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7시간 후 경기 평택시에서 꼭 같은 상황의 20대 여성 납치성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경찰은 18시간이 넘도록 수색하고도 피해 여성의 휴대폰이 떨어진 지점에서 불과 10m 거리에 있던 범인 검거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성은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했지만, 경찰은 수원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 있거나 문을 두드려서 응답이 없는 집은 무시하고 지나치는 등 형식적 탐문수색을 되풀이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평택경찰서는 지난 2일 오전 5시53분 B(21)씨가 평택시 포승읍 도곡리 한 원룸 앞에서 괴한에게 납치됐다는 다급한 신고전화를 받았다. 신고한 B씨의 애인은 "새벽 5시10분쯤 B씨와 헤어진 후 전화통화를 하다 비명소리가 들려 5분 만에 돌아와 보니 휴대폰만 떨어져 있었다"며 "B씨의 어머니와 함께 인근을 찾아 헤매다 40분 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포승파출소 직원 10여명과 평택경찰서 형사과 직원 36명을 현장에 보냈고 이후 경기경찰청 직원 15명이 합류하는 등 모두 70여명이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B씨의 애인이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인근에 편의점 3곳이 있다는 점에서 범인의 집을 편의점이 없는 가까운 골목의 원룸 5개 단지 94세대로 특정해 놓고도 허탕을 쳤다. 범인의 집은 탐문에 응답하지 않은 12가구 중에 포함돼 있었지만, 경찰은 두 차례 문을 두드려 보는 것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경찰이 헤매고 있는 동안, 납치됐던 B씨는 다음날 0시13분쯤 범인에 의해 눈이 가려진 상태로 풀려난 뒤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경찰에 "(범행 장소가) 4층인 것 같고 아래층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이를 토대로 개가 있는 원룸의 범행 장소를 확인했다. 1시간여 후 인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범인 최모(31)씨는 검거됐다.
최씨가 B씨를 흉기로 위협해 납치한 곳은 B씨의 휴대폰이 떨어진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m 떨어져 있는, 육안으로도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최씨는 경찰에서 "집에서 B씨가 애인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범행에 나섰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차례 최씨 집을 탐문했지만 밤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낮에는 인기척이 없었다"며 "주인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갈 경우 법적 문제가 야기되고 자칫 가해자를 자극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게 수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모(43)씨는 "그렇게 대충 수색을 하려면 경찰 수천명이 현장에 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비난했다. 경찰은 지난 4일 최씨를 성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한편 수원 A(28)씨 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거짓 해명이 또 드러났다. 경찰은 당초 사건 현장 CCTV를 모두 분석했다고 밝혔지만 범인 우웬춘(42)씨가 전봇대 뒤에 숨어있다가 A씨를 덮치는 장면이 9일 추가로 확인됐다.
경찰은 "납치 장소에서 50m 떨어진 지점의 CCTV를 분석한 결과 우씨가 지난 1일 오후 10시32분쯤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A씨를 덮쳐 쓰러뜨린 뒤 끌고 가는 장면이 담긴 13초 분량의 화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앞서 "사건 현장 인근에 설치된 7대의 CCTV를 모두 분석했으나 우씨나 A씨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직원 실수도 추가로 확인됐다. 현장에 나간 도경 강력7팀장은 1일 밤 12시쯤 녹취파일 제공을 요청했으나 112센터 근무자가 파일을 40분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초기대응에 혼선이 빚어졌고 파일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현장에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