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모두들 추워 팔짱낀채로 뛰어다니는 횡단보도 한가운데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있기만 했다

서둘러 뛰어가던 남자의 어깨에 부딪혀 그녀의 몸이 휘청거릴때에도 그남자가 그녀를 쳐다보며 재수없다는듯 욕지기를 꺼낼때도

그녀는 다음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

 

빵 빵빵 - 양쪽의 차들이 클락션을 울리고 창문을 열고 삿대질을 해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발을 떼기 시작했다

" 이제 어디로 가지 ? " 중얼거리며 그녀는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녀가 신고있는 신발은 다 헤어진 여름 샌들이었고 찬찬히 뜯어보면 그녀가 입고있는 옷조차

얇디 얇은 때지난 가디건이었다 .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전 있었던 곳 그녀가 태어나 스무해 되도록 지내온 곳 그곳은.. 

엄마라는 말을 뗄때부터 어미가 누군지 그리고 그녀의 어미에게 모순덩어리인 그녀를 잉태하게 한 남자도 누구인지 알수 없었던 곳이었다

빨간등 , 벗은 여자들 , 술에취해 소리지르는 늙은 남자들 , 두리번거리며 무리지어 오는 어린 남자들 , 삐걱거리는 소리

그곳을 표현할 방법은 많았지만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않았다 .

언니라고 불렀던 여자는 그녀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해갈 때  즈음 , 어느 늙은남자의 손에 진짜 여자가 되게 했고

그녀는 그게 어떤 일인지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도 모른채 일상에 젖어들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몰랐던 탓인지 , 자라온 환경탓인지 그녀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것 같다

 

그런 그녀가 도망치게 된 이유는 어젯밤 찾아온 남자의 말때문이었다

그남자는 다른 남자와는 달랐다 . 그녀의 앳된 얼굴을 보더니 그남자는 침대어귀에 걸터앉아 말했다

" 왜 이런곳에서 일하는 거니 "

              " 몰라요 . 여기가 집이예요 "

" 여긴 집이 아니자나 , 진짜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있지 않아? "

              " 언니도 삼촌도 이모도 다 여기있어요 "

" 그사람들은 진짜가 아냐 , 넌 이런데서 일하기엔 너무 어려 . 빚을 진거니 ? "

              " 빚 ? 그게 뭐예요 ? 난 몰라요 . 그냥 언니가 하라는대로 하고 삼촌이 가라는대로 가고 이모가 먹으라는 대로 먹어요 "

" 원한다면 도와주마 . 니가 나갈수있게 도와줄께 "

              " 싫어요 . 여기가 집이라니까요 "

 

그남자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남자는 조용히 떠났다 . 하지만 그말이 불씨가 되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알고있던 세상이 잘못된건 아닐까 겁이났고 그렇게 남들의 눈을 피해 무작정 도망친것이다

한참을 뛰고 걸어 도착한 시내에는 자신과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 , 연인의 손을 잡고있는 사람들 , 저마다 행복해보이는 표정들뿐

그녀는 알수 있었다 . ' 내가 갈 곳은 없구나 . 난 다시 돌아가야 할까 '

' 나는 누굴까 , 나는 나는 .. 대체 뭐지 ? '

그렇게 한참을 그녀는 그생각만을 했다 . 추위도 잊고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 발따위도 잊고 ..

 

커다란 빌딩 사이 벽면에 기댄 그녀는 여전히 눈을 맞고 서있었다 . 아니 누워있었다

쓰러진 그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견했을땐 이미 그녀는 숨이 멎어있었고 그녀의 신분을 증명할것은 찾아볼수 없어

시신은 '연고자가 없는 행려병자' 로 처리되어 화장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채 사람들의 괄시를 받는 모습으로 살았을때 행복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알게되고 뛰쳐나온것이 더 행복했을까

아마 그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알순 없겠지만 그녀가 언니라고 불러온 사람이 엄마라는것을 처음 부터 알고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건 , 아무것도 모른채 살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것이 자신의 어미라는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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