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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장교들에게 드리는 글 (12) - 병사들의 능력을 존중해라
게시물ID : military_140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27
조회수 : 20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1/31 04:47:24

부대창설작업. 말만 번드드르하지 노가다와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노가다판에는 숙련된 데모도라도 있지, 신삥 소위가 공대 나왔다는 죄로
십장을 맡고 전국 각지 부대에서 찍혀서 밀려난 병력들이 모여 공구리
치고 돌을 날랐다.


탄약고 주변의 방호벽은 호박돌과 토사로 올리는 구조였기 때문에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탄약고는 엄연히 철근이 들어가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였다.


철근은 대충 깔아 넣으면 되는게 아니다. 엄연히 인장측 압축측이 있어
힘을 받는 부분에 촘촘하게 넣고 기둥은 주변부에 세로로 에워싸듯 넣고
띠근(스터럽)으로 고정해 넣는 것이다.


옛날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때 신문기자가 부러진 원형기둥의 단면을
촬영하여 원형의 가장자리 부분에만 철근이 들어가있는 것을 지적하며
부실공사의 대표적 예로서 들었는데 사실 원형기둥의 철근배근은 그렇게
하는것이 맞다. 건설지식이 없는 기자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넘겨짚기
식으로 기사를 쓴 것이다.


난들 그런 지식이 있을리 없었다. 군 사령부에서 도면을 받아왔지만
그것은 정식 유개호 도면이고 우리 부대는 약식 무개호였다. 도면이
있다 한들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병력 대부분 학력이 대졸 아니면 대재 이상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반은 고졸 반은 중졸에 대학물 먹은 사람 한둘이 섞여있는 형국
이었다.


인력은 고사하고 설계도면도 없었다.


주말에 외출을 하여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도시에 있는 대학교를
찾아갔다.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건축과 설계실을 찾아갔다. 설계실에는
제도판이 죽 늘어서 있었고 학생 몇몇이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주말에 아무도 없는 설계실에서 느긋하게 잡담을 즐기던 학생들은
갑자기 군복차림으로 들어선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자 학생들은 비록 짧은 지식이라도 정말
정성껏 나를 도와주었다.


지금같으면 대학교보다는 인근 공사판을 찾아갔겠지만 신삥 소위가
하는 생각이란게 그모양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당시의 어리버리한
나를 탓하는 것이라, 지금의 초급간부들은 당시의 본인과 같지않게
훨씬 빠릿빠릿하고 똑똑하게 행동하리라 믿는다.


어찌어찌해서 철근 콘크리트조의 탄약고 도면을 만들었다. 비록 조그만
창고같은 탄약고였지만 그 안에는 155미리 포탄이 들어가니 사고시에는
무시무시한 피해가 예상되므로 허술하게 할 수가 없었다.


탄약고는 철근 콘크리트 벽과 상단 스라브 사이에 사시낑을 하지 않는다.
즉 벽체에 지붕 스라브를 연결하지 않고 그냥 얹혀있는 형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고시에 폭발이 지붕을 날리며 위로 터져나가 다소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측량은 부대에 있는 측지장비로 했다. 복잡한 형상이 아닌 그냥
직사각형 건물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병사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먹고 작업, 점심먹고 작업 저녁먹고 야간작업이었다. 화포 수령전에
진지작업을 다 마쳐야 했으니 그야말로 엉덩이에 불이 붙은 기분이었다.
야간작업은 새로 수령한 트럭을 서너대 동원해서 라이트를 켜놓고 작업을
했는데 트럭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목이 아프고 머리도 아파져 그야말로
이중고였다.


내가 병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간식이나 끊이지 않게 사고
같이 곡괭이질이나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일석점호도 차마 할 수 없었고
일초라도 빨리 씻고 잠에 들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당직날은
무조건 취침점호였다. 병사들 다 누워서 잠들기 전에는 당시 유행하던
조용한 재즈곡을 10분정도 틀어주었다. 병사중에 사회에서 음악다방 DJ를
하다 온 녀석이 있어서 나도 몰랐던 곡 해설도 곁들여 주었다.


어느날 저녁에 대대장이 불시에 올라오더니 재즈 틀어주고 있는 장면을
딱 걸렸다. 부대장으로서 책임이 있어서 그런지 그날 나는 엄청 쪼인트를
맞고 욕을 먹었다. 이유는 병사들 군기 빠진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내가 무척 따랐던 심중위에게 불만을 얘기하니 심중위도 대대장과
비슷한 의견이었다. 비록 취침전이지만 고된 작업이 매일 반복되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기어이 사고가 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저녁 야간작업이 끝나고 포반장과 병장급을 집합시켰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영외 작업을 나가니 다들 곡괭이 삽등을 지참하고
모이라 했더니 불만이 대단했다.


열을 지어서 인솔을 해 위병소에다가는 요 앞 작업을 하고 1-2시간 후에
돌아온다고 말을 해 놓았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마을에 있는 대포집으로
들어갔다. 작업은 그때 말로 '뼁끼'였다.


막걸리를 시켜놓고 다들 잔을 돌리며 진짜 노가다가 된 기분으로 마셨다.
얼근하게 술이 올라오자 의견들을 물었다.
작업조 편성, 야간근무, 식사조 편성, 작업방법 등등 역시 짬이 되니
나오는 말도 영양가가 있었다. 나같은 신삥 소위보다는 훨 나았다.


초급간부는 앞에 서서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직책이 아니다. 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뛰는 직책이다.


병사들을 끌고 영외로 무단이탈하고 술집에서 음주까지 시켰으니 아마 대대장이
알았으면 영창에 갔을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복무규율은 때로는 비켜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심중위도 어이 이소위 참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었다.


병사들의 경험을 존중해라. 초급간부는 병사들의 경험을 이끌어내어 활용할
때에 능력이 빛이 나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이 아니다. 병사들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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