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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여행
게시물ID : readers_4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자흐
추천 : 3
조회수 : 1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1:59:25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 앞에 넓디넓은 강이 굽이쳐 흘렀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나는 물었다.

“저 강을 건너가면 돌아오기는 조금 힘들 거예요.” 그녀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방금 말린 듯 습기를 머금은 머릿결. 성냥개비라도 올려놓으면 그대로 떠있을 것 같이 긴 속눈썹. 피부는 갓 뽑아낸 가래떡 마냥 하얗고 윤기 있는 얼굴이었지만, 표정은 어쩐지 가면을 쓴 것 같이 어색했다.

 

이 강은 어떤 강일까. 한강보다는 조금 더 넓은 것이 강 건너편에는 안개가 껴있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차 한 대 없고 눈은 펑펑 내리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녀에게 말을 한다.

“저기. 아가씨. 이 근처 사세요? 가까운 마을로 가려면 어찌 가야되는지......”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말고 저를 따라오세요.”

아까부터 사람 무시하는 저 말투가 참 거슬린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초행길인데 손해 볼 건 뭐냐. 신경 건드리지 말고 그냥 따라가자.

 

그나저나 여기는 참 풍경이 좋다. 처음 보는 나무들에 처음 보는 암석들. 역시 여행은 이런 맛에 하는 것이지. 언젠가 갔었던 인도여행이 떠오른다. 인도는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라고 누군가 그랬지. 그 정도로 멋진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그 소금호수는 인상적이었어. 끝도 없이 펼쳐진 소금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여행의 묘미는 역시 음식인데 말이야. 음식.....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지 않다. 지금이 몇 시인가? 아직 끼니때가 안 되었나 보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즐겁다. 각 나라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각양각색이라 그 차이점을 즐기는 게 참 좋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며 엮어내는 풍경의 이야기. 그러고 보니 여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여행지에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야 여행사는 손해를 많이 볼 것 같다. 참 나도 별 게 다 걱정이지 흐흐. 호화롭게 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텔에서 묵어가며 여행하는 것도 편하고 좋지만 이렇게 많이 걸으면서 그 대지와 호흡하는 것도 무척 매력적이다. 나중에 추억 속에는 편하게 한 여행보다 고생하며 한 여행이 더욱 더 기억에 남는다.

 

불현듯 뭔가가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여기를 어떻게 왔었지. 온 길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멋진 풍경과 너무 아름다운 여자에게 홀렸는지 몽롱한 기분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저 여자는 어디서 마주쳤더라......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참 보기 드문데. 어쨌든 여행길이 외롭지 않아 좋다. 언제나 여행지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아까 눈을 맞으며 서 있던 곳이 저 멀리 떨어져있다. 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아까 서있던 곳은 거의 보이

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다. 아주 잠시 생각하면서 걸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니...... 내가 건강해졌나보다 이렇게 많이 걸었는데도 지치지 않는 것 보면.

......

가만 있자...... 난 다리가 불편했었는데......? 나는 나니아연대기처럼 판타지 세계에라도 이끌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혹시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아니면 너무나도 멋진 이국적인 분위기에 홀려있는 걸까?

좀 더 생각해보니 나는 분명 다리 한쪽이 마비되어 걷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난 언제부터 여기에 왔지? 어떻게 왔는지 언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단기기억상실증인가 뭔가 하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혹시 어디선가 머리를 다쳐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젤 최근에 본 영화 ‘도신’이 떠올랐다.

 

“아가씨. 제가 어디서 온 지 혹시 모르세요? 미안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다 왔어요. 이 배를 타고 저 강을 건너면 일하고 계신 분이 마중 나오실 거예요.”

이 여자 사람 또 무시한.......

“당신은 도로 위에서 왔어요.”

......뭐라는 거냐. 이 여자는.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

“저는 이 항구까지만 안내합니다. 좋은 여행되세요.”

“?” 무슨 말이야.

왠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양이 없다. 분명히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맑은데 태양이 떠있지 않다.

“??????”

그녀는 뒤돌아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참이었다.

“저기요. 저기요. 잠시 만요. 어디 가는 거예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좀 더 같이 어울려줘요.”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 하도록 되어 있어요. 편안한 여행되시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내를 하다니? 여행사 직원이세요?”

“......” 그녀는 한동안 나를 말없이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랬구나. 그랬어. 나는 도로위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신호가 바뀌려는 횡단보도를 급하게 뛰어 건너갔지만 다리가 불편했던 나는 차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는데 눈을 맞고 서있는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죽은 뒤 세상에 오셨어요. 저는 당신의 세상에서 이곳까지 안내하는 사자에요. 남은 길 조심해서 잘 가시오. 연이 된다면 또 보겠지요.”

 

그래..... 난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쓸쓸한 표정의 가면을 쓴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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