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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지지자들의 대부분 레퍼토리가 2공화국 폄훼입니다
게시물ID : sisa_358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잭규
추천 : 10
조회수 : 21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09 14:09:37

주로 2공화국 폄훼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1.쿠데타 전화를 듣고도 무시한 총리


2.쿠데타 터지자 도망간 총리


3.시위가 끊이질 않고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대부분 주장하시는분들이 저런 개소리를 찍찍 뱉거든요


아시는분들이 없으리라 하고 간단히 써봅니다.


당시 2공화국은 419 여파로 국내정세가 상당히 불안했고 시위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불안했고 경제개발계획은 사회주의적 모델이라는 폄훼로 논란이 많았죠


당시 2공화국의 총리는 민주적인 대화로 이들을 설득하고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 총리였습니다.


당시 논란이였던 경제개발계획은 여야 할거 없이 엄청난 논란으로 연일 싸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시 대화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냈고 후반부에 접어들자 시위와 정치적 불안감은 해소되었죠


쿠데타 세력이 419 기념일에 시위가 일어날걸 예상했지만 시위가 없었다고 예측한것부터가 당시


박정희가 국제 정세를 오판했던 점이였습니다.


또한 쿠데타 전화를 받고도 무시했다는 간혹 얘기를 듣는데


당시 총리는 마지막 쿠데타


보고를 총리실에 듣게 되자 사건전말을 당시 윤군참모총장에게 문의합니다


그때 당시 장도연 육군참모총장은 근거없는 낭설이라 하였고 당시 사건 전말을 


링크가 있으니 여기서 설명하는것보다 직접 보시는것도 좋을듯 하네요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B%8F%84%EC%98%81




당시 수도원으로 도망갔다는 폄훼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미국 대사관으로 처음 피신하였습니다.


당시 새벽의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전화를 듣고 반도호텔에서 피신한 총리는


진압을 위해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지만 문이 닫혀져 수녀원으로 피신하였고


수차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신상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묵살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윤보선이 메그루더 장군의 진압명령서를 무시하고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사실상


쿠데타 세력을 이용했다고 보는게 맞는 추측이라 봅니다.




애초에 정당성 주장하시는 박정희 지지자들이 박정희를 우상숭배급으로 믿으니 이러한 오해가 있다고 봅니다.


제대로된 역사적 평가도 이뤄지지 않지 않고서야 대부분의 지지자들이나 지지하지 않으시는분들이나


2공화국 폄훼에는 동참하시는 경향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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