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일본군 진지 등으로 구성된 ‘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사진)’이 자금난 때문에 일본 측 단체에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평화박물관은 근대문화유산 국가등록문화재 제308호로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에 위치한 제주지역의 대표적 다크투어리즘 관광지다.
제주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박물관의 자금난이 심각해 개관 초기부터 매입 의사를 밝혀온 일본 공명당, 모 기독교 관련 단체와 세 차례에 걸쳐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1일 밝혔다.
일본군 동굴진지를 직접 복원하며 박물관을 만든 이 관장은 “개관과 운영, 시설 확장 등에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 자금 압박이 심하다”며 “하지만 사설 박물관이기 때문에 제주도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데다 국내 기업이나 단체에 매입의사를 타진했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오죽하면 그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박물관을 매각하려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2004년 개관한 평화박물관은 2000여점의 일본군 유물을 비롯해 가마오름 일대에 조성된 부지 4만2000㎡의 일본군 동굴진지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일본군이 사용했던 칼, 포 등도 두루 갖추고 있다. 국가기록원 등록 자료도 280권이나 된다. 최근 자료로는 연평도 포격 당시의 포탄도 전시 중이다.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중 본토를 지키기 위해 제주에서 최후의 옥쇄를 할 목적으로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 구축한 대표적 전쟁유물로 평가된다.
평화박물관은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학술적, 교육적 가치가 높아 제주의 대표적인 역사기록 박물관이자 관광지로 꼽혀왔다.
이 관장은 “일본 측이 박물관을 사들이고 나서 군국주의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데 이용할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만일 최종 계약 전에 박물관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 기업이나 단체가 나타나면 일본 측과의 매각을 재검토하고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제주평화연구원 진행남 연구위원은 이날 “가마오름 진지동굴의 역사적 상징성을 감안해 제주도나 정부에서 큰 관심을 갖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