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안녕하십니까?” ―관악에 부치는 안부의 편지
민중 해방의 불꽃/길들여지지 않는 시대의 눈동자/멈출 수 없는 변혁의 심장
이상 나열한 어구들은 모두 서울대나 캠퍼스 내 자치단위들과 연관된 것들입니다. 오늘날, 저 무거운 말들 앞에서 저는 고민해봅니다. 지금의 관악은, 지금의 관악 구성원들은 과연 저 말들의 무게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학생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져가고 있습니다. 내 삶의 무게 앞에 옆지기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저 시간낭비가 되었습니다. 자수성가의 신화는 이제 대기업 오너의 자서전에서나 볼 수 있는 화석이 되었는데 “네 삶의 주인은 너”라는 자기경영의 주문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명령 속에서, 여러분은 안녕하신가요?
삶이 고단해질수록 고민의 넓이는 협소해지고, 내 고민이 협소해질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은 더욱더 고단해집니다. 이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자각을 할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을까요?
최근의 일들을 되돌아봅니다. 26년간 곤충을 돌보던 서울대공원의 한 계약직 노동자는 어느 날 호랑이 사육사로 배치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시설노후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묵살되었고, 결국 사육장 밖으로 나온 호랑이에 물려 죽었습니다. 무노조 경영으로 빛난다는 삼성의 서비스 노동자는 단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표적탄압을 당하다 유서를 쓰고 자결했습니다. 자본의 ‘먹튀’와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를 이유로 46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밀양에 살았던 70대 어르신은 송전탑을 보고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며 며칠 전 음독자살하셨습니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도민영화 저지를 목표로 파업에 돌입했고, 7천명이 넘게 직위 해제되었습니다(12월 12일 기준). 이 수는 오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열하기조차 벅찬 현실들 앞에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고백컨대, 그동안 저는 저의 삶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에 주변에 산재한 비극들을 쉽게 외면해왔습니다. 어른들이 욕하는 그 “정치에 무관심한 20대”가 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기준으로 개념이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프레임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20대가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박탈해버린 대한민국의 많은 제도들에 시야를 돌려보려 합니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지상 최대의 가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개인화되기를, 그리고 남의 비극에 무감각해지기를 요구받아왔습니다.
오늘 고려대 교정으로부터의 안부 인사를 관악에 전합니다. 그리고 매서운 날씨보다 더 매서운 현실에 맞서고자 나선 이들의 손을 잡아볼까 합니다. 나를 둘러싼 현실이 나날이 척박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관악의 화답을 기대하며, 맞잡은 손들이 파도가 될 날을 기대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선언합니다. 철도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제안합니다, 그들의 정당한 싸움이 외로워지도록 그냥 바라보지만은 말자고.
07 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