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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이유모를 죄책감
게시물ID : readers_46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4분
추천 : 1
조회수 : 2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2:52:25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는 울면서 그녀 앞에 걸어가 무릎을 꿇고 잘못을 고백했다. 어느새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안개에 가린 듯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의 고백을 듣는다.

그녀는 그를 용서했을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이런 내용의 꿈을 꿨어요.”


 몇 번이나 만난 젊은의사에게 꿈의 내용을 말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표정에 난 이유모를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몇 달 째,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증상으로 인하여 진료를 받고 있다. 사소한 것을 넘어서 아무 이유 없는 행위에도 미안한 감정이 느껴지는 이상한 상태었다.


 “너무 죄책감을 느끼진 마세요. 아직까지 원인을 못 찾은 게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요.”

 의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날 격려했다.


 “꿈에 나온 여자는 아는 사람인가요?”


 “글쎄요……. 제 기억에 그런 여자는 없었는데.”


 내 답에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음, 그럼 다음에 오실 때 최면 치료를 한 번 해보기로 하죠. 사람은 기억을 스스로 지우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후……. 마음이 잡히지 않네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아요. 오늘은 이만 진료를 끝내죠. 다음 예약 환자께선 꽤나 힘든 분이라 빨리 진료를 시작해야 해서요. 어휴 바쁘다니까요.”

 

 의사는 웃으면서 진료를 마쳤다. 뒤돌아 나가는 진료실에 묵직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병원 문을 열고 나가던 중, 다음 예약 환자라던 여자가 스쳐지나갔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문뜩 어제 꿈의 그 여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어느새 상담실로 들어갔었다.

 

 일주일 후에 찾아간 병원에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본 듯이, 익숙한 것 같지만 어디에서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홀린 것처럼 그녀 옆의 의자로 갔지만 그녀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불안하고 무서운 일인 듯 몸을 떨더니, 간호사가 부르자 상담실로 도망가는 것처럼 달려갔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갑자기죄책감에 심장이 저려왔다.


 혹시 내가 꾼 꿈이 과거와 연관이 있다면,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지운 과거에 내가 그녀에게 어떤 심한 잘못을 했고,

  그것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주 우연하게 그녀를 이 병원에서 다시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생각이 든다. 죄책감이 목을 조른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내 정신병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생각을 돌렸다. 어느새 그녀는 상담을 끝내고 도망치듯이 병원을 나갔다. 뭔가 물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걸지 못했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던 중, 상담실로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부름을 무시하고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병원이 위치한 상가거리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걸어가는 날 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 없이 도로를 걸었다.

거리에서 동 떨어진 것 같은 횡단보도에 그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꿈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죄책감에 발목이 잡힌 상태로 그녀에게 걸어갔다. 메마른 목소리로 내 기억 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물었다. 차가운 공기에 입이 얼어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저희 만난 적 있나요?”


이런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누구세요……?”


어색한 공기가 흐른 후, 그녀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병원에서 본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놀란 표정이었다.

“아 방금 병원에서 보신 분이구나. 혹시 작업 거시는 거에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네?”

예상 밖의 상황에 어이가 없어진 나까지 웃음이 나왔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일이 있은 뒤 몇 주후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에게 그 일에 대해서 말했다.

“사실 현대 사회에는 스트레스로 이상 증상이 생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책감처럼 말이에요. 아무 대단한 이유도 없었지만 그냥 그런 겁니다.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 그런 꿈을 꾸시고, 처지가 비슷한 다른 환자분을 보셔서 그렇게 상상하게 되신 거에요.”


“그럼 그 여성분은……?”


“기다릴 때 불안 증세가 심한 증상 때문에 치료 받으시던 분이에요. 평소에는 성격이 밝으신데 뭘 기다리실 때는 심각하시죠. 원래 이런 거 말하면 안 되는데 그분이 먼저 환자분에 대해서 물으시기에.”

의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죄책감이 부른 괜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하아, 제가 잠시 미쳤었나보네요.”


“뭘요. 누구나 그런 생각 한 번은 합니다. 하하, 어쨌든 두 분 잘되시길 빌고, 이제 진료 끝내도록 할게요.”


 의사가 놀리는 말투로 진료를 끝냈다. 방문을 닫고 나가면서 이유모를 미안한 감정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이후로 그녀와 연락을 계속하고 있고, 친구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 망상처럼 아주 우연한 만남은 아니었고, 내 망상이 인위적으로 만든 만남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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