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미야자키츠토무(宮崎 勤) 사형수와 만난 적이 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에게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이 거의 없지만, 사형판결을 받은 이상 그가 회자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여온다.
21년 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소꿉친구 M쨩과 근처의 숲에서 놀고 있었다.
도로 바로 옆이 경사면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곳의 흙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점토 같은 재질이라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은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그 경사면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중학교와 주택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인적은 드물었다.
동네 주민들 이외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부모님께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도록 교육도 받았다.
M쨩과 놀고 있었던 그 날, 처음 보는 오빠가 길을 잃었다며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얀색 작은 자동차를 타고 온 것 같았다.
지도를 펴고 그 오빠는 말했다.
"OO공원이라고 아니?"
그 오빠가 찾는 공원은 우리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인접한, 이 주택지에서 가장 큰 공원이었다.
어린이의 걸음으로 걸었을때 집에서 20분은 걸린다.
잘 알고 있는 공원이어서 우리는 그 오빠에게 길을 가르쳐주었다.
"역시 잘 모르겠다...너희들이 오빠 차에 타서 같이 가주지 않을래?"
"근데 엄마가 모르는 사람 차 타지 말랬어요."
우리는 거절하고 다시 한번 길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 오빠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빠는 아직 일하러 갈때까지 시간 남았는데 같이 놀지 않을래?"
"몇 시 까지요?"
"4시에 일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놀자."
.
우리집 통금은 5시였다.
당시 우리 동네는 오후 5시마다 동네 소방서의 사이렌이 항상 울리곤 했었기 때문에 그 사이렌 소리가 곧 집에 가는 신호였다.
모르는 오빠랑 노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오빠가 4시까지라는 시간 제한을 두었기 때문인지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알겠어요, 같이 놀아요."
우리는 그 오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잠시 동안 우리는 셋이서 웅크리고 흙장난을 했다.
"이 절벽 안쪽은 어떻게 되어있어?"
그 오빠는 경사면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토재질의 경사면을 올라가면 나무가 무성한, 마치 탐험이라도 온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숲이었다.
"오빠는 좀 구경하고 싶은데 같이 안갈래?"
우리는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른의 걸음은 어린아이가 발을 들인 적 없던 장소까지 파고 들어갔다.
"우리 여기 이상은 가본 적 없으니까 무서운데.."
"지금 몇 시야? 오빠 공원 안가도 되요?"
"괜찮아."
그 오빠는 우리 말을 무시하고 점점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불안했다.
어른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서 놀아야했다.
모르는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과 노는 것은 엄마의 당부를 어기는 일이었다.
어째서 낯선 사람이랑 놀면 안되는지는 확실히 몰랐지만 단지 엄마와의 약속을 어겨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싶지 않았다.
오빠를 계속 따라 걷다보니 조금 오픈 된 공간으로 나왔다.
꽃과 풀을 뜯고 놀 요량으로 우리는 다시 주저앉아 놀기 시작했다.
셋이서 빙 둘러 앉아서 나는 오빠의 이름을 물어봤다.
오빠랑 나랑 내 소꿉친구의 성씨엔 공통점이 있었다.
세명 모두 [미야(宮)]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똑같네요!"
"쌍둥이같아요."
이 것 때문에 나는 그 오빠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까까지 품고 있던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오빠는 딱히 뭔가를 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우리가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창 놀고있는데 이상하게 엉덩이가 근지러워 졌다.
처음에는 나뭇가지같은 것이 닿은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건 없었다.
이상하다..이상하다….
의아해하며 몇번이고 돌아보다가, 그게 오빠의 손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치마 밑에 손이 기어들어와서 브루마(일본 여학생들의 체육복 반바지) 위로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성인 남자가 어째서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인 남자는 성인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기 마련이며, 그게 야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 오빠는 왜 나같은 어린 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는걸까?
나는 오빠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빠가 만지는 것이 싫었다.
만지는 손길이 이상했다.
간질이듯 움찔움찔.
가렵고 근질근질 했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성인 여자는 성인 남자가 엉덩이를 만지면 화를 낸다.
같은 반 남자 아이가 치마를 들추면 여자 아이는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도 똑같이 화를내도 되는 일일까?
이 갈등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때는 아직 페도필리아(Pedophilia) 의 인식이 지금처럼 넓게 인식되어있지 않았던 탓일까.
엄마들은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모르는 어른을 따라가선 안되는 이유는 유괴해서 몸값을 요구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가르쳤었다.
유아에게 성욕을 품는 어른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숨겨져 있었다.
그 존재가 세간에서 크게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이후의 일이다.
나는 겨우 용기를 쥐어짜서 말했다.
"오빠 엉덩이 만졌죠?"
"아닌데."
"만졌잖아요!!"
"뭐 어때. 부르마도 입었잖아."
놀랍게도 내 M쨩도 이 오빠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부르마 입었으니까 괜찮은거야!!"
내 친구는 그당시 나보다 아직 세상에 대한 경계가 약하고 어렸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척 오빠가 많았다.
늘 나이 많은 오빠들과 놀았기 때문에 더더욱 경계심이 없었던 것 일수도 있다.
지금이라면 그런 말에 넘어갈 리가 없지만 당시에는 M쨩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나는 금방 수긍했다.
더 이상 싫다는 의사를 비치는 것도 애써 어른인 척 하는 느낌이 들어서 부끄러웠다.
"지금 몇시에요?"
나는 몇번이고 눈이 마주칠때마다 오빠에게 시간을 물어봤다.
겨우 우리 셋은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처음 마주친 장소로 돌아왔다.
경사면에 도착하자마자 집에가려는데 오빠는 다시 한번 말했다.
"오빠는 아직 놀 수 있는데."
"일한다고 했잖아요."
"응. 이제 일 안가도 된대."
그 당시는 휴대전화가 보급되었던 시기가 아니었다.
오빠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일을 안가도 된다고...?
항상 내가 보아온 아빠를 생각해보면 일이란 어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불신감이 한층 더 싹텄다.
"여기 아니라도 좋으니까 더 넓은 곳 가자."
"왜요?"
"오빠 공있어. 그거 가지고 놀자."
그는 차에서 고무공을 꺼냈다.
야구공 정도의 크기였다.
"OO공원은요?"
나는 그가 처음 가는 길을 물었던 공원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 무지 멀어요."
"차 타고 갈거니까 괜찮아."
"엄마가 모르는 사람 차 타지 말랬어요."
"이제 모르는 사람 아니잖아."
"그래도....엄마가 5시까지 오랬단말이에요."
나는 굳건히 거절했지만 내 소꿉친구는 단번에 OK했다.
"OO공원 가까우니까 그럼 거기가서 놀아요."
나도 친구의 말에 끝내 알았다고 했다.
내 친구는 그 오빠와 노는 것이 매우 즐거운 듯 했다.
M쨩을 보고 있자니 나의 경계심이 전혀 엉뚱한 것인양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부르마때도 친구때문에 마음을 놓았 듯 이번에도 마음을 놓고 친구의 말에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거센 반대때문에 우리는 차에 타지 않았다.
셋이서 OO공원이 아닌 가장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걸어갔다.
공원에는 시계가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동안 공을 가지고 놀자니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방서의 사이렌이었다.
"5시니까 나 가야해요. M쨩도 집에가자."
나는 소꿉친구를 재촉했다.
하지만 그 오빠는 계속해서 놀자고 졸랐다.
"아직 날도 밝으니까 괜찮잖아. 그러지말고 우리 더 넓은 곳에 가서 놀자. OO공원 가지 않을래?"
나는 시시각각 시계바늘이 5시를 지나치는 것을 보며 안절부절했다.
집에 갈래요. 집에 갈래요.
단지 그 말만을 반복했던 것 같다.
"M쨩 집에 가자고."
M쨩이 유괴되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든 같이 집으로 가자고 친구를 설득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둘다 통금시간이 5시였지만 친구는 오빠랑 같이 노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더이상 어머니의 말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난 갈거야!!"
나는 그대로 M쨩을 두고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 한가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두고 온 친구가 걱정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저녁밥을 차리고 있었다.
"어서와. 누구랑 놀았어?"
"M쨩이랑."
모르는 오빠랑 놀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내가 방에서 놀고 있는데 심각한 표정의 어머니가 다가왔다.
"미야자키상이라고 들어본 적 있니? 우리 딸한테 이런 편지가 왔는데..."
어머니의 손에는 꼬깃꼬깃 접혀진 쪽지가 들려있었다.
"어!! 요전날 M쨩이랑 같이 놀았던 사람이야."
나는 혼날까봐 눈치를 살피며 어머니에게 그 날 일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최근에 낯선 자동차가 이 주변을 얼쩡거린다 했더니 그 사람이었구나. 딸한테 이런 편지가 왔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줄 알았잖니.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꼭 엄마한테 말해야한다?"
"잘못했어요. 자동차에도 안탔고 5시까지 집에 왔으니까 괜찮은줄 알았어."
"그건 참 잘했어요. 그건 그렇고 M쨩 무사해서 다행이네."
거기까지 말씀하시고는 어머니는 M쨩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친구도 내가 가고나서 곧장 집으로 갔었던 모양이다.
그녀도 오늘 똑같은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오랜시간 대화를 했다.
그 남자가 집까지 알고 있는 이상 또 만나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그 사람을 보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께 말씀드리도록 단단히 주의를 받았다.
편지는 어머니가 보관하셨다.
어른들에게 말씀드렸으니 더이상 어린 우리들이 걱정할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대로 나는 그 일을 잊었다.
2년 후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TV에서는 연일 유괴살인 사건에대한 뉴스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날 나는 목욕을 하고 TV를 보고있었다.
미야자키 츠토무라는 살인범에 대한 뉴스가 방송중이었다.
화면 속의 그 창백한 얼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일찌기 경험한 일 없는 감각이 온몸을 통과했다.
냉수를 뒤집어 쓴 듯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혼란속에서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이었다.
미야자키 츠토무라는 사람의 얼굴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몇번이고 눈을 씻고 TV화면을 들여다보아도 그 사람이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던 것일까.
나는 충격을 갈무리하려 애쓰며 입을 다물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앉아 2년 전 그 오빠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를 써보았지만 정확히 그려낼 수 없었다.
하얗고 온화할 것 같던 인상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일까.
하지만 나는 저금 전에 받은 그 충격과 전율로 확신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미야자키 츠토무다.
그 날 이후로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있다.
말한들 믿어줄지 걱정이되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 2학년때 만난 그 오빠 기억나?"
"그때 그 편지 어딘가 아직 있을거야.만약 그게 미야자키 츠토무였으면 우리딸 죽을뻔했던건지도 모르겠네...."
친구에게도 확인차 말을 꺼내보았지만 그녀는 믿어주지 않았다.
"그 오빠 야마구치라고 했던거같은데?"
그 후로 어느 누구에게도 이 일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다.
단지 나의 착각이라면 그래도 상관이 없다.
어렸던 나에게 일어난 그 기묘한 사건과 그 흉악범이 아무런 접점이 없다면 오히려 여한이 없겠다.
평소에는 잊은채 생활하지만 가끔가끔 초등학교 4학년이던 어린 나를 덥치던 심장 깊은 곳의 공포가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때 그 오빠가 미야자키 츠토무가 아니라면 내가 받았던 그 충격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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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제블로그 데쓰네(http://vivian912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