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복몰이’ 전념하는 박근혜 정부, 닉슨 정권 말로와 너무나 닮은꼴 | 닉슨 미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발표한 성명 | "이러한 조사 행위는 워터게이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활동에 심각한 몰이해를 불려 올 수 있으며 그것은 더 나아가 민감한 국가 안보 관련 정보를 손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책임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며 당선된 사람으로서 이 직분(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1973년 5월 22일 닉슨의 대국민 성명 일부) 리처드 닉슨. 그는 1972년 미국 대통령에 재선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그럴싸한 부인(plausible denial)'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선 이후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의혹은 거칠 줄 모르고 더욱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1973년 5월 22일, 점점 궁지에 몰린 닉슨은 드디어 권력자의 전가의 보도(?)인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이렇게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장문의 성명을 통해 특히 미 중앙정보국(CIA)이 국가안보를 위해 여러 가지 정보 활동을 해왔음을 거론하며 "이러한 활동이 국가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는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러한 정보 활동의 행위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일부에서 마치 이를 정보기관이 저지른 행위처럼 몰아가고 있는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터졌을 때, 국정원 댓글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행해졌으며 일부의 선거 개입은 대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며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핑계와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닉슨의 말이 사실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책임을 모면하고자 전가의 보도인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반전을 꾀했으나, 그의 대국민 성명은 두어 달도 지나지 않아 거짓말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같은 해 6월 3일, 워터게이트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고 있던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기 위해 닉슨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적어도 35분 동안 회의가 열렸다"고 폭로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닉슨 대통령과 해리 홀드먼 대통령 수석보좌관 등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특별검사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CIA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닉슨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CIA에게 FBI 등의 조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백악관에 설치된 녹음기에 녹음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뒤로하고 닉슨은 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하기 위해 국가안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권안보를 위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고드는 행위는 마치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대국민 설득전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이 터지자 발 빠르게 국정원장이 나서서 이른바 'NLL 회의록' 공개를 감행하며 국가안보 사수를 핑계로 '종북몰이'를 시작한 것과 너무도 닮은꼴입니다. '정권안보' 위해 '국가안보'를 팔아먹은 닉슨 행정부의 광기 어린 발악 사실 닉슨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핑계 대며 이른바 '정권안보'에 급급해 광기 어린 발악을 시작한 것은 이미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그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촉발한 '통킹만 사건'의 조작 가능성과 실체를 보도해 여론이 정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보 요원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하며 이른바 '진실 물타기'에 나섭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당시 이 문서의 작성자이며 <뉴욕타임스>에 국가 기밀을 건네준 국방부의 대니엘 엘스버그를 정신병자로 몰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정보기관을 동원해 엘스버그가 다녔던 병원의 기록물까지 훔쳐내려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똑같이 병원 건물에 침투해 무단으로 병원 캐비닛을 열었던 것입니다.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역사박물관에는 정권의 이러한 불법행위를 영원히 국민에게 알리려고 당시 캐비닛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 미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파괴된 케비닛의 모습 | 이렇게 닉슨은 이러한 조작된 정신병력 등의 허위사실 유포와 CIA와 FBI 등을 동원한 제보자의 신상털기는 물론 언론 기사의 조작 등을 통해 대선 직전 불거진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지 맥거번 당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대선에서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난 대선 전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이 발생하자 '선거 개입 댓글은 없다' '일부 요원의 개인적 일탈이다' 등의 거짓말을 해가며 불이 나게 경찰청에 수사 발표를 지시해 선거일 전에 조작된 내용을 기사화하게 만든 사례와도 너무나 닮은꼴입니다. 더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불법을 동원해 가며 신상털기에 나선 행위는 41년 전 닉슨이 행했던 불법적 신상털기와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닉슨 행정부의 이러한 불법적 행위로 인해 오히려 대니엘 엘스버그에 대한 당시 정권의 기소는 기각되었습니다. 법원은 불법적인 자료 취득을 위해 침입한 사람들이 닉슨의 측근들과 관계가 있고 정권이 부정행위를 했다며 기소 자체를 기각시켰던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 나타난 교훈들' 그러나 강경으로 치닫는 박근혜 정부... 결과는? 이렇게 재선에 성공한 닉슨이었지만, 갈수록 진실이 폭로되고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들이 날아들자 앞서 언급한 데로 1972년 5월 22일, 정권안보를 위한 전가의 보도인 줄 알았던 '국가안보' 카드를 꺼내 들면서 애국심을 핑계로 계속 이 사건을 파고들면 국가안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대국민 협박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최근 '국정원 대선 개입'의 실체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들의 요구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의 미사 강연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두둔했다'는 내용으로 살짝 바꾸어 '국론(국가안보)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국의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집권자의 이 발언에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한국의 현실은 당시의 상황과도 너무나 닮은꼴이라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필자를 더 소스라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닮은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정권안보 유지를 위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국가안보를 내세웠던 닉슨은 국민들이 더 이상 속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이 불꽃같이 타오르자 더욱 광기 어린 집권자로 돌변하면서 자신의 사임을 재촉하고 맙니다. 그는 끝내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 결정적 증거)'으로 불리는 녹음 자료를 내어 놓으라는 특별 검사의 요구를 거부하며 오히려 그를 해임하려 했고, 이에 반발한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자 차관을 시켜 해임을 강행하려 했습니다. 이에 법무부 차관마저 이를 거부하고 사퇴하자 장관대리를 시켜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해 가면서 자신의 무덤을 점점 파고들어 갔던 것입니다. 필자는 이미 지난 3월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더욱 의혹을 불러오던 초기에 '진실의길'에 실린 글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잠시 국민을 속이려는 유혹으로 더 큰 화를 불려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박근혜 정부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더 이상 은폐를 계속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필자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국민을 계속 속이면서 닉슨 하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의 정보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의혹이 더욱 불타오르자 40년 전 미국 닉슨 행정부가 행했던 것과 똑같은 물타기와 '나는 모른다'는 꼬리 자르기, 이른바 '종북몰이'와 더불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정권안보용 대국민 협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국민들과는 멀어져 가며 식물 정부가 되어가는 박근혜 정부에게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라는 충고는 어쩌면 이제는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닉슨 행정부가 최후에 발악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종북몰이'와 '국가안보'를 핑계 삼아 '정권안보'를 위한 마지막 발악의 '공포정치'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2년 6월 17일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그럴싸한 부인'으로 잠시 동안의 은폐에 성공해 재선한 닉슨이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국민을 향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길이 있었으나 끝내 정권안보를 위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줄 알았던 국가안보마저도 팔아먹었습니다. 이렇게 국민을 잠시 속였으나 사건 발생 2년여 만인 1974년 8월 9일, 끝내 닉슨은 '임기 중 최초로 사임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오명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사실을 박근혜 정부는 꼭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거듭 이러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한 줌의 권력을 위해 '정권안보'에만 연연하며 잠시 국민을 속이고 '공포정치'로 국민의 입을 막았다가는 끝내 영원히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고 쓸쓸히 사라져 가는 '독재자의 딸'을 다시 한국 역사에서 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눈앞에서 그려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