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훈은 1986년 세광고를 졸업하게 되었고 갈만한 대학팀이 전혀없는 상황에서 세광고 감독이 빙그레 배성서 감독에게 부탁, 입단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빙그레는 기반없이 새롭게창단한 구단이어기에 한명의 선수도 아쉬운 입장이었다. 장종훈은 당시 300만원의 연봉을 받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다. 사실 볼보이와 배팅볼투수로 입단했다. 연습생 신화 그의 파랑만장한 야구 인생의 시작이다.
당시는 투고타저라 모든 투수들의 방어율이 2점대였으며 당시 이강철 조계현 정민철 선동열 최동원 한희민 송진우 기타등등 거의 모든 투수들이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한 투고 타저시대 였으며 20홈런도 치기힘든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241의 타율과 12개의 홈런으로도 골든 글러브를 받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18개의 홈런이 홈런2위를 기록할 정도로 당시 장종훈의 포스는 전성기시절의 이승엽 이상이었다. 언젠가는 이런일도 있었다. 당시 장종훈이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시절 모대학에서 홍보효과를 생각 무료로 입학 제의를 했었다. 최고의 선수니 대학졸업장 정도는 있어야 나중에 장가를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기에 좋지 않겠냐며.. 그러나 장종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모든 고졸 연습생과 2군선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나는 그들의 희망이다. 그런 내가 대학에 가버리면 그들의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없애게 된다.
나는 이종범이나 박재홍 이병규처럼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타고난 야구센스와 천재적인 타격감을 가졌다. 나는 천부적으로 야구와 거리가 멀다. 팔은 기형이며 한쪽으로 휘었다. 타격할 수 없는 팔이다. 사실 죽어라 피터지게 타이어를 치는것도 그 이유다. 나에겐 노력밖에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있고 지금도 나는 나의 신체적 결함을 커버하기위해 3천개의 스윙연습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엘리트 코스 화려한 대학생활 국가대표 상비군 나라의 대대적인 지원 이 모든 것들의 차이를 오직 노력하나만으로 이루려는 모든 고졸연습생들이 나를 목표로 하고있다. 그런내가 대학을 가버리면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지 알기 때문에 정중히 사양하겠다.
이런일도 있었다 99년 쌍방울 전에서 투수를 맞추는 선추내야안타를 치고도 투수가 ㅏ치자 그는 1루베이스를 가지 않고 후배 투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 장종훈 선수는 타율부분 1위에서 3위로 떨어지는 경기였고 1루에서 그는 아웃되었지만 그 투수는 그후로 항상 장종훈이 타석에 들어서면 모자를 벗어서 인사를 하며 예우를 했다.