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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후임병 -7- (마지막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45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중없는아이
추천 : 46
조회수 : 671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09/10/17 11:02:20
"후....씨발 그러니까...헐... 말이 안 나온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짓누르며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니까...너 지금 죽은 윤상병이라도 보인다는거야?"



"네."



젠장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물어봤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간단한게 대답하였다.



"후......이젠 귀신들이 종류별로 나타나는군. 예전에 죽은 귀신, 최근에 죽은 귀신......


잘하면 이 부대에서 죽은 귀신들 모여 동문회라도 하겠네."



"..........."



"윤상병 지금 어디 있는데?"



"부대 막사 주변에서 가끔씩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것은 의미없는 짓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내가 이러한 사실을 알아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초소 근무설 때 최병장이 나한테 해 준 얘기가 맞았다.



'그런 얘기 너무 믿지마라. 믿으면 믿을수록 너만 피곤해진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이강수에게 진지하게 충고했다.




"너 이 말 잘들어. 너 살고 싶으면 그 입 다물어라. 내일 영창갔던 김병장 돌아온다.


윤상병의 윤자만 꺼내도 넌 김병장의 칼에 맞아 죽을 수 있다."




다음 날 오후 김병장이 나타났다.


모두들 어떻게 그를 맞이해야 할지 몰라했다.


말년 고참들이 고생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지나치게 초췌해진 그의 모습은 보통의 15일 영창을 갔다 온 군인의 모습으로 보긴 힘들었다.


양 옆으로 쫙 찢어진 눈꼬리가 쳐진 듯이 보였고, 돌출된 앞니를 감추려는 듯 입은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한 동안 햇빛을 못 봤을 텐데도 그의 얼굴은 더 검어진 것 같았고, 핼쑥해진 얼굴은 그가 굉장히 무언가에 시달렸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대대장에게 복귀 신고를 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내무반에 들어온 뒤로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고참이고, 후임병이고 오로지 그의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였다.


저녁 식사를 했는지 안했는지 내가 식판을 모두 닦고 내무반에 들어왔을 때까지 그는 내무반 구석에서


침낭을 뒤집어 쓰고 조용히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당직사관인 선임하사도 오늘만큼은 모른 채 넘어가고 싶어했는지, 그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저녁 9시 반, 점호시간에도 김병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단히 점호를 끝낸 선임하사는 고참들에게 김병장을 잘 살피라고 지시했다.


선임하사가 내무반을 떠난 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내무반에 감돌았다.



'이 씨발 새끼야. 영창 갔다온게 무슨 자랑이냐?' 이러면서 성깔 사나운 고참이 싸움이라도 붙일 것 같았다.



모두 자고 있는데 저 미친 김병장이 갑자기 일어나 총이라도 난사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감추고 있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작은 불똥 하나만 튀어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팽팽했던 긴장감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새벽 3시 쯤....난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불침번과 김병장이 내무반 구석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다.



"잘 들어봐.....들리잖아......"



김병장이 울먹이며 매달리듯이 불침번을 잡고 설득했다.



"김병장님. 왜 그러십니까 정신차리십시오."



"왜? 안들려? 저기 잘 들어봐...윤상병 그 새끼 끙끙 앓고 있잖아!!!"



이미 전 부대원들이 잠에게 깨어나 버렸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갑자기 김병장은 기겁을 하며 우리에게 쏘아붙였다.



"다 들 왜 그래? 내가 미쳐 보여? 이 씨발놈들..윤상병 가지고 장난치는거지?"


"저 새끼 왜 저래? 영창 갔다왔으면 정신을 차려야지 미친 새꺄!!"



고참들의 욕설에 김병장은 아무도 말릴 틈도 주지 않고 외곽 근무를 준비하고 있던 근무자의 총을 재빨리 빼앗았다.


그리고 우리 쪽을 겨누더니 외쳤다.



"이 개새끼들!! 나 가지고 노는거야. 그치? 이 나쁜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김병장이 쥔 총은 빈 총이다. 탄창은 근무신고 후 행정반에서 지급받기 때문이다.



"너 씨발새끼, 지금 뭐하는거야?"



말년 고참 한 명이 거친 욕설을 내뱉았다.


그러나 김병장은 개의치 않고 계속 울부짖었다.



"이 씨발놈들. 다 죽여버릴거야. 니들 다 윤ㅇㅇ하고 한 통속이지? 개새끼들!!!!!!"



"저 새끼 총 뺏아!!"



말년 고참들의 명령에 부대원들이 원을 두르 듯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김병장은 벽을 등지고 총을 이리저리 마구 휘두르며 부대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래..이 씨발놈들...다 덤벼. 모두 다 싸그리 죽여줄테니까....."



그의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갔다가는 휘두르는 총기에 머리에 구멍이라도 날 듯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김병장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이강수를 향해 총을 겨누며, 두 손을 부르르 떨며 울부짖었다.



"윤ㅇㅇ...저리 가 씨발놈아....이제 좀 내버려둬.....저리 가라고 이 개새끼야!!!!!!!!"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김병장은 이강수가 있는 쪽을 향해 총을 마구 휘둘렀다.


우리는 순간 멍하니 그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뒤이어 다시는 평생에 보기 힘든 엽기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이강수의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강수야...."



우리의 걱정은 곧 끔찍한 두려움으로 변하였다.


코피를 흘리던 이강수가 씩 미소를 짓더니 성난 고양이처럼 양손을 들어올리고 손톱을 치켜세우며,


입을 쩍 벌리고 김병장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꺄아~~~~~~~~~~앙!!!!!!!!!!!"



짐승의 소리였다. 그 순간만큼은 이강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달려드는 순간 김병장이 휘두른 소총의 개머리판에 오른쪽 어깨를 강타당했음에도 이강수는 개의치 않고 


김병장을 엄청난 힘으로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뒤엉켜 육박전을 펴쳤다.


놀란 부대원들이 급히 달려들어 뜯어말렸으나 그 조그만 체격에서 어떻게 그 엄청난 힘이 나오는지


이강수는 부대원들을 한 두차례 뿌리치고는 김병장을 넘어뜨렸다.


그리고 김병장의 총기에 수 차례 온 몸을 난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병장이 넘어짐과 동시에 그의 가슴 근육을 물어버렸다.



"아~~~~~~~~~~~악!!!"



김병장의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내무반에 울려퍼졌다.


모두들 경악스런 장면에 움찔해 있는 사이 갑자기 여자같은 괴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씨발년아!!!"



순식간에 달려든 고장포 병장이 이강수를 잡아 힘껏 뿌리쳤다.


침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이강수는 달려든 부대원들에게 곧바로 제압당하였다.



"이제...그만해 씨발.....이제 정신차리고 살아보자...."



고장포 병장은 이전 부대에서 받았던 천대를 피해 도망치듯 우리 부대로 왔던 사람이다.


그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그 험상궂은 얼굴에서 연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씨발......"



뒤 늦게 달려 온 선임하사 어찌 된 영문인지 살피고 있었다.


이강수는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상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김병장은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을 하고 있었다.



"저 두 놈 빨리 침상에 눕히고 꼼짝 못하도록 잡고 있어!!"



우리는 형사가 범인을 체포할 때 사용하는 방법처럼 김병장과 이강수를 엎드리게 한 후 손을 뒤로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였다.


선임하사는 행정반으로 고참들을 불러 상황을 다시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강수의 팔을 잡고 그가 움직일 수 없도록 최대한 힘을 주어 몸을 고정시켰다.


그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온 핏물이 매트리스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제압당한 두 사람의 헉헉대는 숨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고장포 병장은 내무반 구석에서 훌쩍훌쩍 대며 넋 나간 사람처럼 쪼그려 앉아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난 지금 내가 무엇을 봤으며, 무엇을 겪었으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 부대원들도 우두커니 서서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답을 찾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선임하사가 다시 내무반에 들어와 부대원들에게 말을 했다.



"지금 대대장님에게 다녀올 테니까, 외곽근무 제대로 돌리고 저 두 놈은 저대로 꼼짝 못하게 잡고 있어."



선임하사는 운전병과 함께 급히 내무반을 빠져나갔다.


선임하사가 빠져 나간 후 얼마 동안 모두들 공황상태에 빠진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머리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참들의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아..씨발 부대 해체되겠네. 씨발 좆같은 병신 새끼들만 들어와가지고..."




기존 부대원 병장의 원망에 전입해 온 다른 병장이 맞대응하였다.




"뭐? 씨발놈아? 나도 이런 씨발 좆같은 부대에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뭐? 좆같은 부대? 이 씨발놈이 죽을려고.."



그러자 두 사람은 곧 죽이기라도 할 듯 자리에서 일어서 막말을 내뱉았다.



"다 들 조용 안해?"



말년 고참의 고함소리에 한 동안 씩씩거리던 그들은 곧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두려움이 물밀 듯 밀려왓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이 부대를 탈출하고 싶었다.




선임하사가 나간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몇몇 고참들은 행정반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고 있고, 몇몇 고참들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직 내무반에는 졸병들만 잠들지 못하고 마냥 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날이 샐 듯한 분위기였다.



이 와중에 이 사태의 주범인 김병장은 피곤한 지 부대원에게 제압당한 그 자세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여전히 이강수는 엎드린 자세로 계속 가는 숨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의 팔에서 힘을 풀었다. 관물대에 등을 기댄 채로 졸음만을 쫓고 있었다.



"크크큭..김ㅇㅇ. 일병님?"



그는 간신히 호흡을 유지하며, 기침인지 씩씩거리는 건지 정체모를 소리를 내며 작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조용히 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그러나 여전히 이강수 이 자식은 내 말을 무시하는 버릇은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제가 왜 코피를 흘리는지 아십니까?"



"이 자식 무슨 말 하는거야?"



옆에서 같이 이강수의 팔을 잡고 있었던 일병 고참이 나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강수는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냥 말을 이어갔다.



"혼령이...크큭...사람 몸에 들어오려고 하면.. 어떤 사람은 기절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차거운 기운을 느끼고


기를 발산해 쫓아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혼령에 정복당해 다른 인격체로 변하기도 합니다..크큭.."



나는 아무 말없이 그냥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저는 코피를 흘립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크크크크크.."



나와 같이 이강수의 팔을 잡고 있었던 일병 고참이 뭔 말이냐는 듯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얼굴을 매트리스에 옆으로 처박고 큭큭거리며 웃는 그의 모습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느샌가 시간은 새벽 6시가 되었다.


이젠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밖은 아직도 어둠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몇 고참들은 내무반으로 들어와 침낭을 뒤집어 쓰고 꼼짝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위병소에서 큰 경례소리가 들렸다. 대대장이 온 것이다. 


어느 틈엔가 모든 부대원들이 먹이감에 몰려드는 바퀴벌레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내무반을 꽉 채우고 차렷자세로 대대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에 제압당한 김병장도 잠에서 깨어 났는지 이제 나를 놔주라며 하소연을 했다.


나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의 자세를 유지하다가 대대장이 내무반에 들어오고 나서야 자세를 풀었다.



몇 번의 예를 갖추는 경례가 끝나자 대대장은 딱 한마디 말만 남기고 CP로 향했다.



"두 사람 1호차에 태워"


대대장은 모든 것을 결심하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두 사람을 부축하고 1호차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강수는 생각보다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다리는 절뚝거리고 있었고, 오른쪽 팔에 거의 힘을 못주고 시체처럼 팔을 늘어뜨렸다.


1호차에 선탑자로 중대장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바로 어디론가 가려고 하나보다.


왠지 지금 이들을 떠나 보내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강수도 그 걸 알았는지 나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김일병님...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제 얘기 들어줘서...흐흐흐.."



말라붙은 피떡으로 범벅된 얼굴로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얼굴의 핏물이나 닦아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켁켁...절대로 저 뒷산에 혼자 가지 마십시요. 알겠죠?"



"이 씨발놈. 군대에서 '요'라는 말 쓰게 돼 있어? 절대로 혼자 안 갈테니까 걱정 마." 



아...씨발..이 미친 새끼한테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어쩌면 친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좆같은 군대에 와서 너나 나나 이게 뭔 개고생이냐?


나도 모르게 속에서 북받쳐 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들을 차에 태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1호차는 떠나버렸다.


저 멀리서 해가 뜨려는지 서서히 밝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떠나가는 1호차를 잠시 동안 바라보며 몇 가지 생각에 잠겼다.


오늘부터 내가 식판을 닦을 때 내 옆에 이강수가 없을거라는 것과 부대에 큰 바람이 불어올거라는 것이었다.



날이 너무나 추워졌다.


나도 모르게 콧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아이처럼 나는 콧물을 손으로 훔쳤다.


내무반에 들어가서야 그것이 코피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강수가 아니니까. 단지 난 피곤할 뿐이다.



그 후 나는 그들이 헌병대를 거쳐 의무대로 갔다는 얘기까지만 전해 들었다.


그들이 다른 부대로 갔는지 아니면 입원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예감처럼 다시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난 아직도 이강수가 어떤 녀석이었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가 아주 천재적인 연기자이거나 아니면 너무나도 나약한 육체의 소유자, 그 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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