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슴 아픈 글입니다. 꼭 읽어주시길...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부인이 삼성에게 보내는 편지
별이 아빠가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고 믿기지 않습니다. 누군가 별이 아빠가 떠난 지 21일, 3주가 지났다고 하던데 저는 날짜를 세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겁이 납니다. 엊그제 천안에 첫눈이 왔습니다. 작년에 첫눈이 왔을 때 별이 아빠가 보냈던 메시지가 아직도 내 폰에 저장이 되어있습니다. “밖에 눈이 와. 고백할게. 사랑해” 술 한 잔 하고 들어 온 날이면 “넌 내가 절대로 안 굶긴다.”며 별이 아빠는 절 업어주었습니다. 별이를 낳았을 때 별이 아빠는 카톡에 “최종범 인생 끝! 이제 최별로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기름때와 땀이 범벅이 된 지친 몸으로도 별이를 안으며 “내 새끼 내 새끼 이쁜 내 새끼”라며 얼싸안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막 “엄마”를 부르고 “아빠”라는 소리를 해가며 걸음마를 시작한 별이에게 목마를 태워주며 놀아주던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별이가 자라면서 아빠를 찾고 다른 집 아빠를 보며 우리 아빠는? 별이 아빠는 어딨어? 라고 물으면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다음 달 13일이면 목숨보다 소중한 우리 별이의 첫 생일인데 아빠의 축하를 받지 못하는 우리 별이 돌잔치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별이 돌잔치를 위해 함께 예약했던 뷔페를 취소하고 돌아오는 길, 그렇게 먼저 가버린 별이 아빠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별이 아빠가 떠나던 날, 119 구급대원이 “최종범씨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고, 꿈일 거라고 절규하는 저에게 구급대원은 “현실이에요” 라는 대답만 했습니다.
별이 아빠가 떠난 뒤 알았습니다. 솔직히 늦은 밤 돌아와서 노조가 어떻고 회사가 어떻고, 삼성이 또 어떻고 하는 별이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잘 몰랐습니다.
별이 아빠는 일만 하는 사람이었고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기름때와 땀에 범벅이었습니다. 팔다리는 성한 곳이 없이 온몸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일만 했고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다 떨어져 새로 산 바지와 구두가 찢어지고, 냉장고와 에어컨을 고치다 냉매가 터져서 동상과 화상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별이 아빠는 자신이 삼성의 엔지니어라는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일할 때 필요한 공구를 사야 했습니다. “일할 때 필요한 공구를 왜 당신이 직접 사냐?”고 묻는 저에게 “일을 하려면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차량수리비와 유류비, 자재비, 핸드폰비, 심지어 고객의 미납금까지 별이 아빠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고정적이지 않은 월급 탓에 별이를 낳았지만 우리는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제근 천안센터 사장에게 전화가 오던 날, 별이 아빠는 밤 10시 평소보다 더 지쳐 보이는 얼굴로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사장의 막말에 저는 아이의 귀를 막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별이 아빠는 너무 억울해 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와 별이를 쳐다보는 것도 어려워했습니다. 그리고 혼자말로 “너무 비참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지난여름 어느 날, 별이 아빠가 집에 돌아와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잘하면 그동안 밤늦게까지 일하고도 받지 못했던 임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일하는 환경도 좋아질 거라 했습니다. 이제 우리 별이를 키우기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 별이를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해 더 공부해서 나중에 간부가 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더 늦게 들어와도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희망이 생겨서 좋아했던 별이 아빠가 어느 날부턴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일감이 떨어졌다”고. 대리운전이나 포장마차라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별이 아빠가 가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게 삼성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했던 별이 아빠와 조합원들을 탄압하기 위해 삼성이 일부러 일감을 안주고 표적감사를 실시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동조합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일등 회사인 삼성에서 남편이 열심히 일하면 우리 가족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별이 아빠도 언제나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집니다. 그런데 별이 아빠는 더 추운 냉동실에 있습니다. 별이 아빠의 바람은 하나였습니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는 동료들이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로 탄압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배부르지는 않아도 동료들이 배고프게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별이 아빠가 가고 난 뒤. 사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별이를 위해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저도 밥을 먹지만 별이 아빠를 위해 마지막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합니다. 그것은 별이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뜻을 제가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우리 별이에게 아빠가 선택했던 그 길이 별이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별이가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한 희생과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삼성에게 요청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만 했던 별이 아빠가 편히 갈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바보처럼 일만할 때는 가족이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부당한 것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면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어 탄압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별이 아빠의 동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별이 아빠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2013년 11월 21일. 별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