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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현대인 괴담 - 10년만의 만남 편
게시물ID : panic_457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20
조회수 : 326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4/16 21:03:54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줄래요?”
“오래 기다려야 돼?”
“잠시면 되요.”

그를 만난 건 10년 만이었다.

10년. 나는 무엇이 바뀌었던가.

그 이 외에 네 명의 남자를 만났었고, 한 번은 결혼을 할 뻔했다.
직장을 세 차례나 옮겼고, 지금은 실장이라는 직급에 까지 올라서 있었다.

10년. 그가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 왔을 때부터 허둥대고 있었던, 내 속내를 들킬까 겁이 났다.
몸을 옥죄오는 초조함에 오늘 하루 거울을 봤던 횟수가 작년 거울을 봤던 횟수의 곱절은 되지 싶었다.

어제 밤 내내 청소한 오피스텔의 형광등 전원을 올렸다.

가지런히 정돈된 침대며, 노트 한 권 흐트러져 있지 않은 책상, 잡쓰레기가
올라서 있지 않은 TV선반, 조막만 한 크기의 선인장이 가만 올라선 꼬맹이 커피 테이블.

이상은 없었다.

실오라기 한 자락 떨어져 있지 않은 듯 보이려 비질이며 걸레질을 방바닥이 꺼져라 했음에도
그와 집으로 향하는 동안 머리를 사로잡은 생각은 ‘방안이 지저분하면 어쩌지?’ 하는 것뿐이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방의 전경에 철덩이를 안고 있던 가슴은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놓인 것도 잠시, 다급히 화장실의 불을 올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길에서 불던 바람이 앞머리를 갈라놓지는 않았는지, 화장이 붕 떠 콧잔등이 희멀건 한
추태를 보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가만히 입을 벌려 이에 립스틱이 달라 붙어있는 것은 아닌지를 정비했다.

화장이 잘 정돈 되어있는 것이 확인되자, 비참하게도 내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스물다섯이었다.

손등을 내려다보자, 예전의 뽀얗고 촉촉한 기운은 사라지고,
삭막하고 가느다랗기만 한 뼈에 살가죽만 덜렁 덮어 씌워진 꼴이 보였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굳게 다물고만 있었던 입술.

사람들은 그런 내 성격을 신비감이란 극상의 언어로 칭찬해줬다.
이제 서른다섯. 어린 시절 맴돌던 연붉은색의 청순한 매력은 사라지고,
건조한 날씨 탓에 논바닥처럼 갈라져만 가는 입술이 거무튀튀하게 메말라 있었다.

“너는 눈이 예뻐.” 그 흔한 칭찬도 받지 못하는 눈동자는 불안함에
흔들리고만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서 무엇이 이토록 창피한 걸까.

“아직 이야?”
“아니에요. 나가요.”

현관을 열어 그를 맞이하자, 형광등을 가린 내 그림자에 물이 들어있는
그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만나고 네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정면의 모습을 본 그는, 그는 아직 그대로였다.

다만 턱의 선이 좀 더 굵직해지고, 눈썹의 숱이 짙어진 듯 그래서인지
눈가가 어린 시절에 비해 조금은 너그럽고 여유로워 진 듯, 그렇게 보였다.

“짐은 저 주세요.”
“이거 너 주려고 가지고 온 거야.”

그의 손에서 수산 시장에서나 볼직 한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를 건네받았다.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상자를 전해 받자, 붉은 색 노끈이
살점을 파고드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상자를 넘긴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발을 방 안으로 옮겨갔다.

짙은 남색의 블레이저를 벗은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겉옷은 그냥 침대 위에 놓아도 될까?” 물었다.

나는 상자를 주방 싱크대 밑에 바싹 붙여 놓으며 “두고 싶은 곳에 두셔도 되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완전히 돌아서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두려워진 나는 시선을 회피하는 핑계를 읊으며 뒤돌아섰다.

“이건 뭐에요?”

그러자 그는 흣 하는 콧소리를 내며 “나중에 열어 봐.” 했다.

딱히 다음 수순으로 떠오르는 행동이 없어, 스티로폼 상자를
봉하고 있는 노란 박스테이프에 손을 가져가자, 그가 물었다.

“왜 존댓말 해?”

심장이 덜컹 내려앉아 방바닥을 굴렀다.

나도 사실은 존대를 하려고 마음먹고 만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대면하고 나니, 어째 선가 튀어나오고 만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하는 말이.

첫 운을 존댓말로 띄우고 나자 나중부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덕분에 어색한 기운은 겉잡을 수없이 커져있었다.

“10년만이잖아요.”
“벌써 그렇게 되나.”

스물 셋에 그를 만나 2년 이란 시간을 함께했다.

그와 함께한 추억들. 손에 꼽아 보라면 지금이라도
첫 만남의 순간을 술술 뱉어낼 것만 같았다.

헤어졌던 그 이유도, 우리가 싸움을 했던 그날의 내 심경도,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소중히 생각했었는지도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듯싶었다.

처음 살을 섞었던 밤의 기억, 그가 내쉬던 그 숨결의 떨림까지도.

그의 웃는 버릇도, 말투도, 생각하는 법도 전부 알고 있으리라, 그 당시에는 생각했었는데…….

‘10년은 당신을 얼마나 바꿔 놓았나요?’

나는 지금의 그를 어림짐작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아끼던 사람이 40줄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되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세월 앞에서 완전히 달라진 것이 두려운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는 폭이 좁은 쇼핑 가방에서 와인 한 병 꺼내 들었다.

“잔은 있어?”

별 대화도 없이 와인을 두 잔이나 마셔버렸다.

“무슨 일로 전화했나요?” 하는 말이 이따금 울컥하며 목구멍으로 치솟았지만,
이를 악물어 버텨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런 말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대로네, 너는.”

그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뭐가요?” 물으니

그는 “술이 들어가면 금방 눈가가 젖잖아. 볼도 빠알갛게 물들고. 예전에 사람들이 그랬었어.
너는 술이 한두 잔 들어가야, 진짜 본연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고.”

나는 몰랐다. 술을 마시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밖에는.

나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었어요?

10년 만에 떠올라 전화를 했나요?
10년 동안 떠올라 전화를 했나요?

“결혼은 왜 안했어?”
“인연이 없었었나 봐요.”

나도 되묻고 싶었다. 그는 내가 묻기 꺼려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내게 물어왔다.

“나는 했을 것 같아?”
“어떤데요?”
“어떨 것 같아?”

그의 말에 답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선 성질머리가 더럽고 말투가 냉랭하다며,
은근히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나였다.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고, 일이라면 석 달을 굶주림 속에 지친 짐승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뒤에선 ‘정떨어진다.’ ‘인간미가 없다.’ 하는 욕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왜 그에 앞에서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지는 걸까.
나를 탓하고 있었다. “어떤데요?” 하고 한 번 더 묻는 말조차 입에 못 담는 여자였던가.

나는.

“이혼한지 2년이 되가네.”
“결혼 했었어요?”
“결혼은 무슨, 내 무덤 파는 삽질만 한 5년 했었지.”

그의 아저씨 같은 농담에 어렴풋 웃어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웃자 그는 곧장 “이제야 좀 웃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리고 이내 슬그머니 손을 쥐어왔다.

가만히 손등에 손을 포겐 그의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왔다.

나는 스물 대여섯 난 여린 아이마냥 얼굴로 피가 몰려오는 감각에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제 무슨 생각을 하며, 오밤중에 방을 쓸고 닦았었는지 조차 잊은 것처럼.
술기운에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변명하기엔 이미 얼굴에 불덩이가 집혀진 듯 뜨거웠다.

“저, 잠시 만요.”

얼굴을 식히려 다시 화장실로 도망을 왔다. 서둘러 물을 틀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봤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곤 하나, 뺨에 조금 핏기가 어린 수준이었다.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 여자가 되었나?’

밖에서 그가 “괜찮아?” 하고 물어왔다. “금방 나갈게요.” 대답을 하니 밖은 잠잠해왔다.
나는 애꿎은 입 안을 헹궈도 보고, 씻은 손을 또 씻고 또 씻어가며 아주 살점을 벗겨내고 있었다.

애기들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달래기엔 얼음장 같은 찬물이 필요할 듯 했으나,
점점 풀려가는 날씨 때문인지 수도꼭지를 아무리 오른쪽으로 돌려보아도, 물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리고.

“죄송해요. 기다렸죠.”

내가 화장실에서 나섰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방 안이 진공상태가 된 듯 중저음의 일정한 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

혹시나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현관을 나서려 하니 그의 신발이 자리하고 있질 않았다.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허망감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지,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봄바람이 현관문을 타고 방으로 들이치며 종이자락을 ‘팔랑’ 하고
간질이는 소리가 없었다면, 밖에서 밤을 꼴딱 새웠을 지도 몰랐다.

소리를 따라 방 안으로 돌아가니 커피 테이블 밑으로 작은 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휘갈기듯 날림으로 빠르게 써내려 간 필체. 분명 그의 글이었다.

「10년 만에 하는 연락이라, 사실 막막했어. 네가 날 보는 것을 원치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네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었는지. 세상이 끝나가는 절망감 속에서

신기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네 얼굴이었어.

왜였을까.

글쎄, 네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편안했던, 행복했던 시절의 사람이라서?
나는 답을 내릴 수가 없을 것 같아. 너는 이럴 때 가장 현명하고 재치 있는
답을 내주는 사람이었잖아. 오랜 만에 만나선 급하게 떠나 미안해. 잘 지내,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줘. 나는 너를 믿어.」

이렇게 떠날 것이었다면, 왜 전화까지 했을까.

그가 써 놓은 쪽지를 손으로 짓이겼다가 다시 펼쳐 갈가리 찢어버렸다.
눈물이 떨어지는 내가 미련스럽게 느껴지는지,

한참을 울고서도 섭섭한 마음이 가시질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요상스런 흰 상자 속 선물만을 남겨둔 채, 이렇게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모습을 다시 본 것은 주말시간 혼자서 끼니를 때우던 순간이었다.

그는 TV 속에서 삭막하고 표정 없는 사진이 되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뉴스의 앵커는 그의 얼굴을 배경으로 빠르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지난 3월 21일 신고가 접수 되었던 토막 살인의 용의자 최 씨가
서울시 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최 씨는 스물다섯 살의
애인 박 모양이 만남을 거부한다는 것에 화가나 박 모양을 토막 살해 한 후,
지인들에게 시체의 일부분을 맡겨 범행을 은폐하려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최 씨의 도피행각은 시체의 일부를 맡겼던 전처, 이 모씨가 상자 안에 담긴
시체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며 끝이 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시 경찰청에 나가있는 박상현 기자입니다.”

“서울시 경찰청에 나와 있는 박상현 기자입니다.
최 씨는 현제 4시간 째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시각별로 속속들이 범행을 자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경찰청 측에서는 최 씨가 마지막으로 감추고 있는
박 모양의 머리 부분을 놓고 취조를 진행 중이나, 최 씨가
급작스런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식결과 신체가 상당히 회손 되어 있는 점을 미루어 사망자 식별이
불가능 한 것으로 알려져, 신체의 얼굴이나 이의 모형을 확인하기 전까진
최 씨가 지인들에게 전달 한 시체가 정말 박 모양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어,
최 씨의 연쇄살인 가능성 또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경찰에선 또…….”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줘. 나는 너를 믿어.

그게 내가 행복하게 지내기를 믿는 다는 말이 아니었어?

그가 떠나고 한 번 뜯어보지도 않은 스티로폼 상자는
냉장고 가장 밑 칸에서 냉기를 쐬고 있을 터였다.

나는 냉장고에서 꺼내 온 김치며, 멸치볶음, 풋마늘 장아찌 따위를 내려다 보았다.

“너희는 요 며칠 무슨 바람의 쐬고 있었니?”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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