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곤킨 족에서 전해내려 오는 웬디고 설화
폭풍이 오래도록 계속되어 알곤킨 족의 한 가족이 모두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마침내 눈보라가 잠시 잦아들자 용맹한 전사였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폭풍이 벌써 지평선 저 너머에 나타났지만 빨리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가족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는 오래도록 사용해왔던 칼과 창을 움켜쥐고, 새로 내린 눈 위로 찍힌 동물의 발자국이나 다른 흔적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숲은 묘한 정적만이 가득했다. 아마 동물들은 모두 땅속 깊은 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너무나 절박했던 그는 사냥을 차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름끼치는 고요함 속, 어디선가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기괴한 쉿쉿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누가 내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사는 발길을 멈췄다. 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앞에 피에 젖은 발자국이 나타났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웬디고가 어디선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전사는 칼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그가 어렸을 무렵 아버지가 웬디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나무만큼이나 거대한 그 괴물은 입술이 없고 이빨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고 했다. 숨소리는 기묘하게 쉿쉿거리며, 내딛는 발자국에는 피가 고여 있고,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먹어치워 버리는데 오히려 잡아먹히는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다. 때로 웬디고는 빙의할 사람을 고른 다음 그 불운한 자를 웬디고로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살을 뜯어먹게 만든다. 그는 웬디고를 처치할 기회는 단 한번뿐인 것을 잘 알았다.
그걸 놓치면 죽게 되거나 혹은...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이다. 서서히, 그는 쉿쉿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피로 물든 발자국으로부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느 쪽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그는 창도 꺼내어 반대편 손에 쥐었다. 그때 왼쪽에 있던 눈 더미가 불룩 솟아오르더니 나무만큼이나 거대한 괴물이 전사를 향해 뛰어 올랐다. 그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린 뒤, 눈 위를 굴러서 지평선 저 멀리에 있는 폭풍의 회색빛에 몸을 숨기려고 했다.
웬디고는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휘둘러대었고 전사는 놈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은 괴물의 가슴팍에 꽂혔지만 웬디고는 마치 장난감처럼 창을 뽑아내 버렸다. 놈이 두껍게 쌓인 눈을 파 뒤집으며 흔적을 찾기 시작하자 그는 작은 나무 뒤편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이윽고 웬디고는 전사가 숨어있는 장소 근처까지 다가왔고, 놈의 날카로운 눈이 나무 뒤에 숨어있는 그의 모습을 포착했다. 괴물이 팔을 뻗어 잡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마치 웬디고와 끌어안으려는 듯 뛰쳐나가 놈의 새까만 눈에 칼을 박아 넣었다.
칼날이 뇌까지 파고들자 웬디고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가슴팍에 매달린 전사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괴물에 몸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놈의 눈에 계속해서 칼을 찔러 넣었다. 웬디고는 피를 뿜으며 땅으로 쓰러졌는데 그는 하마터면 아래에 깔릴 뻔 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린 전사는 축 늘어진 웬디고를 바라보았다. 괴물의 몸 색깔은 주변의 하얀 배경과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서, 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분간할 수 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웬디고의 몸이 안개처럼 흐려지더니 이윽고 피가 고인 웅덩이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전사의 몸은 떨려왔고, 심장은 공포와 피로로 인해 고동쳤다. 아무 식량도 구하지 못해 힘이 빠졌지만, 몸을 숨길 곳을 빨리 찾지 않으면 곧 들이 닥칠 폭풍에 죽게 될 것이었다.
숲 가장자리를 지나던 그는 붉은 여우와 마주쳤다. 살이 통통하게 찌고 늙은 여우였는데, 마치 웬디고를 처치한 보상으로 누군가 그에게 데려온 듯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전사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여우를 죽인다음 굶주리고 있던 가족에게 돌아갔다. 여우 고기는 여러 날 동안 먹을 만큼 풍족했으며 그동안 마지막 폭풍도 지나갔기에 그는 다시 안전하게 사냥을 갈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