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으로 가슴 벅찬 스무살, 그때 첫사랑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내 심장은 터질듯이 뛰기 시작했고, 두 다리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떨렸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너 내 꺼 할래?."
'응'이라는 소심한 대답을 한 나는 첫사랑 그녀와 사귈 수 있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위 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난 스무살이 되어서 사랑이란 감정을 첫사랑 그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난 그런 사랑을 만끽했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첫사랑 그녀와 사귄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우리는 이별을 맞 이했다. 내게 다가왔을 때처럼, 그녀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서로 다투지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스무살의 나이에 사랑을 하기에는 서툰만큼 서로가 너무 힘겨웠다. 그 뿐이었다.
첫사랑과 이별을 한 후, 너무나 괴로웠다. 온통 머릿속에서는 그녀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보 내주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몇 번이라도 그녀를 잡으리라.
사랑에 아파함에도 시간은 흘렀다. 1년이 지났지만, 첫사랑은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쯤, 나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아주 예 뻤다. 성격도 활발했다.
친구의 말을 믿었다.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만남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첫사랑을 잊지 도 못한 상황에서 내게 다가오는 여자를 만났다. 즐거웠다. 그리고 웃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빈자 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잘못을 빌었다. 이 제 그만 헤어지자고... 그녀는 울면서 나를 잡았다. 하지만, 난 뒤를 돌아섰다. 마음이 아팠지만, 눈 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녀는 나에게 저주를 했다. 난 내가 한 짓을 반성하며, 그 저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것 역시 내 업보라고 생각하며 그 쯤 군대를 갔다.
힘든 군 생활, 이런 군 생활 속에서도 난 첫사랑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첫사랑을 떠 올리며 힘든 군 생활을 하루하루 버텨갔다. 이런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해결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난 첫사랑과 군 생활을 같이했다.
전역을 하고 대학에 복학을 했고, 그냥 현재 충실했다. 첫사랑은 여전히 날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그 저 망령 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지 무서운 것은, 스무살에 그녀에게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못 느낄 것 같다는 예감이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6살 연상이었다. 솔직히 그녀를 보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좋았다. 또 편했다. 그렇게 그녀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단지, 내 머릿속에서는 첫사랑의 망령이 여전히 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그때부터는 이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에게 충실하면 그만일 뿐이라고 생 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첫사랑을 찾아갈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6살 연상인 그녀와 2년 정도를 사귀었고, 아무래도 연상녀인 그녀때문이라도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했다. 그 시기쯤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지만, 사람은 결국에는 누구나 이렇게 산다'라는 것이다.
6살 연상녀와 결혼을 결심했다. 나의 프로포즈를 받은 그녀는 매우 기뻐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웃 었다. 묘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난 만족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와 2년간 연애를 하면서 단 한 차례도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하면서 그녀와 나는 서로 원수가 된 듯이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종교 때문이었다. 그녀 집안은 가족 모두가 기독교 집안이었고, 우리집은 종교와 무관했다.
결혼은 집안대 집안이 한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결국 그녀와 나는 종교 문제를 극복하지 못 했다.
내 앞에서 한참이나 우는 그녀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난 울고 있는 그녀를 놔둔채, 돌아섰다. 마음 이 너무나 아팠다. 그러나 여전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고, 약 1년이 지났을 무렵, 6살 연상녀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다. 결혼을 한 단다. 그래서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내고 그녀의 번호를 삭제했다.
또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서른에 가까워졌다. 그때부터는 그냥 세상이 지루했다. 그만큼 내 감정도 가뭄에 갈라진 논 바닥 처럼 메말라 있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를 두고 로보트 같다는 말도 했다. 이쯤에서 나 자신을 돌이켜 봤지만, 딱히 해결 방법도 없고, 해결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단지 머릿속에는 이제는 집착을 넘어서 정신병인지, 첫사랑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 었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서른이 되었다.
이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가물가물할 무렵, 사랑은 우연히 다가왔다. 길을 걷다가 보 게 된 그녀, 난 첫사랑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다리는 후들후들거림을 느 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서 말을 걸었다. 분명 그녀는 메마른 내 감정과 정신병 에 가까운 첫사랑의 기억을 모두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건 분명 또 다른 내 사랑의 시작이었 다.
결과는 좋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와 난 약 두달 후부터 사귀게 되었다. 나보다 3살이 어 린 그녀와 행복한 연애를 했다.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첫사랑도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기 시작 했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난 구원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절대 사랑을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그녀와 200일이 조금 넘는 연애를 했고,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 지는...
언젠가부터 침울했던 그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회피하던 그녀는 술에 취한 목소리 로 날 새벽에 불러냈다. 나를 본 그녀는 울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그리고 미안하단다. 도대 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녀 입에서 슬픈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6년을 만난 그녀의 첫사랑이 되돌아왔단다. 나와 사귀기 얼마 전에 헤어졌던 그 녀석이 되돌아온단다. 그녀는 첫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난 사랑하는 그녀를 이대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잡았다. 하지만, 사랑하면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눈을 바로 볼 수는 없었다.
결국 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하는 그녀에게 행복하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스스로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마음이 정말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역시나 눈 물이 흐르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그때는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으니까.
그렇게 다시 한 번 이별을 겪은 나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게 하나 있다면, 첫사 랑이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끔 생각이야 나긴 했지만.
그 뒤로부터는 스스로 행복해 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간이 생기면 짧게라도 혼자 차를 운전해서 여행을 다녔다. 당 일치기도 좋았고, 1박 2일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제는 혼자가 익숙하고, 혼자가 편하게 느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난 예상치 못한 곳에서 12년만에 첫사랑과 마주했다. 그녀나 나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었음에 도 우리는 서로를 마주 친 순간 움직이지 못했다.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 만 머릿속으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냥 멋쩍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도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야."
12년만의 만남.
우리는 연인이 아니라, 옛날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했다. 우리는 우연 히 만난 서로를 신기해 했다. 12년 전에도, 지금도, 그녀와 나는 서로 4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져 살아왔고, 우연히 만난 이곳도 서로 연고가 없이 여행을 와서 만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대본을 준비한 것처럼, 그리고 이미 만날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 고 그 대화는 밤이 깊고, 새벽이 오는지도 모르고 계속 되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서로의 보금자리로 가야했기 때문에...
그녀와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을 했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 머릿속에서는 온통 '아직 혼자'라는 그녀의 말이 맴돌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녀와의 운명같은 만남에 많은 고민을 했다. 도대체 하늘의 뜻이 무엇이기에 왜 12년만에 다 시 한번 그녀를 내 앞에 나타나게 했을까?.
그녀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이어지더라도 다시 그녀가 떠난다면?. 분명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 나 그녀를 본 내 가슴은 12년 전 처럼 뛰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히던 그녀에 대한 정신병도 이미 돌아와 있었다.
설레였다. 그녀 역시 설레고 있을까?.
너무 많은 시간을 돌아왔지만, 이제라도 그녀를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연락을 하기 시작 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마치 12년전 연애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주 그녀와 연락을 했고, 그녀와 재회를 한 지, 한달 동안 장거리임에도 서로 번갈아 가며 네 번을 만났다.
오늘은 내 차례이다. 일이 끝나면, 난 그녀를 보기 위해 4시간을 달려 갈 것이다. 그리고 12년전 그녀가 나에게 했듯이, 나도 그녀에게 고백을 할 것이다.
"너 내꺼 할래?."
첫사랑을 이루기 위한 내 기나긴 여정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겠다. 너무나 돌아왔기 때문에, 나도 이제는 지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