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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에 관한 생각
게시물ID : phil_45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빈믹
추천 : 3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1/06 05:15:03

색맹 : 색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  (네이버)


여기 색이 세개 있습니다.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은 우리에게 풀이나 산, 평화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빨간색은 우리에게 불이나 열정, 사랑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파란색은 우리에게  바다나 시원함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경험을 통해 우리안에 존재합니다.

또 이러한 색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빨간색 조명으로 '위급함, 화재'등을 표현하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색맹이면 어땠을까요? 만일 내가 인식하는 색이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색과 다르다면 어떨까요.


파란색 파란색


저에게 있어서는 왼쪽이 파란색입니다. 파란색의 이미지는 모두 왼쪽의 색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른쪽이 파란색을 의미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났을때부터 눈의 구조가 달라서 오른쪽을 파란색이라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왼쪽의 색을 원래색인 파란색을 오른쪽의 파란색으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파란색이 바다나 시원함의 이미지를 가질 것 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닌가.


인간의 모든 인식은 오감에 의존합니다.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맛보고 즐기고

이 다섯가지 행동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을 인식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다섯가지의 도구들 가운데,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과 천차만별이겠죠.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다섯가지의 도구가 모두 같다하더라도 그 도구들이 쓰이는 대상이 다르면 결국 우리가 느끼는 것은 결국 다른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한 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 쌍둥이는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입양 되어 버립니다.

한 명은 한국으로, 한 명은 일본으로.

한국에서 자란 아이는 김치를 먹으며 비빔밥을 좋아하고 박지성을 보며 자랍니다.

일본에서 자란 아이는 낫토를 먹으며 규동을 좋아하고  이치로를 보며 자랍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쌍둥이이고,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서로 다른 세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하나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70억개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파란색으로 파란색의 이미지를 느낍니다.

하지만 반드시 파란색이 내가 아는 그 파란색이란 법은 없습니다.

파란색일수도 파란색일수도 파란색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파란색의 세상에도 살아 보고 싶습니다.

파란색의 바다와 파란색의 하늘 파란색의 첼시(응?)



인간이 소설을 쓰고 읽는 이유도

나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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