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영동1985의 엔딩 이후
당시 안기부(現 국정원의 전신) 이근안 경감(일명 장의사)에게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의 진술입니다.
故 김근태 의원의 진술입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어지러운 듯 말을 중단하고 난간을 붙들면서 잠깐 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 4일 각 5시간씩 두 차례 물고문을 당했고,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0일 한차례, 13일 …… 13일 금요일입니다.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 "최후의 만찬이다."
-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 "너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 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
…… 그 다음에
9월 20일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날 집단적인 폭행을 당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구타를 당했습니다.
물론 잠을 못 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긴 것도 대략 절반쯤 됩니다.
고문 때문에 13일 이후에는 밥을 먹지 못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합니다.
... (중략) ...
결국
9월 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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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근태 의원께서 별세하신지 만 1년이 된 2012년 12월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