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로운 광물지대의 수급을 위해 나선 건설로봇 505호는 일반적인 광물과 달리 노르스름한 빛을 띄는 광물 덩어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뒤면 이곳으로 새로운 사령부가 내려앉을 것이고 그 후에는 또 2시간의 수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광물덩어리를 해체해서 사령부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건설로봇들은 벙커를 짓고, 보급고를 늘리느라 분주하지만, 아직 신참인 505호는 건설에 투입될 정도로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운좋게도 약간의 휴식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야 이 씨발 505호 너 또 농땡이피고있지? 빨리 가서 일 안해?" "아, 알았다구요! 건설에는 참여도 못하게 하면서 괜히 지랄이야!"
마찬가지로 짬 안되는 건설로봇들 일 시켜두고 자기는 한가하게 있던 78호가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 평소에도 해병이나 불곰한테는 괜히 굽신굽신거리면서 같은 건설로봇들한테 유난히 악독하게 구는걸로 악평이 자자한 녀석이다. 항상 자기 건설로봇에 왼팔에 깊숙히 패인 자국이 예전 카-행성에서 밀려드는 저글링과 맞서 싸우다가 생긴 상처라고 자랑하고 다니지만 대부분은 그게 광물을 캐면서 졸다가 자기 팔에 용접기를 들이대서 생긴 자국일거라고 수근댔다. 신참 해병들한테도 말 한마디 못하고 쩔쩔매는 놈이 잘도 저글링이랑 싸웠겠냐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이봐 78호, 신참한테 너무 그러지 말게나. 아직은 건설에 참여할 경험이 부족해서 내가 일부러 좀 쉬고 있으라 한걸세." "아니, 작업장 형님은 왜 저 녀석을 그리 감싸고 도는게요? 이 바닥은 기집년이라고 봐주는거 없다는거 아시잖수?" "어차피 30분뒤 사령부가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으니 다들 곧 작업에 투입될게야. 자네도 슬슬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런 니미. 간만에 좀 쉬나 했더니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한다우?" "여기가 원래 저그 번식지가 있던 자리인데 우리 테란 자치령이 밀어낸 곳 아닌가. 벌써 가까운 저그무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더군. 앞으로 바빠질게야." "제기랄, 해병 없어요? 그 벙커에 들어가서 총질이나 할 줄 아는 놈들 이럴때 좀 나가서 쓸어버리고 오라고 하쇼. 맨날 보급고에서 스팀팩인지 전투자극제인지 맞으면서 술이나 처 먹을줄 알지 저그 놈 하나라도 잡아본 놈이 있을려나 궁금하우.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는 저그 그까짓거 식후 운동거리였는데. 이 팔에 상처 형님도 아쇼? 이게 언제 생긴거냐면... "
22호-통상 작업장으로 불리는-와 78호가 한참 이야기 하는 틈을 타서 505호는 슬쩍 광물 뒤쪽으로 이동했다. 사령부의 캡슐에서 자는 잠은 두시간만으로도 몸의 피로를 가뿐히 털어내 주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전혀 줄여주지 못한다. 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허풍을 듣고 있는 것은 평온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광물 덩어리들 뒷편에 커다란 나무 근처에 뭔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이곳에 있었다던 저그의 잔여병력은 아닐까 싶어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저그라면 자신을 본 순간 저렇게 구석으로 숨지는 않을것이다. 모든 저그들은 다른 생명체를 보면 무조건적인 적의를 보이며 덤벼든다고 배웠으니까. 궁금함에 가까이 다가가던 505호는 발에 무엇인가 끈적하게 밟히는 것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건, 크립...?"
저그 부화장 근처에는 저그 이외에 다른 생명체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보라색의 진흙같은 것이 퍼져나간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엔 번식지도, 부화장도 없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나무 뒤쪽으로 돌아간 505호의 눈에 마치 도망치는듯한, 하지만 매우 느린 '무엇'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