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난 지하실로 내려갔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여자애는 어제 그 자세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잠들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얼굴을 등받이에 파묻고 작은 어깨만 새근새근 들썩였다.
난 다시 위로 올라가서 샤워를 한 뒤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메뉴는 평소에 해먹던 오므라이스와 비엔나소시지.
그리고 특별히 여자애를 위해서 디저트 푸딩도 준비했다.
부디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며 나는 아침식사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자애는 아무래도 잠에서 깰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내가 그녀를 아침에 처음 보고나서 1시간 반이나 지난 뒤였다.
이대로 있다간 아침식사가 다 식어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애는 나중에 다시 만들어주기로 하고 만들어놓았던 아침식사는 내가 먹어치웠다.
물론 푸딩은 남겨두었다.
1시간 뒤 집 청소를 하던 중 리모컨 벨이 울렸다.
여자애가 깬듯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기에 하마터면 벨 소리를 못 들을 뻔 했다.
나는 급히 청소기를 끄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자애는 부스스한 머리를 쏟아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일어났어?”
“...”
여자애는 처음엔 ‘여기가 어디지?’ 라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금세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쇠창살 너머의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분명 날 다시 욕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밥.”
“밥?”
“배고파 밥 줘.”
“아, 밥! 조금만 기다려. 금방 해 올게.”
나는 후다닥 위로 올라가서 그릇에 계란을 ‘탁’ 풀고 휘저어서 달궈진 후라이팬에 부었다.
‘치-’
잠시 후 완성된 요리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자 여자애는 말 안 해도 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손목에 수갑을 찼다.
철창이 열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갔다.
그 때 아차 하는 생각에 늦었지만 멈춰 서서 황급히 여자애에게 물었다.
“들어가도 되지?”
“...”
여자애는 말없이 날 노려만 봤다.
“그럼.. 된다는 뜻으로 알고 여기다 놓을게.”
나는 요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황급히 방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철문을 잠그자 그녀는 테이블 앞으로가 의자에 앉았다.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내가 올라가자 여자애는 내가 만든 요리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오므라이스를 크게 한 스푼 뜨고는 곧바로 자신의 입으로 직행했다.
몇 번을 오물거리더니 여자애의 표정이 잠깐 밝아졌다.
그녀의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여자애는 그릇을 말끔히 비운 뒤 디저트 푸딩도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리곤 다시 소파에 누워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
30분 뒤 그릇을 가지러 지하실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듣고 있는 사람마저 슬프게 할 정도로 흐느꼈다.
나는 내가해준 요리 때문인 것 같아서 혼자 심각해졌다.
“왜 그래.. 요리가 맛없었니?”
나의 눈치 없는 질문에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아.. 아니구나. 그럼 뭘까 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그녀가 부은 목으로 입을 열었다.
“저 어떻게 해요? 전 갈 곳도 없구요 집도 없어요. 집이란건 가고 싶은 곳이어야 하잖아요? 근데 전 가기 싫어요. 이건 제가 비정상 인거죠? 그렇죠?”
여자애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제 밤 까지 만해도 당돌했던 여자애가 이렇게까지 서럽게 우니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제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거겠죠?”
“...”
분명 갑갑한 공간 속에서 갇혀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해결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드라이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좋은 풍경을 보면 분명 여자애의 기분도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혹시 괜찮으면 드라이브라도 하러갈까?”
“드라이브요?”
여자애는 울먹이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가자.”
나는 열쇠로 철창문을 열고 막무가내로 들어가 여자애를 데리고 나왔다.
“아~ 시원해에~~!”
여자애는 자동차 창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도로를 주행하던 중이었기에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창 밖에는 바다와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야 위험하잖아 빨리 들어와.”
“네? 뭐라고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에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하니깐 들.어.오.라.고!”
내가 손짓까지 하며 들어오라고 하자 그제 서야 들렸던 모양인지 여자애는 몸을 차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뭐 어때요 반대편에 차도 안 오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여자애가 창문을 올리자 이제야 목소리는 자유를 되찾았다.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가보면 알아.”
그렇게 한참을 달려 어느 낚시용품가게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어디 도망가지 말고. 도망가려고해도 소용없는 거 알지?”
나는 여자애의 손목에 달려있는 위치추적용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집에서 나오기 전. 난 여자애에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하면서 위치추적용 팔찌를 건네주었다.
물론 여자애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니 그녀도 이해하는 듯 내 요구에 응해주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어요.”
여자애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여자애의 약속을 받아내고 나는 낚시용품가게에 들러서 낚싯대 2개와 미끼로 쓸 갯지렁이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차 안을 보니 뒷좌석에 있어야 할 여자애가 없었다.
당황한 나는 다시 한 번 차 안을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없어졌다.
내가 허둥대며 위치추적 어플을 켜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려고 할 때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애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차에 올랐다.
내가 말없이 룸미러로 여자애를 보고 있자 여자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화장실 다녀왔어요. 됐어요?”
“아니.. 뭐..”
무안해진 나는 말없이 차를 몰아 바닷가 방파제로 향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방파제에는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나와 여자애 뿐 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방파제에 감동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내가 트렁크를 열고 낚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여자애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하-. 이게 바다냄새구나..”
“뭐야, 바다에 처음 와본 사람처럼.”
내가 여자애를 놀리듯이 비웃자 여자애는 심통 난 얼굴로 나에게 따졌다.
“바다 처음 와보는 게 죄에요? 그래요. 저 바다 처음 와 봐요. 근데요 그거 알아요? 아저씬 바다와는 전혀 안 어울린다는 거. 아저씨한테 어 울리는 건 바다보단 바닥 이예요.”
이런,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설마 진짜로 바다가 처음이라니.
나는 여자애에게 미안해진 나머지 어색한 웃음만 연발했다.
“하핫,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사실 나도 바다 몇 번 안 와봤어 많아야 2번? 나도 너랑 다를 바 없어.”
“그게 무슨 뜻 이죠? 저랑 다를 바 없다니.”
여자애가 날 무섭게 노려봤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자자, 추우니깐 이거입고 가자.”
나는 여자애에게 패딩을 무작정 건네주고는 장비를 챙겨 테트라포드 위로 올라갔다.
“이쪽으로와!”
그래도 여자애는 처음 온 바다라 그런지 기분은 매우 좋아보였다. 벌써 아까일은 다 잊은 듯 했다.
여자애는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우고 있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견지낚시. 이렇게 미끼를 낚싯바늘에 끼우고 테트라포드 구멍 사이에 넣으면 되.”
“테트라포드요?”
“지금 네가 밟고 있는 콘크리트 말이야.”
여자애는 밑을 내려다보고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래?”
내가 낚싯대를 건네자 여자애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낚싯대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관찰했다.
곧이어 여자애는 낚싯바늘을 구멍사이로 집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늘이 움직였다.
여자애는 물고기가 걸렸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호들갑떨었다.
“아저씨 이것 봐요! 막 움직이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건져!”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애가 낚시를 끌어올리자 우럭한마리가 딸려 올라왔다.
“우와!”
작은 게 흠이지만 팔딱팔딱 꼬리치는 우럭은 한눈에 봐도 싱싱해 보였다.
여자애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흡족해했다.
“이제 어떻게 하는지 알겠지?”
“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이고 물고기만 낚았다. 그러다보니 제법 쓸 만한 물고기도 조금 잡혔다.
“이정도면 회 뜨고 매운탕 끓여 먹기에 충분하겠지?”
나는 아이스박스 안에서 요란하게 꿈틀거리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애는 뭔가 아쉬운지 “아뇨, 아직 부족해요.” 라며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웠다.
아무래도 낚시하는 재미에 푹 빠져든 모양이었다.
이젠 슬슬 날도 저물어오고 있었다.
그 때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여자애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여자애는 구멍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닷물만 뚫어지게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왜요?”
“아직 네 이름을 잘 모르는데..”
“유림이요, 이유림.”
“아..”
유림. 왠지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었다.
“버드나무 숲 이라고 해서 유림. 제 엄마가 지어주셨어요. 버드나무처럼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사람이 되어 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요.”
유림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유림의 손에 들려있는 낚싯대도 이제는 더 이상은 입질이 없는듯했다.
“네 어머니는 좋으신 분이었니?”
“글쎄요. 3년 전에 집을 나가셨어요. 그래서 그 뒷감당은 다 제가 해야 했죠.”
“뒷감당?”
“아빠요. 맨 날 술 먹고 와서 도망간 엄마 몫까지 제가 맞아야했어요. 덕분에 온 몸 이곳저곳이 멍들어서 학교가기가 창피했어요. 친구들이 놀렸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 안가고 밖에서만 있을 때도 있었어요.”
어쩐지 오늘 아침에 유림이 울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내가 유림의 입장이 된다고 해도 결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구나..”
“솔직히 엄마가 좋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그러는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말했잖아.”
“그거 말고요 진짜 이유요.”
“진짜 이유?”
“네.”
“그러니깐 너를..”
“저를 납치하면 삶에 이유가 생긴다는 건가요?”
“그렇.. 지.”
유림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아저씨말이 맞아요. 저는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유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낚싯바늘엔 갯지렁이만 꿈틀대며 올라올 뿐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점심도 굶었겠다. 밥이나 먹으러가자.”
나는 장비를 정리하고 유림을 대리고 근처 횟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