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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자살의 명소 [연재소설] -1부-
게시물ID : panic_460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2
조회수 : 159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4/20 18:55:41




“사람은 언젠가 결국 죽는다. 철민이 너도 마찬가지야.”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그 날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섬의 가파른 절벽. 누군가가 끌과 정으로 깎고, 다듬어 뾰족한 새부리 모양으로
돌출시켜 놓은 듯 보이던 그 절벽의 끝에 서서 한 말이었다.

원래는 수리산, 기암절벽이라 명명되어 있음에도 섬사람들은
그곳의 튼실한 바위절벽을 일컬어, 자살바위라 불렀다.

아버지는 사비를 털어 절벽 둔치에 정자를 새웠다.

섬의 절경을 찾아 온 여행객을 위한 쉼터가 되길 바라 지은 정자.

아버지는 남자들 손바닥만치의 나무판자로 여정(旅程) 이라
한자를 음각해 정자 정면에 걸었다. 그 판자의 한문을, 사람들은 읽어봤을까.

동생 성민이 오전 중 나를 깨웠다.
녀석은 밥 타령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다.

동생 놈의 성미에 못 이겨 이불을 찼다.

오늘도 여행객 하나 묵지 않는 여관.

객실 복도 맨 끝자리에 위치한 주방 안에서,
성민이는 이미 다 차려진 식탁에 앉아 내가 첫술을 뜨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동생은 웬만해선 혼자 밥 수저를 들지 않는다.
오래전 “어째서?” 물으니 “혼자 먹으면 밥이 목에 걸려.” 하고 답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다.

아침 겸 점심을 마치고, 어제 밤 염두하고 있던 마당의 조명등을 갈았다.
등불 하나만으론 일과가 너무 여유로운 관계로, 마당의 모든 조명등 커버를
분리해 먼지를 닦아내었다.

걸레 하나가 완연히 먼지뭉텅이로 바뀔 동안 청소를 했건만, 해는 아직 중천이었다.
여관 앞길이나 슬슬 쓸어볼까, 여관 뒤란에서 대빗자루를 꺼내왔을 때였다.

“형, 나 핸드폰 망가졌어.”

성민이는 액정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간 최신형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성민이는 몹시도 서운한 얼굴을 했다. 의심스러웠다.
놈의 핸드폰 월 분납비만 이십 만원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저 녀석이 새로운 핸드폰만 나왔다 하면 일부러 핸드폰을 박살내는 것은 아닐까.

“니 용돈으로 새거 하나 사.”
“그래도 돼?”
“그럼, 니 돈인데.”

어차피 핸드폰으로 게임밖에는 하지 않을 것이니, 작은 게임기를 하나 사는 것이 어떠니?
권해보고 싶었으나, 관두었다. 동생이 좋다는데 감 나라, 배 나라 훈수를 둬서 좋을 건 또 뭐가 있을까.

돈은 있다. 주인 잃은 돈이지만.


여관 앞 언덕길을 따라 내리 걸으며 비질을 했다.

옆 여관 문 앞에 이를 때까지 꼼꼼하게 빗자루를 놀렸지만,
애꿎은 흙먼지만 일뿐 길이 깨끗하기만 해 비질을 할 맛이 안 났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리라 다시 언덕을 오르며 손을 놀리는데,
뒤에서 젊은 목소리가 “저기요.”를 찾았다. 손님일까. 가슴이 불안해왔다.

“죄송한데, 길 좀 물어도 될까요? 제가 이 섬은 처음이라.”

정중한 태도. 꾸벅꾸벅 하고 두 번이나 목 인사를 하는 청년과
그 옆으로 아직 앳돼 보이는 여자. 둘은 서로 팔을 엮은 채 가만 내 답을 기다렸다.

무엇을 물어 올 것인가 궁금함 보다, 두 사람의 나이를 묻고 싶었다.
이 섬을 찾기에 당신들은 과연 합당한가?

“물어보세요. 괜찮아요.” 하자 청년은 기어이 내 심기를 거슬렀다.

“이 섬에 수리산 기암절벽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등정로가 어디 즘부터 시작되죠? 여정 (旅程) 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곳 잘 모르겠네요.”

청년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두 사람은 나란하게 목 인사를 하며 언덕길을 올랐다.
그들의 신발이 설설 끌리는 그 작은 소리가 내 시선을 한참이나 빼앗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오르는 길 옆 하늘에 하얀 기둥이 높게 솟아있었다.

오늘도 가동 중인 듯 흰 기둥에선 시커먼 연기가 마을로 널리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곳은 마을 유일의 장례식장인 화장터로 오늘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은 섬
아랫마을 K아주머니의 숙박객 일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린 연인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섬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각종 국가별 양식으로 멋을 낸, 단 층 때때로 이 층의 높이의 여관이 즐비한 거리.
고요하기만 한 이 곳에선 귀를 기울여 보면 어디에서도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관광객만 없다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저만치 멀리에 보이는 섬 유일의 병원이 눈에 밟혔다.

투박한 흰색 페인트의 건물과 때가 탄 녹색 십자모형 간판은 하늘까지
치솟아 있는 화장터의 흰 기둥과 더불어 이 섬의 속내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리라.

“저기요, 죄송한데요.”

멀리 사라진 줄 알았던 젊은 연인이 다시 돌아왔다.
수리산 등정로를 찾는 건 포기한 것일까.

몰래 그들을 곁눈질 하며,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실례합니다.”

젊은 연인은 나를 쫓아 온 것 마냥 내 등에 바싹 붙어왔다.

“여기 주인 되시나요?”
“예, 죄송하지만, 저희 여관 숙박은 예약으로만 받고 있습니다.”

앳돼 보이는 여자가 봄 잠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쪽지를 꺼냈다.

그녀가 내 앞으로 내민 쪽지에는 청솔 103호실 하는 메모와
동생 성민이의 이름 그리고 성민이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쪽지를 내민 그녀가 말했다.

“예약은 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소리쳐 성민이를 부르자, 녀석은 헐레벌떡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저녁이라도 준비 중이었을까. 앞치마를 두른
성민이는 서둘러가며 젖은 손을 바지 뒤춤에 닦아내며 말했다.

“선박하시는 이 선장님께, 부탁은 드렸는데. 길 찾기가 어렵지는 안았나요?”
“조금 헤맸어요.”

동생과 연인은 알고지낸 사이처럼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녀석은 중간중간 실없이 웃어가며 섬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곤 손바닥을 펼쳐가며 유유히 여관 안으로 손님을 안내했다.

성민 놈이 손님에 접객에 능숙해졌다는 인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러들었다.

“아, 나는 담배 좀 사올게.”

청년이 말하자, 여자는 “그럼 나도 같이 가.” 하곤 청년의 소매를 붙들었다.
청년은 고갤 흔들며 “요 앞이니까, 들어가서 짐 풀어놔.” 했다.

청년이 여관을 나서고, 여자는 여관 마당에 선 채 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민이가 “짐 안에 가져다 놓을게요.”하고 물었지만,
여자는 “괜찮습니다.” 말할 뿐 문밖에만 정신이 쏠려있었다.

“저기 앉아서 기다려도 될까요?”

여자는 여관 마당의 평상을 가리켜 물어왔다.

성민이가 “물론입니다.” 답하자 여자는 계속해 문밖만을
내다보며 천천히 평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03호 객실에 들러 밤을 훑으니 성민이가 정리를 마쳐놓은 듯싶었다.
주방에 들러 한창 요리중인 성민이에게 “손님 것 까지 하는 거야?” 물으니 성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야 알아서 들어오겠지, 생각에 카운터로 걸음을 옮겨 TV 전원을 올렸다.
또각거리는 주방의 칼질 소리와 소리죽인 야구중계소리만으로 한참을 있다가,
문득 ‘손님은?’ 하고 떠올렸을 때는 밖이 어두워져있었다.

“성민아, 아까 손님 객실 안내 해드렸어?”
“아니? 난 형이 한 줄 알았지?”

나도, 성민이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면 아직 밖인가?
먼저 103호실의 문을 열어 확인한바 객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시간에서 시간 반, 담배 사러 가는 길은 걸음으로 3,4 분이면 족했다.

오늘 섬을 뜨는 배는 없다는 것과 기암절벽을 물어오던 청년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급하게 마당을 나서자, 어둠에 먹혀있는 마당이 그저 검게만 보일 뿐, 여자는 보이질 않았다.

현관으로 돌아가 오늘 낮 동안 걸레질 한 조명등에 불을 올리자, 평상에 여자가 보였다.
옆으로 누운 채 작은 미동조차 없는 그녀의 뒷모습에 덜컹하고 가슴이 떨어져 내렸다.

“이봐요. 아가씨.”

다가가 여자를 부르자, 여자는 속삭이듯 물어왔다. 시선은 아직도 여관 문 밖에 있는 듯.

“아저씨, 여기 배 떠나는 시간이 언제에요?”
“오늘 아침에 들어오신 배가 전부에요. 하루에 배는 한 번만 들어옵니다.”

내 대답에 여자는 꿈틀하더니, 몸을 들썩였다.
조용한 흐느낌소리에 나도 성민이도 말없이 여관 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청년이 돌아올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1부 끝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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