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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아나키즘 : 반란의조짐
게시물ID : sisa_3580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간다간지간디
추천 : 11
조회수 : 34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2/07 03:20:10

아.....................................................................

한참 신나게 쓰다가 글 날려먹었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붕괴된 멘탈을 끌어안고 다시 쓰겠음.. 원래 ~요 체로 썼었는데....

 

멘탈이 붕괴되 음슴으로 음슴체로 쓰겠음.

이런 진지한 글을 음슴으로쓰니 색다른 느낌임.

어쨋든 시작하겠음.

 

오늘 무명논객님과 데탕트님의 토론은 정말 재밌었음.

시게유저들의 이목이 집중된 토론이였는데

좌익이념인 사회주의와, 사민주의가 서로를 비판하는 내용이였음.

(솔직히 몇번씩 읽고 검색질을 해야했음 ㅜㅜㅜㅜㅜㅜㅜ)

 

좌익이념이 사회주의랑 사민주의로 크게구분되긴 하지만

오늘 토론에 끼어들지 못한 또다른 좌익이념인 아나키즘에 대해 써보겠음.

 

우선 사전적 정의를 가져오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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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 anarchism ]

모든 정치조직ㆍ권력을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고도 하지만 아나키즘의 비판 대상은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자본이나 종교 등에도 미치며,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지배를 부정하고 의문에 붙이려는 사상 조류이다. 정치적 지배를 상대화하려는 사상은 고대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아나키즘이 명확한 사상계보로서 의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부터이다. 또한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주의와 대항하는 좌익운동의 일파로서 취급된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좌익과 연계되는 것은 아니며 공화주의에 반대하는 우익이나 최근의 anarcho-capitalism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적인 자유주의의 철저한 형태와도 연계하여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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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 anarchism ]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를 말한다.

무정부주의는 개인을 지배하는 국가권력 및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고 절대적 자유가 행하여지는 사회를 실현하려고 하는 운동.

정부나 통치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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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쉽게말해 어떤 형태의 정부도 인정하지 않는 이념임.

 

사전에도 나와있지만, 아나키즘도 크게 우파이론에 기반한 아나키즘과

좌파이론에 기반한 아나키즘이 있음.

우파이론에 기반한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적 자유를 극대화하고

이러한 자본주의적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정부형태도 부정하는 이론임.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을 논할땐

주로 좌파이론에 근거한 아나키즘을 논함.

한동안 아나키즘이 완전히 죽은 이념으로 취급됐지만

최근 다시 계승되고 발전되고 확산되고있는 이념임.

 

좌익아나키즘에 대한 설명은

프랑스의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는 청년집단이 쓴

반란의 조짐이란 책을 통해 하겠음.

(절대 내 지식이 짧아서 그런게 아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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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아나키즘은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에 힘  입어 다시 전성기를 찾은 듯 전 세계를 횡행한다.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만들어 ‘밥맛 없는 자들의 뒤통수를 날려버린’ 줄리언 어산지와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도 아나키스트를 자처한다. 최근 책을 펴낸 돔샤이트가 자기 인생의 평생 동반자로 꼽은 책이 ‘소유란 도둑질이다’라고 단언한, 아나키스트의 아버지 피에르 조제프 푸르동이 쓴 <소유란 무엇인가>이다. 사이버 세상을 주름 잡는 전 세계 유명 해커 중에는 아나키스트가 많다.

아나키스트의 오래된 수법은 신비주의이다. <반란의 조짐> 저자 역시 베일 뒤에 있다. 이 책은 2007년 프랑스 출판사 라파브리크가 ‘보이지 않는 위원회’ 이름으로 아주 소량 펴냈다. 처음에는 별로 주목되지 못했던 이 책은 익명의 번역자들에 의해 인터넷을 통해 여러 언어로 소개돼 나가면서 급속도로 퍼졌다. 2009년 미국에서 정식으로 영문판이 나오자 뉴욕에서는 독자가 자발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미국의 대표적 ‘꼴통’ 논객 가운데 하나인 글렌 벡이 <폭스 뉴스>에 출연해 “내가 읽어본 책 중 가장 사악하다”라고 평해준 덕분에 진보 진영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중략)

< 반란의 조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의정치의 장은 폐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좌든 우든, 뚱뚱하든 홀쭉하든, 거물인 척하든 깨끗한 척하든 정치인은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다. 파리 이주노동자 거주 지역의 어느 노인네도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연설보다 현명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이란 사람들의 면면과 발언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 아닌가. <반란의 조짐>은 지금의 문명과 국가는 반복되는 경제 위기, 확산되는 실업, 갈수록 초대형화로 치닫는 환경 재앙을 막을 능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마침내 우리는 깨달았다.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경제 자체의 속성이 위기라는 걸. 일자리가 모자란 게 아니라 노동이 남아돌아간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위원회가 보기에는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모든 관계가 파괴되었다. 가족 모임 분위기는 식탁 한가운데 시체 한 구가 놓인 것 같고, 순수한 관계의 최후 보루인 연인 사이도 거짓과 소외의 법칙에 지배된 지 오래되었다.

국가 체제를 깨기 위해 코뮌 만들어 저항


대다수 노동자는 하이테크와 기계가 메울 수 없는 여러 구멍이나 때우는 존재로 전락했다.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빼앗기고 분위기 메이커 스펙을 쌓아야 직업을 유지하거나 취업할 수 있게 된 노동자들은 절망해 스스로를 대패질하는 목수나 다름없다. 팔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어 매춘부의 범절을 익혀야 한다. 유럽의 신세대는 회사에 대해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으므로 새삼 실망할 게 없다는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반란의 조짐>에 따르면 취업 준비에 목매는 젊은이는 노동자가 되기도 전에 동원돼 스스로 착취당하는 서글픈 존재이다.

이 세상을 콘크리트와 유리로 뒤덮는 데 앞장섰던 앨 고어나 이명박 대통령 같은 이들이 갑자기 탈성장이나 녹색혁명을 주장하는 것에 보이지 않는 위원회는 혐오감을 드러낸다. 세상을 파괴하는 데 부모를 고용했던 자들이 다시 세상을 재건한답시고 자식을 동원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저 로고 하나를 살짝 바꾸는 최소한의 미봉책으로 현재를 고수하려는 이들에게 속지 말고 1989년 이래 유기농과 에너지 절약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이는 쿠바를 주목하자고 말한다. 세계를 정말 구하려면 그저 듣기 좋은 개량주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 봉쇄 조처나 소련의 해체로 인한 원조의 갑작스러운 중단처럼, 쿠바가 당했던 것과 같은 충격을 세상에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원회는 국가 체제를 깨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코뮌을 만들어 저항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과격하다.

반란의 조짐은 전 세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2001년 알제리 소요, 2005년 파리 방화, 2008년 그리스 폭동, 그리고 최근의 아랍 사태까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이 젊은 세대의 분노 앞에서 비틀댄다.

미국 뉴올리언스에 들이닥친 태풍 카트리나는 세계 최강국조차 ‘약자의 울타리’가 되는 데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이없게도 뉴올리언스에서 지금 난민에게 식량과 취사, 의료 지원을 해주는 것은 개발업자에게 폐허를 팔아넘기려는 공권력이 아니라 아나키스트 조직이다. 일본 동북부 지진과 그에 따른 원전 사고는 세계 역사상 가장 섬세하게 짜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의 국가 조직 역시 ‘맹물’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따지고 보면 3년 전 봄에 터진 우리의 촛불시위도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자각이 불을 댕긴 것 아니었던가. 얼마 전 홍대 청소 용역 노동자 저항 때 우리가 목격한 것이 바로 코뮌들의 자생과 연대였다. 방사성 물질이 아니더라도 이 행성의 대기는 이미 충분히 불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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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쉽게말해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형태의 지배와 권력을 부정하는 이념'임.

 

그에대한 방법론으론 자유로운 시민의 결사체인 '코뮌'의 구성과

코뮌간의 연대, 이를통한 정부의 전복을 내세우고 있음.

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일어 날수도 있지만

(순순히 황금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것임 ㅋ)

유혈사태를 최소화 하고자 함.

그러나 분명 국가전복을 위해 무장과 급진적 형명이 필요함을 주장함.

 

이념자체는 다분히 급진적이고, 폭력적이어 보이기 까지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짜 '반정부주의'라고 할 수 있겠음.

 

그렇지만 과격한 어휘와 이념과는달리

현실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상당히 온건하고, 과격한 어휘와 이념에 걸맞지 않게

이타적인 모습을 보임.

 

이런 특성은 아나키즘을 확산시키기 위한 코스프레라기 보단

아나키즘의 사상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음.

아나키즘은 분명 정부를 부정하지만, 정부의 부정자체가 목적이아님.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믿기때문에 정부와 지배와 통치를 부정함.

따라서, 근본적으로 아나키즘에서 핵심은 '개인'과 '자유'가 됨.

자유로운 개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폭력을 행사할 수 없고, 온건한건 어찌보면 당연한거임.

게다가 정부가 없는 사회라는게 사실 상당히 공상적이기 그지없잖음?

결국 현실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로멘티스트라고 보는게 맞을거임.

 

 

 

그런데 아나키즘얘기를 왜 하냐면

오늘 논쟁에서 혁명 이후의 사회에 대해 아나키즘이

사민주의나 사회주의와 다른 제3의 대안을 주장하고있기 때문임.

이걸 말하기 전에 우선

사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은 상당히 비슷한 이념임.

셋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보며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다고 믿음.

이에대한 비판과 논증과정도 사실 거의 똑같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있어선 사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이

사실상 구분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을거임.

 

그런데 이 세 좌파이론은 방법론과, 지향하는 사회에서 차이를 보임.

우선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아나키즘은 점진적 개혁과 급진적 혁명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임.

사민주의는 단계적으로 개혁을 이뤄 사회주의적 이상으로 갈것을 주장하고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는 혁명을 통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함.

한편, 아나키즘과 사민주의/사회주의는 정부에 대한 부정과 긍정에서 차이를 보임.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정부를 부정하지 않지만, 아나키즘은 정부 자체를 극복대상으로 보고 부정함.

따라서 지향하는 사회도 아나키즘은 느슨한 개인의 공동체인 코뮌을 지향한다는 차이를 보임.

 

오늘 토론에 있어, '그렇다면 혁명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또다른 해결점이 될 수 있음.

개인의 자유의지와 억압없는 평등한 사회상을 제시한 아나키즘은

그 현실성을 막론하고 학문적 가치만큼은 충분한 학문임.

 

 

 

끝으로, 요즘 극좌이념을 갖은 사람들이 오유에 자주 모이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오유는 온건우파나 온건좌파의 정치색이 짙다보니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듬.

그렇지만 이쪽 사람들이 일베나 여타 다른 종자들처럼

분탕질을 하는것도 아니며, 단지 토론을 좀 즐기는 사람들일 뿐이니

이쁘게 봐줬으면 좋겠음.

설령 중도좌우의 이념을 갖고 있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익혀둔다면

보다 넓은 시야로 사회문제를 접할 수 있지 않겠음?

 

 

쓰다보니 좀 길어짐..

이걸 어케 끝내야 할지 모르겠음.

 

저 어제 첫사랑이랑 연락을 하다가

오그라드는 말실수를해서 급 어색해짐...

슬픔 으헝허엏어헝허엏ㅇㅎ어 ㅜㅜㅜㅜㅜㅜㅜ

이게다 오유때문임... 님들 A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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