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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 공동경비구역 JSA 리뷰
게시물ID : movie_4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
추천 : 0
조회수 : 15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3/17 09:33:1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 초소병이 살해당하면서 시작합니다. 남한측은 납치 미수설을, 북한측은 기습 테러설을 주장하며 서로를 윽박지르는 가운데, 진상을 밝히기 위해 스위스와 스웨덴으로 구성된 중립국 감독 위원회의 책임 수사관들이 파견되죠. 그 중 한 명이 한국계 스위스인인 군정보단 소피 장 소령입니다. 사라진 총알 하나와 찢어진 사진으로, 소피 장은 정치적 알력 속에 숨겨져 있는 숨은 진실을 찾아냅니다.

진상은? 총격 사건에 연루된 북한 군인과 남한 군인들이 수개월째 노닥거리며 친구로 지냈다는 거죠. 총격 사건은 불운한 우연과 감정 폭발이 뒤섞인 결과였습니다.

지금 전 추리물의 형식을 이용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스포일러 경고를 걸었어도 이런 식으로 잽싸게 결말을 밝히는 것은 사실 무례한 일입니다. 추리물에는 추리물에 대한 예의가 있으니까요. 추리물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과정이며 또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대해서는 그런 예의를 차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추리물의 요소는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피 장이 사라진 총알에 대해 알아내는 장면까지, 이 영화는 제대로 된 추리물의 형식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남성식 일병의 자살 미수 장면부터 이 구조는 허물어집니다. 남일병의 회상으로 숨겨진 비밀인 남북한 군인들의 과거가 그대로 밝혀지니까요. 관객이나 소피 장의 노고 없이 말입니다.

이러니 이야기가 풀어져 버립니다. 회상이 끝나면 소피 장은 관객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또 그걸 설명해야 합니다. 소피 장은 "진짜 재미있는 쇼는 여기서부터예요"라며 거창한 광고까지 하지만 그 설명이란 앞에 나온 이야기의 부연 설명에 불과하니 흥이 빠질 수밖에요. 그 다음에 나오는 총격 사건의 진상 역시 새로운 국면 전환을 보여주지 않으며 그 진상에 도달하기 위해 특별히 수고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에 뭔가 더 주려는 듯 엇갈리는 진술을 배치한 것도 극적으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소피 장이 말했듯이 누가 방아쇠를 당기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영화의 추리물 형식은 그저 핑계였을 뿐입니다. 네 명의 남북한 병사들이 만나서 찐한 우정을 나누었지만 결국 파국에 이르렀다는 짧은 이야기를 장편으로 부풀리기 위한 기능 이상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는 어떨까요?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다들 워낙 험악한 역사를 걸어왔으니, 이 나라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제가 무미건조한 전보문으로 '남북한 병사들이 몰래 만나 동족의 정을 나누었다'라고 말해도 충분히 감동받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가 목표로 삼아야 할 관객은 제목이 올라갈 때부터 동포애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 저같은 밍밍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런 관객들을 이치에 닿는 이야기와 적절한 감정 이입을 통해 설득할 수 있어야만 드라마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우들의 호연과, 감상주의와 똥폼을 적절히 지워내는 박찬욱식의 위트 넘치는 터치에도 불구하고 전 그렇게까지 설득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전 이 이야기를 완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옥에 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들을 모두 열거하지는 않겠어요. 어차피 제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건네받은 2차 정보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잊는다고 해도 영화 주인공들의 행동을 아주 믿기는 힘듭니다. 최전방에 선 초병들이 다리 저쪽 군인들과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엔 원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며 바로 그런 첨예한 상황이 오히려 그들의 감정을 더 뜨겁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우정의 감정을 품은 친구들이 근무 시간에 적지의 초소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에 이르면 전 감동하는 대신 오싹해집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가 되는 북한 초소는 사실적인 드라마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꿈이나 소망 속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네 젊은이들은 갈등이나 방해를 전혀 받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로 동포애를 나눕니다. 상황이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드라마는 거의 나올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완전성 덕택에 지금까지 남북한이 만들어낸 선전물들을 그대로 역전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비극을 몰고가는 마지막 날의 총격전에도 드라마는 약합니다. 등장인물의 의지나 갈등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불운한 사고일 뿐이니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추리물적인 형식이 약한 것이 더 아쉽습니다. 추리물의 도입은 밋밋한 기둥 사건에 입체성을 부여하고 또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남일병의 회상 없이 소피 장과 관객들이 직접 사건을 밝혀낼 수 있었다면 네 병사들의 만남은 훨씬 압축성있고 강렬하게 묘사되었을 것이며 '감동'을 줄 기회도 더 컸을 겁니다. 중립국 출신의 소피 장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활용할 수 있었다면 분단국에서 일어나는 이 끔찍한 이야기에 새로운 측면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수사 과정을 조금 더 연장했다면 네 병사의 이상적이고 소박한 우정과 그를 커버하는 외교적 군사적 제스처의 대비 역시 훨씬 뚜렷하게 드러났을 겁니다. 처음부터 추리물을 밀어붙였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이고 설득력있게 재설정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랬더라면 마지막의 비극도 더 강렬했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그런 가능성들을 그저 가능성으로만 남겨놓았습니다. 영화는 분단된 민족의 한풀이로서 어느 정도 기능했을 수는 있지만 도입부에서 약속했던 것들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 그 이상을 기대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영화이고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사전 감정과 기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몇몇 부분은 관객들을 강요하는 느낌도 강합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상당 부분은 영화외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00/09/21)

★★★

기타등등

1. [공동경비구역 JSA]은 수퍼 35밀리로 촬영된 최초의 한국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2.35:1의 화면비율로 한국 영화를 보다니 기분이 이상해지더군요.

2. 영화 속에서 오 중사가 "광석이는 왜 이렇게 일찍 죽었나"라고 말했을 때 바로 제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심오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A: 광석이가 누구야? (앞에 나온) 개야?
B: 나두 몰라. 그런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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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djuna.cine21.com/movies/joint_security_are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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