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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 영화적인 것, 혹은 시네마틱한 것
게시물ID : movie_45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
추천 : 0
조회수 : 8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3/18 10:45:32

지난 6월13일, <씨네21>에서 새로 시작한 ‘씨네산책’이라는 기획 때문에 정성일 선배,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에 관한 잡담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잡담은 산만하게 그러나 즐겁게 7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잡담의 주제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이어서, 당신에게 참으로 영화적인 것, 혹은 시네마틱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두 사람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빛과 편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편집이 발휘하는 마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편집을 영화적 체험의 중추에 놓는 것은 얼마간 교과서적일 것입니다. 각별하게 들렸던 것은 빛에 대한 그의 견해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빛이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의 주요 작품들에서 조명을 맡은 박현원 기사를 망설임 없이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2002)부터 두드러지게 된 그의 영화에서 빛과 색채의 화려하고 격렬한 교향악을 떠올려보면 그의 빛에 대한 깊은 몰두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영화는 새로운 빛의 창조입니다. 

정성일 선배는 “바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대답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의 뜻은 이러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습니다. 어떤 예술에서도 사건으로서의 바람은 표현할 수 있지만, 현재의 시간과 물질적 운동의 감각적 흐름으로 드러내는 예술은 영화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가와세 나오미,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는 바람을 감각합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에 영화가 중요한 무언가를 찍었다면 그것은 계획에 따라 소집된 요소들이 아닙니다. 문득 그 곳에 불어와 영화의 사건을 멈춰 세우고 시간을 우주적 지평으로 개방하는 바람. 그 지평을 향해 흔들리는 나뭇잎들, 바스락거리는 옷깃, 흩날리는 먼지들의 아득한 충만함. 그런 것이 시네마틱한 체험의 본질이며 영화의 푼크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한 사람은 창조의 미학을, 다른 한 사람은 형성의 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한 사람은 계획에 다른 한 사람은 즉흥성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영화라는 속임수를 과잉의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에서, 후자는 그 속임수가 도저히 작용할 수 없는 존재의 절대적 순간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네마틱한 것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정리된 내용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진 않지만, 저는 두 사람의 견해를 중요한 질문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양자가 공존할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지도 역시 두고두고 생각해볼 질문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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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biff.kr/kor/html/webzine/article/article_view.asp?article_id=4000000387&ac=400&page=1&essey_cod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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