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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버려둬 1
게시물ID : panic_461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8
조회수 : 85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4/22 23:06:26

 

 

 어느 날부터 동생은 방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동생의 은둔생활은 가랑비에 옷 젖듯 진행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그 날짜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고 막연하게 추측할 따름이었다.

 

 대화 한번 나누는 일도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남매지간이었던지라,

 처음에는 안 좋은 일이라도 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문제가 심각하단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학교도 종강해버려서

 방에서 끌어낼 구실조차 없어진 후였다.

 덕분에 남매가 단둘이 살고 있는 집은 절간같이 조용했다.

없는 활기라도 불어넣어보려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서툰 솜씨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해서 한 상 차려 놓아도 동생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똑똑, 노크 끝에

 

 “밥 먹어”

 

라고 말하는 게 우리 남매의 아침인사였다.

 

동생이 죽지 않고 살아있단 흔적은 가끔 엉망으로 흐트러진 냉장고라든가, 씻고 나서 욕실에 물기와 머리카락을 남겨놓는다든가 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살갑게 지내던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섭섭하지는 않았지만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었다. 답답함이 치고 올라올 때였다. 마치 벽을 보고 외치는 기분이었으니까.

 

오늘도 굳게 닫혀있는 방문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문득

 

‘내가 출근한 사이 하루 종일 뭘 하고 지낼까?’

 

궁금해졌다.

 

내가 나가길 기다렸다가 꾸미고 외출해서 돌아다니다가 내 귀가 시간에 맞춰 돌아와 방문을 걸어잠그는 건 아닌지 따위의 한심한 상상을 했다.

원인이 나 때문이라면 가능한 말이겠지만, 동생한테 죄인이 될 정도로 끔찍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냉장고를 헤집어 놓는 일은 종종 있어도, 내가 차려놓은 식탁 위의 멀쩡한 음식에는 손끝하나 대질 않았다.

 

정말 나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저러는 건가?

 

버스를 기다리며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저런 짓을 할 만한 이유도, 사건도 전혀 없었다.

말했듯이 우리는 아주 서먹한 남매였고 한 집에 살면서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부모님이라도 가까이 계셨더라면 폐인처럼 사는 딸의 꼴을 보고 한마디 하셨겠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외에 계신 어머니도 그게 답답하셨는지 매일아침 전화를 걸어 동생의 안부를 물으셨지만 희망을 줄만한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나아지겠죠.”

 

씁쓸한 대답을 반복해서 들려드릴 수밖에는.

 

 

 

 

 

출근을 해도 동생이 신경 쓰여서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걱정 되는 마음에 가끔 집으로 전화를 해보지만 무미건조한 신호음만 들릴 뿐이지 받는 일은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는 한이 있어도 평소보다 일찍 돌아가서 아침에 떠올린 가설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정말 내가 없는 시간에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거라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나 때문이라는 거니까.

 

서두른 덕분에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시계를 두 번 정도 더 확인했다.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이 운명의 바퀴가 움직이는 것마냥 중대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아무도 타지 않은 네모난 상자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로켓처럼 위로 솟구쳐 올라가 순식간에 4층, 5층, 6층....그리고 12층에 도착했다.

 

12.

 

위쪽의 빨간 숫자를 확인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멈칫.

 

내리려는 순간 긴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상구 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여자는 쏜갈같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검은색 진을 입고 회색 티셔츠를 입은 뒷모습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긴가민가 싶기도 했지만 마음속에서 내 동생이란 확신이 들었다.

 

몇 달간 얼굴을 못 봤다고 해서 잊어버린다든가 할 수는 없으니까.

내 가족이고, 내 동생이니까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없던 가족애가 생겨서 무럭무럭 솟구쳐 오르는 듯했다.

 

그때, 아차 하는 사이에 코앞에서 현관문이 여닫혔다.

 

1205호.

 

우리집이었다.

그 여잔 역시 동생이었구나.

동생이었다는 게 확인되자 우울해졌다. 내 가설이 맞다는 게 입증된 셈이었으니.

도대체 뭐 때문에 나한테 토라진 걸까. 아니, 가족을 몇 달 동안 투명인간 취급하며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걸 단순히 ‘토라진’ 것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는 황급히 동생을 뒤따라 들어갔다.

문쪽에서 나는 기척에 습관처럼 제 방으로 곧장 걸어가던 동생이 멈칫, 멈춰서는 게 보였다.

 

“세현아. 오빠랑 얘기 좀 하자.”

“..............내버려둬.”

 

그 말만을 남긴 채 동생은 발작하듯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쾅!!!!!

 

문 닫는 소리가 집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건드리지 말라고 쐐기를 박는 듯했다.

 

쾅쾅.

 

“세현아. 문 열어봐.”

 

노크를 한 적은 많아도 이렇게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 건 처음이었다.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며 문고리에 매달렸다.

달칵달칵....

잠긴 문고리는 돌아가지 못하고 시끄러운 소음만 만들었다.

 

“세현아!!!! 문 열어!!!”

 

“내버려둬!!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

 

동생의 외침은 처절할 정도였다. 저렇게 악에 받힌 듯 소리를 지르다니. 한창 사춘기일때도 저런 식으로 나온 일은 없었다.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빠져버렸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걱정시킬 수는 없었다.

 

“으흐흐흑..........”

 

나무문 너머로 거친 숨소리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문을 작정한다면야 쉽게 부서뜨릴 수 있을 테지만 동생을 더 자극하는 일밖엔 되지 않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는다. 시시한 거라도 좋으련만.

동생의 울음소리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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