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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태풍으로 구 마르코스독재세력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게시물ID : sisa_454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군대민영화
추천 : 3/2
조회수 : 75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1/23 00:36:17
현 집권대통령이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트린 아키노 가문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인데
 
정부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걸로 인해 마르코스 독재세력이 다시 힘을 얻고 있죠.
 
 
 
그런데, 이 필리핀의 경제체제가 무너진 원인이 바로 마르코스 독재정권때문입니다.
 
 
 
 
마르코스 이전 필리핀은 나름 부국이었습니다.
 
심지어 일본보다도 부유하였습니다.
 
이는 박정희 정권당시 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박정희가 "우리도 필리핀같이 잘 살면 좋겠다"고 마르코스 앞에서 말을 한 적이 있죠.
 
 
 
 
 
마르코스는 항일 게릴라 지도자 출신으로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쳤습니다.
 
(수정합니다. 미 육군 문서에 의하면 그는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고 괴뢰정부에 협력했답니다.
 
출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12500209204019&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1-25&officeId=00020&pageNo=4&printNo=19789&publishType=00020)
 
1965년 자유당후보로 내정되었다가, 밀려났는데
 
이에 그는 상원의장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당선되었습니다.
 
 
 
 
마르코스 정권은 초반에 높은 지지를 받았는데,
 
경제개혁과 공산주의체제국가와의 외교관계 개선으로
 
1969년에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개혁 실패와 경제사정악화로 인해 지지도가 떨어지자
 
그는 독재정치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였고,
 
 
결국
 
1972년 9월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당활동을 금지하고
 
정적과 언론인을 투옥시켰습니다.
 
1973년에 그는 헌법을 뜯어고쳐서
 
연임제한을 폐지하였습니다.
 
 
1976년
 
그는 또 헌법에 손을 대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재임기간동안,
 
그의 아내와 측근들은 수많은 부패를 저질렀는데,
 
 
 
예로 그의 아내는
 
수천켤레의 신발을 매일매일 갈아치우고
 
집에는 사치품으로 가득찼습니다.
 
 
 
 
[혐오]
 
20060911161902_495_0.jpg
이게 바로 필리핀 수백만 국민의 피.
맘놓고 까줍시다
 
더러운 놈.jpg
 
 
 
 
 
 
 
이러한 그의 횡포는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기독교 운동가, 무슬림 분리주의자 등의 저항을 받았습니다.
 
 
 
 
 
마르코스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문화센터건설에 사용하고, 스위스 개인계좌에 착복하는 한편
 
배우자 이멜다 마르코스는
 
엄청난 사치에 빠져 명품만 밝히고
 
이에 필리핀 국민의 삶은 도탄에 빠지고,
 
한 때 일본보다 잘살던 필리핀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일가는 권력을 독점하였는데
 
아내는 국회의원, 마닐라 시장, 주택환경부 장관을 차례차례 겸직하였고,
 
아들은 대통령 보좌관에
 
그 자신은 총리직까지 겸하는 등
 
권력독점과 부패는 날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던 중,
 
1983년 공항에서
 
정부가 보낸 경호원 앞에서
 
강력한 정적인 베니그노 아키노를
 
마르코스정권이 암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국민들은 그의 본색을 알았습니다.
 
 
결국 그의 인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반정부시위는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니그노 아키노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는
 
정부의 암살위협속에서
 
공항을 통해 귀국하였고
 
 
이에 국민들은 그녀의 용기와
 
대의를 향한 움직임에
 
눈물과 찬사를 보내며
 
노란 리본으로 화답을 하였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에 200만명의 애도 인파가 몰렸으며,
 
그들은 노란 면 옷을 입고
 
거리의 나뭇가지에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그녀는 이젠 단순한 '베니그노 아키노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필리핀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이자
 
반 마르코스 세력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범죄행각과 부정부패, 비리는 점점 소문으로 퍼지고
 
 
1985년 의회는 부정선거, 부정부패, 범죄 등의 이유로 탄핵을 밟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스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1986년 이러한 정치경제적 혼란속에서
 
그는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선거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선거에서 코라손 아키노는 반 마르코스 민주화 진영의 단일후보로 추대되어
 
당선이 유력하였지만
 
 
마르코스는 부정선거, 흑색선전, 유언비어, 선동 등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대통령직을 탈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만행은 수백만 국민들이 알고 있었고,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는 그의 만행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필리핀 민중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비폭력 저항을 시작하였습니다.
 
 
 
 
마르코스는 이 비폭력 시위를 군부에 진압하도록 명령하였지만
 
 
군부는 그의 진압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2월 25일 그는 대통령직에 취임하지만,
 
정부는 코라손 아키노를 정식 대통령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결국 다음날 그는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독재의 붕괴와
 
코라손 아키노의 노란리본 이야기는
 
국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민주화 진영에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노란리본 이야기는
 
 
후에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평민당의 상징색을 '노란색'으로 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베니그노 아키노는 미국망명시절 김대중과 깊은 친분을 쌓았으며(자동차를 선물로 주기도 함), 이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코라손 아키노가 참석하는 인연으로 이어짐.)
 
 
 
얼마전 덕수궁미술관에서
 
마르코스 정권말기의 작품을 보았는데,
 
필리핀 민중의 고통과 울부림, 독재의 억압이 나타나있더군요
 
당시 도슨트의 설명이
 
" 이 작품은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는데 기여를 한 것 중 하나입니다."
 
이렇듯 마르코스 정권은 필리핀 국민 모두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필리핀 국민 하나하나가 기여자지요)
 
 
 
 
 
 
이렇듯 마르코스 정권은
 
한 때 일본보다 부유했던 필리핀을
 
현재의 빈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트렸습니다.
 
 
 
 
이러한 마르코스의 부패는 정부체계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얼마전 필리핀 태풍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대응미숙은
 
마르코스정권 때 얼마나 필리핀이 망가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러한 재난으로 인해 역으로 마르코스 구 독재세력의 인기가 급상승했다는군요
 
 
현재 아들놈이 정계에서 대통령당선이 목표라며 설쳐대고 있는데
 
 
나라를 말아먹은 놈들중 한명이
 
 
그런식으로 설치는 걸 보니 참 씁쓸하더군요
 
 
 
 
확실한 것은
 
현 집권대통령은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인데,
 
 
 
필리핀을 말아먹은건 아키노 일가가 아닌
 
마르코스 일가란 것입니다.
 
 
 
마르코스의 독재가
 
 
필리핀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입니다. 
 
 
 
 
 p.s
 
 
오유에서 필리핀 현 집권세력이 다 빼돌릴 거라는 댓글을 보았는데
 
 
현 집권세력 그런 세력 아닙니다 ㅡㅡ;
 
 
애초에 마르코스의 만행을 당한 일가가 아키노일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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