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및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낮아졌는데도 상당수의 수입 제품은 가격이 거의 내려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기업이 수출 가격을 높이거나 국내 수입업체들이 관세인하분을 유통마진으로 챙기면서 정작 국내 소비자들은 FTA 체결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킴스클럽 강남점을 방문해 FTA 발효 이후 미국산 9개, 유럽산 9개 등 18개 제품의 가격동향을 점검한 결과 11개 품목의 가격이 전혀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 조사에는 김동수위원장도 동행했다.
실제로 한-EU FTA 발효 후 8%이던 관세가 철폐된 브라운 전동칫솔, 테팔 전기다리미, 휘슬러 프라이팬 등 유럽산 6개 품목은 가격변동이 없었고, 역시 유럽산인 필립스 면도기는 제품에 따라 3∼5% 가격이 내려갔지만 인하폭이 관세 인하폭보다 적었다.
주류나 주스도 마찬가지였다. 관세가 5%포인트 내려간 유럽산 발렌타인 17년산 위스키는 물론이고 미국산 밀러 캔맥주와 병맥주는 관세가 4.3%포인트 내려갔지만 가격변동이 없었다. 45∼54%였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 미국산 웰치스 포도주스와 오렌지주스 역시 가격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웰치스 포도주스와 오렌지주스를 수입하는 농심은 이날 공정위 발표 직후 출고가격을 8% ‘기습’ 인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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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미국산 오렌지는 관세가 20%포인트 내려갔지만 가격은 25% 떨어지는 등 식품류 일부 품목은 관세 인하폭보다 가격이 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농산물이나 식료품과 달리 공산품의 경우 통상 수입에서 판매까지 2∼3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 FTA 발효 이전에 수입돼 관세 인하 혜택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미 FTA는 지난달 15일, 한-EU FTA는 지난해 7월 1일 발효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FTA 체결로 관세가 내려갔는데도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현지 기업이 수출단가를 올리거나 수입업체들이 유통마진을 더 붙이고 있을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품목 상당수가 국산 제품보다 가격이 높은데도 잘 팔리는 공산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품목 가운데 유럽산 자동차나 명품 가방, 화장품 등은 한-EU FTA 체결 이후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관세 인하에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주요 품목은 유통단계별 가격을 분석해 공개하기로 하는 등 관련 업체들 압박에 나섰다. 우선 냉장고와 세탁기, 자동차, 샴푸 등 미국산 제품 13개는 다음 주부터 매주 가격 동향을 점검하기로 했다. 또 대폭적인 관세 인하에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다리미와 전기면도기, 전동칫솔, 프라이팬, 위스키 등 유럽산 품목 5개는 유통단계별로 가격을 분석해 공개할 계획이다.
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20406/453288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