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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발언에 대한 단상
게시물ID : sisa_4558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5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1/27 09:11:44

Written by 무명논객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언하시길, "정치는 공공선을 이루는 최고의 형태"라 말씀하셨다. 나는 교황님의 이 주장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부르주아 의회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단순한 선택 내지는 조정과 관리의 문제로 전락하였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대표'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와 체제들이 일정 부분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적 기획'으로써, 우리가 공공선이라는 측면을 생각할 때 정치가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를 넘어 진실에 가깝다. 일반의지를 강조하는 루소의 주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정치가 더욱 더 '공공의 것(The Commons)'을 담당해야만 한다는 것은 가장 올바른 주장이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공공선'이라는 정치적 기획을 두고 '공공'과 '선'을 나누어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즉, 우리는 '공공'의 문제를 바라보고 '선(Good)'을 구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공'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해방의 조건이며, '선'이라는 규준을 투쟁으로써 '점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선'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점유되고 획득되어야 하는 후천적인 가치이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 보편성'이라 할 수 있겠다. 지젝은 이러한 태도를 윤리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바, 나는 지젝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정치는 윤리적인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는 '공공의 문제'를 언급할 때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정치적 의사의 결정 방법에 대한 논의보다 윤리적인 언급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윤리적 태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우리가 '자유롭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을 받아들일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는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지젝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이론과 철학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저속한 조작이나 부패, 권력 싸움등을 의미하는 정치가 아니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는 것과 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지는 삶으로서의 정치 말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선common good을 '발견'한다고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적 조화와 같은 동양적 지혜에 답이 있다고 여기는 유럽의 경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거기에 조화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제가 보기에 모든 조화는 부분적인 조화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를 들어 몇몇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국유화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모든 것이 사회화되었고, 그 속에 개인은 함몰되었다고 말이지요. 한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각각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극단이기에 이 둘 사이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즉, 사회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생각하고 어떻게 공동선을 꿈꾸는가 등의 문제들이 이미 특정한 분야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미 어떠한 장에 귀속된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두개의 극단이 있고, 그 둘의 균형을 맞추면 된다는 식의 접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유방식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균형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요. 예를들어 몇몇 국가에는 민주주의적인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없고, 또 어떤 국가는 지나치게 민주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진정한 혁명이란 , 균형을 맟출때 그 기준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1960년대의 성해방이전에 두개의 극단적인 입장이 있었지요. 결혼 전에는 결코 섹스를 하면 안된다는 입장과 자유와 해방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오래된 균형을 잃었고 지나치게 많은 성적 자유를 획득했다고 단순히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두개의 극단이 있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느 지점까지 도달할 수있는지를 묻는 것은 잘못된 방식인 것이지요. 극단에 대한 고유의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혁명입니다." (슬라보예 지젝, 인디고 연구소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궁리 출판)


요컨대, 우리가 '윤리적 결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방식, 결정을 내리는 기준 자체를 다시 재사유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지젝의 이러한 요청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하신 '공공선'을 위한 정치와 결코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공'의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 '기준'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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