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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짝사랑의 추억
게시물ID : readers_45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valier
추천 : 0
조회수 : 1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2:17:25


-첫만남-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가 눈을 맞으며 서있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처음 고등학교 2학년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들 탓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무실 앞에서 시린 손으로 출석부를 움켜쥐고 떨고 있을 때였다.


 아, 먼저 나에 대해 얘기하면 나는 서기다. 매년 반이 바뀌면 어김없이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서기와 그 외 청소부들을 정한다. 어릴 적부터 또래 친구보다 키가 커서 빗자루 질을 하면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고, 쉽게 허리가 아파왔다. 웃기는 이유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문제였고 책임감 또한 남달리 없었기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서기를 맡기 위해 노력했다.

 

 1500명의 전교생, 내가 진급하며 졸업한 선배들을 제외한 1000여명의 교우들의 이름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1년여간 선도부를 하며 얼굴만은 익혀두었기 때문에 처음 본 순간 신입생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만화나 소설에 나오는 앵두같이 빨간 입술을 아니었지만 얼굴만큼은 내리는 눈보다 더 하얀색이었다. 다른 불량한 여자애들과 달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교복에 단정한 넥타이, 귀 앞으로는 머리를 내리고 뒤로는 묶은 포니테일 헤어, 여자애들이 즐겨 매는 빨간 백팩까지 벌써 수년이 지난 장면이지만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자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고, 친구들이 데이트를 할 때 도서관과 작가의 펜사인회에 갈 정도 책덕후였던 내가 처음으로 짝사랑한, 좋아한, 반해버린 그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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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

 나는 중학교 때에도 물론이고 고등학교에서도 선도부를 맡았다. 중학교 때에는 봉사시간 때문에 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꼴에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교를 가보겠다 아등바등 했기 때문이었다.


 선도부는 총 16명. 정문에 8명, 후문에 8명. 매일 정문과 후문을 돌아가며 선도한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난 후 나는 정문에 내 고정석을 만들었다. 정문에는 선생님도 함께 선도를 하시기 때문에 모두가 정문에 서는 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자진해서 정문에 선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선도부를 했다고 했던가? 물론 그게 원래 이유지만 1주일이 지난 후 선도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녀가 7시 50분에서 8시 사이 정문으로 등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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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우리 학교는 7교시가 끝난 뒤 8교시 보충수업을 들은 후 저녁을 먹고 10시까지 야자를 한 후에 귀가한다. 하지만 나는 보충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도서실에 가서 천문학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평소 점찍어둔 책이나 신간을 읽었다.


 내가 서기를 맡은 이유만큼 부끄럽지만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방해 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 증오한다. 조금 다혈질 이였다면 방해하는 녀석을 조용히 하라면서 때렸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남들에게 길을 물어보지도 못하는 소심 쟁이는 아니었지만 후배라도 초면에 욕지거리를 하면서 주먹을 날릴 정도로 대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을 그러지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녀가 나와 같은 책상에서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의 주제는 흔하디흔한 성적에 관해서였다.


 생물 1등급이라……. 나도 지구과학 1등급을 받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열등감이 들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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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초등학교 때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솔직히 드문드문 기억난다. 하지만 그리 오래 전 기억은 아닌듯 하다 벌써 수능을 300여일 앞둔 고3이다. 학년 초에만 해도 일찍 등교해 조례 전까지 자습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우리 집은 얼마 전 원래 집으로부터 500m쯤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께서 일찍이 돌아가셔서 집안사정은 점점 나빠졌고 급기야 월세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사한 집은 원래 버스 정류장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등교 루트를 바꿔야 했다. 버스를 타도 길을 잃기 일쑤였던 나는 이사 후 첫 등교날 어김없이 길을 해맷고 간신히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철 안에서 그녀를 만났다.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 해야 하지만 나는 평소와 같이 일어나 늦게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집에 올 때에도 그녀와 같은 그 전철을 타고 온다.

그리고 야자가 끝난 밤 10시, 그녀가 눈을 맞으며 신호를 기다린다. 조그만 우산이지만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뒤에서 내리는 눈을 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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