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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게시물ID : readers_46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귑시다
추천 : 12
조회수 : 53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2/01 23:03:31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어디를 바라보는 것인지 그 시선 흐리다. 바라보는 것인지 기다리는 것인지
그녀는 그렇게 그곳에 서 있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다. 조용하게 또 말 없이. 그녀는 스카프의 끝을 손끝으로 여미었다.
볼이 발갛게 물들고 입에선 하얀 숨이 서리건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묵묵하게 길 모퉁이에 서 있었다.
나무 그루터기와 같이 깊게 패인 주름에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 그녀는 나이든 노인.
세월에 무뎌질만도 하건만 그녀는 고송(古松)처럼 고요하고 굳건하다.
작은 눈이 크게 뜨여진다. 저 멀리서 작은 빛이 보인다. 오랜 시간 미동도 없이 서있던 그녀가 기쁨으로 반가움으로 안색이 환해진다.
손이 살짝 떨려오고 심장이 쿵쿵 뛰어온다. 머리에 서린 눈을 툭툭 털어내고 아무일 없다는 듯 그렇게 서있다.
이내 한 승용차가 골목길을 지나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다. 멈춰선 차에서 조잘거리며 아이들이 뛰쳐나온다.

 

"할머니!"
"어이구, 우리 아가."

 

그녀는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끌어 안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손이지만 그 품 만은 따스해 아이들은 얼굴을 묻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품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했다. 푸근하고 따스한 냄새가 났다.
젊은 중년의 남녀 또한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날씨가 찬데 밖에서 기다리셨어요."
"어머니 죄송해요, 차가 막혀서."

 

그녀는 자글자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걱정스런 아들과 며느리의 말에도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다.

 

"괜찮다. 어여 들어가자꾸나. 저녁 차려놨다."
"어머니도 참,,. 얘들아 들어가자."

 

작은 양철지붕 집.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늙은 노인도 아이도 아니요.
젊은 부부도 아니다. 조금은 낮간지러운 소리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곳에 행복이 있었다.

안방의 구들장이 뜨거운 것은 그들이 내려올 것을 대비해 오래토록 불을 피워놨음이다.
그 따뜻함에 먼길 달려온 아이들과 부부의 마음 또한 훈훈해진다.
그녀는 한 상 가득 저녁상을 내왔다.
찬이며 밥이며 수북하게 넉넉하게. 한 상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저 밥과 찬이아닌 정성과 사랑이다.

 

"잘먹겠습니다."
"잘먹을게요 어머니."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나자 배부르고 여로에 지친 이들은 일찍 잠에 들었다.
해조차 떠오르지 않아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그녀는 언제나처럼 눈이 뜨였다.
그녀는 침상에 앉아 옹기종기 잠이 든 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단 꿈을 꾸는 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나 하나 조용히.
그들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사랑하기를 기도했다.

부엌에 선 그녀의 손이 바쁘다. 밥을 지어 뜸을 들이는 반면 도마위의 두부를 날쌔게 썰어낸다.
오늘은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다.
익숙한 그 맛, 익숙한 그향으로 끓여낸다.
맛있는 향기가 집안을 가득 매우자 하나 둘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편다.
그제서야 일어난 며느리가 죄송스런 얼굴을 한다.

 

"어머니, 언제 아침을 다 하셨어요.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됐다, 씻고온나."

 

그녀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세수만 하고 상앞에 앉은 아들은 얼른 숟가락을 뜨고싶어 성화다.
옹기종기 앉은 네 식구가 아침을 맞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들도 호호 불어가며 된장찌개를 먹는다.
식사와 설거지까지 끝나자 아들은 대뜸 올라가 봐야겠다고 했다.
차가 막히기 전에 일찍 올라가봐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웃으며 얼른 올라가보라고 했다.
막히기 전에 얼른 올라가라고.
떠나는 이들의 손에는 무언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그녀가 싸준 반찬이며 고춧가루며 손들이 무겁다.

 

"어머니, 그럼 저희 올라가볼께요."
"그래, 잘가그래이."

 

승용차가 부르릉 떠난다.
차안에서 흔드는 아이들의 손에 맞춰 그녀 또한 손을 흔든다.
길 모퉁이에서 그렇게.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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