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그 사람을
또는 잊어야 할 그 사람을 어떻게 잊고있어?
방금 난 헤어진 그 사람을 만났어
다시 만나려고도 아니고
만나서 싸워보자도 아니고
어짜피 잊어갈꺼 어짜피 남되갈꺼
억지로 서로 감정 억누르면서 안보는 것 보단
한번쯤은 보는것도 낫겠다 생각했어
난 우리가 이제는 더는 아니라고 느낀게
사귄지 얼마 안되서 서로 싸웠을땐 하루만 서로 연락안해도 안달나서
보통은 하루, 길어야 이틀안에 죄다 화해를 했었어
이틀도 우리한텐 참 긴 시간이였거든
그런데 이제의 우리는
일주일동안 연락을 안해도 덤덤한 우리가 되어버렸어
그걸 보고 알게됐지,
옛날의 우리는 이제 더는 없구나
우리는 .. 더 아니구나
그래서 오빠한테 그랬어
"하루만 연락 안되도 서로 힘들어 했던 우리가
이제는 일주일을 연락을 안해도 견딜수가 있어
그러면 앞으로는 2주일을 연락안해도 견딜수가 있고
3주일을, 그리고 3주일이 언젠간 3년을 연락을 안해도 견딜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꺼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더 오빠를 만나면 안되겠다 느꼈어 우리는 더는 아니라는걸"
라고
내가 이말을 오빠에게 했더니
오빠 얼굴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그러지더라
웃는 듯 우는 듯
우리가 원래 장거리 연애였거든,
어쩌다가 우리가 장거리 연애 한 얘기가 나왔는데
오빠는 그러더라
"장거리연애가 아니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라고
그런데 난 생각이 조금 달랐어
장거리 연애가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난 항상 우리의 만남이 '소풍' 같았어
자주 보지 못하니까
어린아이들이 소풍가기전날 밤 같은 마음을
가서 무엇을 할지, 뭘 챙겨갈지, 전날의 떨리는 그 설렘을
소풍을 다녀와서도 가시지 않던 그 설렘을
장거리연애가 우리의 사랑을 무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풍'같다고 생각했었어 우리의 간간한 그 만남이
정말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건가봐
우리가 간 술집 벽에
낙서가 많았어
룸으로 된 술집이라 아무래도 안보니까 오는 손님들이 낙서를 많이 하는 모양이더라
거기엔
'영희♡철수 200일'
이런 것 도 있고
'기영♡순이 오늘 취직 파티'
뭐 이런 글도 있더라
우리도 사귀고 있었다면
600일째 되는 날
이라고도 썼을텐데 말이야
우리가 그 벽에 적어넣을 낙서는 .. 아무것도 없었어
행복한 한켠의 벽에
우리의 공간은 아무곳에도 없더라
오빠가 계산하고 오겠다며 먼저 일어서서 나갔어
혼자 남아있던 룸 안에서 멍하니 행복함으로 가득찬 벽면을 바라보는데
순간
네임펜으로 가득한 벽면에
가방에 하나있던 볼펜이 떠올랐어 그리고 집어들었어
네임펜도 아니고
볼펜으로는 써질 것 같지 않던 벽면이라서
써질까 의문이 들었었는데
의외로 선명하게 적히더라
뭐라고 적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적어내려갔어
[오빠 미안해, 더 좋은사람 만나길 바래. 오빠 정말 미안해 안녕 2011.1.9 ]
오빠는 계산하고 바로 나와서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서
그 글을 못봤어
나와서 집에가려고 택시를 같이 탔어
그런데 오빠가 말없이 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밖만 보더라
이상했지
순간 아 오빠가 울고있구나 생각이 들더라
오빠가 자는 척 하고있었는데
난 알고 있었거든
사실은 오빠가 소리 안내고 울고 있었던거
우는거 알고있었는데
차마 오빠 울지마 라고 말할수가 없었어 그래서 계속
"자냐? 야 잠 좀 깨 그만 자"
그럼 오빠는 잠긴 목소리로
"안자 걱정마"
그렇게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항상 뽀뽀하고 헤어지던 그곳에서
무미건조하게 "잘가" "응" 하고 헤어졌어
오빠에게 문자가 왔어
[오늘 보지말걸 그랬다, 널 어떻게 잊어 나 너 못잊어, 다신 연락안할께 미안하다]
사랑이라는게 참 무미건조한거 같아
그렇게 죽을듯 불타올랐다가도
헤어지면 그 마음이 다 삭아버려서 차갑게 변해버리고
하나의 동화처럼 '추억'이 되버리잖아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 타인의 일로 여겨질만큼
추억보다는 동화로 남게 되는거 같아
'아 그땐 그랬지'
를 넘어서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로
끔찍하지 않아?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이
남이 되고
그 사람이 또 나를 대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게
사그러드는 마음을 지켜보고
그 사그러드는 마음을 다시 돌이켜보려 노력하고
그런데 우습게도 돌이켜보려 노력하는 그 마음은 절대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안녕 하고 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따금 종종 생각이 나고
부질없다 여겨지는데
그 부질없는 사랑에 다시 한번 설레게 되고
설레는 그 마음이 익숙해지면 다시 한번 이별은 또 찾아오고
그 이별에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고
그 사람과의 동화같은 사랑
그 사람과의 동화같은 이별
그 사람 자체도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려서
나중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보다 못한 '제 3자' 가 되어버리지
시간이라는게 참 무서운거야
그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할땐 이 시간이라는 놈이 왜이렇게 안가나
날 왜이렇게 괴롭히나 싶은데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이 사람에 대해 느끼는 먹먹한 이 감정도
언젠가는 다 사그러들텐데
그것만큼 끔찍한게 어디있어
이별의 슬픔도 연장할 수 있다면 연장했으면 좋겠어,
그것마저 동화가 되니까
그것마저 그 사람과의 '무엇'으로 남을테니까
그 사람이 잘지내길 바라고있어?
아니면 그 사람이 좀 더 아프길 바라고 있어?
아니면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고있어?
나는 이 아픔이
나는 이 먹먹함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너무 슬프잖아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금방 동화로 변해버리는 건
아주아주 많이 아플만큼 아파서
나중에 기억했을때
다시 한번 이 동화를 꺼내어 읽었을때
'아 이때 참 아팠구나
아 그만큼 사랑했구나'
를 느꼈으면 좋겠어.
언니들의 동화는 어떤 모습이야?
행복한 벽 한켠에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긴다면
뭐라고 남기고 싶어?
언니의 인생에, 청춘에, 남길 동화 속 한줄을
뭐라고 남길지 오늘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딱 한줄,
뭐라고 남길래? 언니들의 그 사람과의 오늘을.
행복이든, 슬픔이든
기억하자 오늘을
우리의 동화같았던 사랑을
우리의 동화같을 사랑을
2011.1.9 의 하루도 그 사람 덕택에 동화로 변해버린 오늘을
우리의 소풍을
난 사실 이별보다 끔찍하고 먹먹하다고 느껴지는게
언젠간 오빠와 나와의 일이 동화로 다 적혀서 남아지겠지
그 동화책을 한동안은 자주 생각나는 그 사람 때문에 들춰보겠지만
1년이 지나면 100번 들춰보던 그 사람과의 동화책을 1번 들춰보게 되고
10년이 지나면 이 동화책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그 사랑에 먼지가 켜켜히 쌓여서 어딘가에 푹 처박히게 될꺼야
이별은 안슬퍼 오히려 오빠에게 미안해, 오빠보단 내가 덜 힘든 것 같아서
근데
우리의 동화가 언젠간 먼지에 켜켜히 쌓여서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아 이건 무슨 동화였더라"
하게 될 날이 온다는게
그게 난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