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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올려볼까 정화글이나 ㅋㅋㅋ 파뤼코뮌이란?
게시물ID : sisa_3575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간다간지간디
추천 : 11
조회수 : 31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02/06 02:32:56

 

시사게니까 그래도 시사게다운 주제로함 써보겠음.

 

나름 제 정치색에서 이상적으로 보였던 정부는 파뤼코뮌이라..

 

뭐 이미 몇번씩 보신분들도 있고나보다 잘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시끄러운날 머리식힐겸 ~ 과학게에서 오늘의 상식(맞나) 올리듯이

 

시사상식도 복습하실겸~

 

일단 파뤼코뮌은

 

파리코뮌

요약
1871년 3월 28일부터 5월 28일 사이에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
  • 원어명

    Commune de Paris

1870년 7월 발발한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은 처음부터 프로이센 육군이 프랑스를 제압하였고 파리 시민들의 농성에도 불구하고 1871년 1월 28일 휴전조약이 체결되었다. 2월 12일 강화조약을 토의할 국민의회가 보르도에 설치되고 임시행정장관에 L.A.티에르가 임명되었다.

국민의회는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비준했으나 파리 시민은 오히려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이 조약에 불만을 가졌다. 3월 1일 파리에 입성한 프로이센군은 파리 시민의 무언의 적의와 소극적 저항을 받으면서 3일 후에 철수하였다. 3월 18일 티에르의 임시정부정규군에게 농성 중 국민군(의용병)이 사용한 대포를 압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시민과의 마찰이 생겼으나 곧 정규군과 국민군 사이에 화해가 성립되어 19일 양자의 대표는 시청을 점거하고 ‘중앙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동시에 티에르 정부는 베르사유로 도피하였다. 중앙위원회는 포고문을 발표하여 코뮌(인민의회)의 선거가 실시될 것이며, 중앙위원회는 그 때까지의 잠정기관임을 분명히 하였다. 26일 선거를 마치고 28일 시청 앞 광장에 20만의 시민을 동원하여 코뮌 성립의 행사를 거행하였다. 29일 집행위원회 아래 군사 ·재정 ·식량 ·노동 ·교환 ·교육 ·외교 ·사법 ·보안의 9위원회가 성립되고 시민생활의 자주관리체계가 정비되었다. 90명의 코뮌의원의 성분은 자유직업자 ·중산시민이 대부분이고 노동자는 20명이었다.

블랑키스트 ·프루동파(派) ·자코뱅 당원 등 일부 사회주의자들도 있었다. 코뮌은 짧은 기간에 징병제와 상비군의 폐지 및 인민에 의한 국민군의 설치, 집세의 미지불분의 일시연기, 관리봉급의 최고액 결정, 종교 ·재산의 국유화, 공장주가 방기(放棄)한 공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관리, 부채의 지불유예와 이자폐기, 노동자의 최저생활보장 등 여러 가지 정책과 법령을 발표하였다.

코뮌이 지상 최초의 노동자정부를 수립하려고 분주한 틈에 프로이센과 결탁한 정부군은 5월 21일 맥마흔의 지휘하에 파리로 진격하였다. 그리하여 ‘피의 1주일’이란 7일간의 시가전 끝에 코뮌은 붕괴되고 3만의 시민이 죽었으며 많은 사람이 처형당하거나 유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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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점령하는 패전의 혼란 속에서 파리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자들은 '파리 코뮌'으로 알려진 폭동을 일으켜 한때 시정부를 장악하고 군대까지 조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일정한 강령이나 행동 방침이 없고, 구성 분자가 잡다하여 곧 정규군과 임시 정부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피의 1주일'이라고 불리는 참혹한 시가전 끝에 코뮌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그동안 3만 명에 가까운 파리 시민이 학살되고, 4만 명이 군사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1만여 명이 사형, 무기 징역 및 그 밖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 후, 제3공화정이 수립되었으나, 왕당파와 군부 및 가톨릭 교회 등 극우파의 공화제 반대로 그 앞날은 평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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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백과사전 정읜데, 기본적으로 이래요.

 

우선 코뮌은 1. 다수의 민중들이 어떤 정치적인 세력의 압력 없이 스스로 구성한 정부라는 것

2. 다양한 스펙트럼과 계층의 사람들이 정부를 구성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죠.

석달을 못버티고 무너진 정부(사실 정부라 하기에도 조직 체계가 어설펐다고 함)가

왜 중요하냐면 사회주의적 이념이 현실정치에 적용된 최초의(제가알기론)사례기 때문이죠...

어떻게보면 너무 짧은기간 존속됐기때문에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전에 붕괴되서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됐을 수도 있지만, 여튼 마르크스나 초기 인터네셔널이 이루고자 했던 혁명이나 사회는

이런것이란 거죠.

 

사실 좌파 아나키스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도 이와 비슷한 구성에 기반했다고 보셔도 됩니다

 

잉....... 쓰고보니 글이 영 시원찮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소재도 무지 예민한 소재.......ㅋㅋㅋㅋㅋㅋㅋ

 

아 글을 어케끝내야되지..........

 

시사게도 오유니까 ASKY!!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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