 대한 포털의 자율규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포털을 압박해 불리한 여론을 막는 도구로 악용될 우려도 제기된다.
◇방통위, 포털이 알아서 명예훼손성 댓글 지워도 면책 추진
방통위는 내일(20일) 오후 3시 양재동 엘타워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에 대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현정부 국정과제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해 포털 등의 임시조치제도 개선, 명예훼손분쟁조정 기능 강화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연구반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가 제도개선방안(안)을 발표하고, 토론회 의견을 반영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착수할 계획이다.
양기철 방통위 인터넷윤리팀장은 "포털이 명예훼손성 정보를 발견했을 때 자율적으로 판단해 임시조치할 수 있는 임의의 임시조치는 포털들이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법적 분쟁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며 "포털이 알아서 하는 임시조치도 피해자가 신청할 때 이뤄지는 임시조치처럼 법적 분쟁 시 포털의 책임을 감면해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 규제 활성화 vs 정치권 악용 불 보듯
전응휘 오픈넷 이사장은 "법문을 자세히 봐야 하지만 외국에도 소위 '선한 사마리아 조항'이라고 하는 게 있다"면서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해 게시물을 삭제했을 때 해당 글을 지운 포털에 책임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OECD와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의 면책조항에 합의했다"면서 "포털들이 각사 판단이 아니라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임시조치 때의 기준과 절차 등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작 포털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 속에서는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이 악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누가 내 사생활이나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하면 포털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포털이 이를 삭제하면 법적 분쟁 시 책임을 감면받을 수 있는데, 포털이 알아서 하는 임시조치까지 감면조항을 둬서 활성화할 필요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에서는 포털에 삭제를 요청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고 압박해서 포털 스스로 내렸다고 하고 싶어한다"면서 "임의의 임시조치는 자칫 네티즌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