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출난 외모는 아니지만 너희들보다는 예뻤고 전교 1~2등은 아니지만 너희들과 비교하면 초상위권에 있었다. 우리 무리들 중 나만이 남자 여럿에게 고백을 받았고 성적이 꽤 좋았었기에 서연고도 쉬이 갈 수 있을 줄 알았었다.
스물다섯이 된 지금, 나를 좋다 했던 수많은 남학생들은 연락조차 닿지 않고 서연고는 커녕 찌질하게 노량진 길바닥에서 안감은 떡진머리로 컵밥이나 사먹는 공시생이 되어 있다. 그래 나는 잘난척을 했었다. 내가 최고같았던 나잘난맛에 살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괴감에 빠져든다. 난 조금도 대단할 게 없던 한낱 여자애에 불과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유린당할만큼 잘못된 언행이었을까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 생각했던 너희들에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조롱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고 전교생 모두에게 '가까이 가기 싫은 아이'로 인식되도록 1년이 넘게 괴롭힘을 당할만한 잘못이었을까. 나는 컨닝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몸을 판 적이 없다. 나 잘난 맛에 살긴 했지만, 너희를 무시한 적은 추호도 없다. 1년이 넘게 괴롭히는 내내 너희는 전부 내 잘못이라 늘 각인시켰었지. 니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이럴일 없었을거라고. 화영이 사건 처음 터졌을 때 '지도 잘못 했겠지 뭐'라는 생각이 든 내 모습에 스스로가 소름이 끼쳤다. 너희들의 세뇌가 깊숙히 박혔었나보다. 누구보다 화영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게 나일텐데, 피해자인 내가 그런 생각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 본 사람은 나에게 겸손하다고 조금 더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나를 계속 알고 지내는 사람은 나에게 자기비하 그만 하라며,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북돋워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에도 자신있게 당당해질 수가 없다. 내 실력은 엉터린데 주제 모르고 잘난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나의 사고방식을 비틀어버린걸까. 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린걸까. 내가 그정도로 잘못했던걸까. 너희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하기는 할까. TV에서 왕따관련 얘기 나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할까.
평생 나한테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너희는 평생 내 유령에 시달리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